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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 문화현장 [문화이슈]
명사와 시민의 깨어있는 만남
초록시민강좌, 지역문화에 뿌리내린 이야기
임주아 기자(2013-11-05 15:21:25)

10월부터 11월의 매주 목요일 저녁, 전주 인후동에 위치한 평생학습지원센터는 장날처럼 북적인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움츠러들만도 한데 강연장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평일 저녁 적지 않은 인파가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모이는 것도 드문 일이다. 어리둥절할 만큼 의외의 광경은 벌써 9년째 이어지고 있다. 먹고 사느라 바쁜 시민들을 시민사회 담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소박한 고민에서 출발한 초록시민강좌.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준비해도 회원이나 시민들의 참여가 낮았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을 섭외하면 참여도가 높아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관심 있으면 다른 사람도 관심있다고 생각했죠.” 강좌를 이끌고 있는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사무처장의 말이다.
그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전북일보와 공동주최해 2006년 첫 문을 연 초록시민강좌는 첫 회부터 입소문을 타고 매년 2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지역 시민강좌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가을첫 문을 연 이래 다녀간 연사만 90여명. 작년 한해 선 강사만 보아도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시사평론가 김종배, 유시민 진보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철학자 이진경, 김익중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장, 영화평론가 유지나까지 다양한 분야의 막강한 명사들이 다녀갔다. 환경단체이지만 환경만을 주제로 섭외하기보다 인문학 전반으로 섭외한다. 환경이 곧 인문학에 기초한다는 생각에서다. 자연생태, 문화비평, 인문사회 부문에서 치열한 글쓰기와 대중적인 소통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명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노희경 작가 7년 만에 섭외, 9년째 러브콜 보내는 시인도…
매년 30명 이상의 강사 목록을 짠 뒤 연초에 메일을 보낸다는 이정현 사무처장은 특히 연간 3,000건이 넘는 강연 의뢰를 받는 명사는 섭외하는데 몇 년이 걸리는 것은 부지기수라 했다. 지난 10월 10일 다녀간 노희경 드라마 작가는 7년 만에 섭외했고, 강좌가 생긴 이래 9년째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묵묵부답인 한 시인에게도 꾸준히 메일을 보내고 있단다. 가정생활을 중히 여기는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몇 번이나 강연을 고사했으나 “따님과 함께오시라”는 말에 승낙했다고 했다. 끝없는 기다림과 읍소 끝에 이뤄지는 것이 강좌의 뒷이야기. 매년 바람 부는 가을이면 초록시민강좌가 열리는 줄 알고 있다는 참여자들은 총 9차례의 다양한 강연을 듣는다. 9강인 올해에는 10월에만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노희경 드라마 작가, 김삼웅 역사평론가, 김용규 여우숲학교장,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그들. 특히 10일 노희경 작가의 강연 때는 강연장 밖까지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고, 17일 김삼웅 역사평론가의 강의엔 질의응답까지 세시간 가까운 강연 내내 참가자들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3시간 가까운 강연… 꿈쩍않는 명사와 참가자
이날 역사평론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역사 없는 시대의 위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리영희 평전> <장준하 평전> 등 살아있는 역사 저자로 불리는 그의 강연장엔 보조의자까지 만석이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강연장 앞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이름을 물어보고 명찰을 나눠줬다. 강연장 앞에는 조그만 테이블 위 간식과 음료수가 놓여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스크린에선 밀양 송전탑 관련 다큐가 흘러나온다. 저녁 7시, 왼쪽 단상에 이정현 사무처장이 간단한 강좌소개와 밀양 관련 환경이야기를 전한 뒤, 강사가 강단에 나왔다. “고급 시민들과 의미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명성이 자자한 초록시민강좌에 초청받아 영광”이라 운을 뗀 그는 “세계가 모두 자본주의 열차의 종착역에 왔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이었다. 프랑스 왕조의 예를 들어 변할수록 옛 모습을 닮아간다며 지금의 정부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국정원 사태와 역사교과서 문제를 언급하며 시대역행과 역사 왜곡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며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역사를 알고 모르고의 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일본이 부자나라는 될 수 있지만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의 저변에는 밑으로부터 혁명을 이룩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전하며 깨어있는 시민 문화와 끝없는 비판정신을 강조했다. 2시간 30분가량 강연이 끝나고 4명의 질문자의 심도 있는 질문이 40분 동안 오고 갔다. 고등학생부터 노년의 신사까지 참가자들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는 등 열성적인 모습이었다.

내년 초록시민강좌 10주년… 11월 강좌엔 5명의 명사
이날 고교 제자들과 함께 한 주장미(신흥고 도서관 사서)씨는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고 무감했던 나 자신을 강좌를 통해 돌아보게 됐다. 제자들과 함께 해 더 뜻깊다”라고 말했다. 첫 해 때부터 강좌를 함께한 고영상(의사)씨는 “해가 갈수록 정착이 잘 되어 가는 것 같다. 초록시민강좌가 시민사회 강좌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돌아봤다. 내년은 초록시민강좌가 10주년, 전북환경운동연합은 20주년을 맞는다. 이정현 사무처장은 “내년은 뜻깊은 해가 될 것 같다. 지금껏 와주신 명사들을 다시 한번 초청해 ‘어게인 초록시민강좌’등 프로그램을 고려해보고 있다. 고정적으로 모시는 명사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강좌문화의 줄기를 단단히 하고 있는 초록시민강좌. 11월에는 서민(단국대교수), 이철환(소설가), 신정일(우리땅걷기 이사장), 박봉남(다큐멘터리 작가), 김두식(경북대 교수)등이 함께 한다.



내가 그들에게 질문하는 이유
김도연 신흥고 2년

초록강좌를 들은 지 벌써 일 년이 다되어간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지만 그 일 년은 스스로에게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주는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평소 학교 선생님들에게 내 고민에 대해 질문할 때면 돌아오는 답은 비슷비슷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행복한 노후를 맞는다는 것이었다. 참 재미있는 공식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 정형화된 화살표 속에 살아가는 내 주변 친구들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나는 이 우울한 현실 속에 지쳐가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묵묵히 헤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더 그랬다.
노희경 드라마 작가가 왔을 때였다. 특유의 가벼우면서 진솔한 질의응답 강연이어서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엄청난 원고분량을 짧은 기간 아래에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것만 할 수 있는 성실감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물론 주 내용은 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 평소 한꺼번에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 종종 실패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평론가의 강연은 평소에 관심가지지 않았던 현재와 과거 우리 역사의 문제점에 대해 엿들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확실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한국 미래의 심각성에 대해 말이다. 평소 관심 가지지 못했던 분야였지만 한번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역사에 너무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용규 여우숲교장의 강좌는 조직의 대표였던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 깨달은 삶에 대한 지혜가 돋보였다.
초록강좌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독서를 좋아하고 인문학을 사랑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를 따라 독서모임도 하고 짬을 내어 좋은 강연도 듣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무참하게 무너뜨린 초록강좌, 인문학, 문학에서부터 철학, 역사까지 그들이 알려주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 공부와 시험지 푸는 것 밖에 몰랐던 나지만 실은 남모를 꿈도 있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두려워 겁쟁이처럼 숨어 있었을 뿐이다. 이런 내게 초록 강좌는 내게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법’을 알려줬다. 강사마다 강의의 키워드와 강의 방식, 이야기도 모두 달랐지만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닥친 문제들은 지혜롭게 해결하는 법까지 말이다.
강연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먼저 손을 들고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다. 때론 강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때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신기한 것은 어떤 강사가 오든 늘 명쾌하고 현명한 답변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질문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초록강좌가 오랫동안 이어져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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