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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 | 문화현장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일상의 주택건축전 ‘우리집’
고다인 기자(2024-01-29 10:55:23)



일상의 주택건축전 ‘우리집’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사과나무집_노경 작가 촬영



어린 시절, 친구들 집에 놀러갈 때면 주택에 사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집집마다 다른 모양을 한 주택에는 가족의 일상이 자연스레 묻어나 구경하는 것만으로 신이 났다. 누구나 멋진 집을 동경하며,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어른이 되었지만 집을 ‘짓는’건 둘째 치고 집을 ‘갖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다. 집을 짓고 사는 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전주의 작은 건축사사무소 ‘일상건축’은 내가 살고 싶은 집, 나에게 필요한 집을 마음껏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작업해온 단독주택을 모아 전시를 꾸렸다. 11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초록장화에서 열린 일상의 주택건축전 <우리집>이다.




일상 가까이 건축을 꿈꾸다

서학동예술마을의 한 전시공간에서 김헌 소장을 만났다. ‘일상건축’은 건축가 김헌과 최정인 두 명의 대표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꿈 많던 시절, 서울의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뜻을 모아 동업을 시작했다. 가로수길 한복판에 사무실을 차렸지만 그 많은 사람 중 문을 열고 들어와 무언가 편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일상건축’이라는 이름처럼 건축의 일상화를 꿈꾸며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길 원했기에 갈수록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게 김 소장의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오며가며 들릴 수 있는 주택가 골목에 다시 사무실을 열었다. 한쪽엔 자그마한 책방도 만들었다.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들어와 쉬고 자연스레 건축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생각들이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건축 전시로까지 연결되었다. ‘건축은 어렵고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친해지자며 손을 내미는 시도였다.

“건축물 중에서도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주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첫 전시 주제는 큰 고민 없이 선택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건물이 멋지거나 마감이 깔끔한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람과의 관계거든요. 건축주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여야 집에 담아낼 요소들도 찾을 수 있죠.”

좋은 집은 결국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해야 완성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집을 짓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질문이 빼곡한 설문지를 먼저 건넨다. ‘당신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집을 짓는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둘 답을 적다보면 마음속에 그리는 공간이 조금은 뚜렷해진다. 한 부부는 20년 가까이 함께 살았지만 설문지를 작성하며 서로에 대해 모르던 부분을 새롭게 알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집을 짓는 일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닌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몰랐던 ‘나’에 대해 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일상건축 김헌 소장



‘내 것’을 가꾸고 사는 일

‘동글집’, ‘사과나무집’, ‘화담별서’. 전시된 집들에 각자 예쁜 이름이 붙어있다. 우리 집에는 이름이 있던가. 집에 대한 애정을 키우려면 당장 이름부터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옆에는 멋진 외관을 담은 사진과 그 아래에는 설계 모형, 그리고 두꺼운 책이 한 권씩 놓여있다. 주택 한 채를 지을 때마다 건축, 구조, 전기 등 전체 설계 과정을 담은 책이 엄청난 두께의 책으로 묶인다. 그만큼 많은 고민과 수고가 드는 건 물론, 번듯한 집에는 그만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따른다. 그럼에도 집을 짓고 사는 일이 요즘 시대에 의미를 갖는 이유는 왜일까.

“집을 짓고 산다는 건 내 삶이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인되는 것 같아요. 몸이 편하다는 것보다는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겠죠. 사실 몸이 편하려면 아파트가 더 쉬워요. 주택에 살면 모든 관리를 다 스스로 해야 하거든요. 그 과정들을 삶의 일부로 여기고 ‘내 것’을 가꾼다고 생각하면 관리도 나름의 재미가 될 거예요. 몸은 불편하더라도 마음은 편안한 일상을 만들 수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일상건축의 두 대표는 아직 자신의 집을 짓지 못했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비슷한 처지라고 전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을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설렌다.

“저는 큰 원룸 형태의 집을 짓고 싶어요. 방도 없고 벽도 없는 깊이감 있는 원룸으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집이요. 물론 아이들이 좀 크면 싫어하겠지만.. 지금은 가족이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어요.”

이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로 건축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른 건축사사무소들과 협업해 더욱 폭넓은 작업들을 소개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건축이 사람들 일상에 꾸준히 발을 들일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이 노력하다보면, 누구든 편하게 사무소 문을 두드리고 질문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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