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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 | 문화현장 [문화계 핫이슈]
월드컵 문화행사와 소리축제, 그리고 '화해'새 국면 맞은 전북도립국악원 사태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3-26 16:09:27)

민간위탁을 둘러싼 직원들의 거센 반발과 오디션 불응, 이어지는 '관기 논쟁'과 노동조합 설립 등 1년여동안 들불처럼 급속히 번져갔던 전북도립국악원 파행이 최근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전북도가 '오디션 불응'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도립국악원 직원들의 재위촉을 거부함으로써 대치 국면에 기름을 부은 국악원 사태는 사실상 '개점 폐업' 상태를 초래하며 첨예한 대립 속에 놓여 있었다. 그동안 도 사업소 형태로 운영돼 오면서 기획실과 학예연구실, 교수부와 예술단(관현악단, 창극단, 무용단)을 두고 관립 국악원으로서는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도립국악원이 지난해 3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민간위탁이라는 급물살에 휘말려 진통을 겪어온 지 꼬박 1년 2개월여만의 일이다.
재위촉 포기로 국악원 직원들이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한 만큼 전 직원 복직문제와 부당해고 기간에 대한 임금 지급 등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고, 두 단체간 감정의 실타래를 푸는 첫 단추였다. 다행히 지난 1월 두 단체간 입장 조율을 위해 설치됐던 국악발전위원회의 중재로 현재 전원 복직이 이루어진 상태며, 부당해고 기간에 따른 임금 지급 부분은 법적인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데 입장을 같이 함으로써 한 단계 진일보한 의견 접근을 이뤄냈다.
앞으로 노조설립 등 새로운 환경에 따른 조례 개정과 예술단체의 효율적인 운영체계 부분(민간위탁과 법인화 설립 등으로의 운영체계 전환이나 사업소 형태 유지 등)에 대해서는 두 단체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운영체계 전환에 대해서는 국악원 노조의 입장이 확고한 상황이다. 민간위탁 방식이 검증되지 않은 체제인 만큼, 공청회나 시민 토론회 등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신중한 의견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지역 문화예술단체나 문화시설의 민간위탁 방식이 구성원들의 불만과 우려가 없지 않았음에도 대세로 굳어져 가는 상황이지만, 국악원의 경우 '노조'라는 만만치 않은 복병을 만남으로써 도의 보다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게 됐다.
날카로운 대척점에 서 있던 전북도와 국악원 노조가 극적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된 데에는 내부적인 수습의지도 중요했지만, 외부적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국악원 사태에 대한 대응방식을 놓고 문화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전망이 없는 것 아니냐는 극도의 비난 속에서 전전긍긍했던 전북도가 여론의 압력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가져왔던 데다,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외부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월드컵 기간에 펼쳐질 문화행사나 오는 8월에 있을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국악원 예술단원들의 외부 활동이 긴요해진 시점이라는 것도 두 단체의 화해 의지를 돕는데 한 몫 했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던 두 단체가 어렵사리 말문을 트고 대화의 자리에 앉게 된 데에는 국악원 노조의 합법적인 설립과 제3의 조정기구인 국악발전위원회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특히 국악원 노조가 설립되면서 공무원과 노동자 사이에 어정쩡하게 놓여있던 국악원이 근로기준법에 의한 단체협약이라는 확실한 명분을 갖고 접근하게 됨으로써 전북도를 대상으로 한 협상의 여지가 오히려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발위가 직원들의 복직 문제나 두 단체를 협상테이블에 앉혀 놓기까지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단체협약안을 조정해 줄 만한 책임 있는 기구가 아니라는 점에 국악원 노조의 불만이 실리고 있다.
이항윤 국악원 노조 위원장은 "국발위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공헌한 점은 인정하지만, 단체협약에 관해서만은 노사 양측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국발위 자체가 태생적으로 조정기구일 뿐 법적인 효력을 갖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협약안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국발위 구성원들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단체협약 과정에서의 3자 개입은 노동법에 저촉되는 행위로 오히려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인 단체협약안에 대해서는 도와 국악원 노조가 반 이상의 합의를 보며 꾸준히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도와 국악원 노조의 뿌리 깊은 불신이 이번 기회로 어느 정도 회복해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월드컵 문화행사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앞둔 일시적인 '화해 제스처'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발위 위원과 국악계 원로, 비교적 젊은 국악인들로 구성된 국악원 노조가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있던 감정의 앙금을 씻어내고 상호 관계를 어떻게 쇄신해 나갈 것인지도 지켜볼 문제다.
안팎의 영향으로 현재로서는 다행히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가파른 경사로를 거쳐오는 동안 도립국악원의 위상과 국악원 직원들의 신분상의 위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가 놓여 있다.
'공무원인가 노동자인가'라는 논란 끝에 지난해 8월 어렵사리 노조 설립 신고증을 확보한 국악원이 지방자치단체 산하 예술단 노조 설립이라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사용자(전북도)와 노조 양측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인지, 또 이들 노조의 활동이 국악계 전반에 가져올 변화 등도 꾸준히 예의주시 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북도와 국악원 노조의 단체교섭이 어떤 결과와 의미를 가져올 것인지가 국악원과 국악계의 전망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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