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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 | 문화현장
농촌 마을에서 수확한 예술
제2회 남원 보절아트페스타 ‘하우스 미술관’
고다인 기자(2023-12-29 10:26:09)

제2회 남원 보절아트페스타 ‘하우스 미술관’

농촌 마을에서 수확한 예술



농촌과 예술, 어쩐지 조화롭지 못하다. 수많은 농촌이 소멸 위기에 처해있는 지금, 문화와 예술로 농촌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남원 보절면의 한 시골마을에선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는 특별한 움직임이 있다.

비닐하우스에는 농작물 대신 미술작품이 전시되고 마을의 가장 오래된 점방은 그림책 갤러리로, 버려진 창고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보절아트페스타-하우스 미술관’의 이야기이다. 이번 미술제는 11월 3일부터 12일까지 남원 보절면 일대에서 열렸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농촌과 예술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낯선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

이 수상한(?) 전시회는 우연히 마을에 정착한 한 예술가로부터 시작되었다. 화가이자 미술기획자인 김해곤 씨는 제주에 살다가 작업할 공간을 찾아 지리산 1년 살기를 계획하며 고향인 남원에 왔다.

그가 고요한 마을 정자에 앉아 쉬면 어르신들이 자연스레 말을 걸어왔다. 어르신들은 평생을 살면서 문화적인 혜택을 누려본 경험이 없는 분들이었다. 시내의 미술관이라도 모시고 가고 싶었으나 낯설고 불편해 했다. 그는 생각을 바꿨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살고 있는 농촌 마을에 예술을 들여오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르신께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저 안에 그림을 전시하면 보러 오실 거냐’ 물었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 결심을 했어요. 나 혼자 작업에 열중하는 것보다 예술을 같이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겠구나. 지난 첫 회에 이어 올해도 주민 분들이 비닐하우스를 무상으로 빌려주셔서 하우스가 잠시 비는 틈을 타 전시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작가와 주민이 소통하며 축제를 만들어가면서 주인의식과 자긍심이 생기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비닐하우스, 미술관이 되다

보절면 소재의 고즈넉한 은천마을에 들어서면 비닐하우스 3곳을 중심으로 미술제가 펼쳐진다. 쌀, 아름다움, 맛을 담은 ‘남원 3미(米,美,味)’를 주제로 ‘제1전시관(米)‘에는 설치미술과 함께 체험교실을 운영했다. 생태미술가 강술생 씨가 볍씨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고 그 아래 깔린 왕겨를 맨발로 밟으며 농촌의 황금들판을 오감으로 느끼도록 했다.

’제2전시관(美)‘에는 전국 예술가 50여 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회화부터 사진, 조각, 영상 등 저마다 개성있는 작품이 걸렸지만, 알록달록한 조각보 액자에 담겨 푸근하게 웃고 있는 이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이 유독 마음을 이끌었다. 기획자 김해곤의 작품이었다.

“그림 속에 있는 분들은 전부 여기로 시집을 온 분들이에요.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조각들이 모여 조화로운 작품을 만드는 조각보처럼, 타향에 시집을 와 서로 인연을 맺고 한평생 살아가는 어머니들이 닮아있다는 생각에 이런 작업을 시도해봤습니다. 이분들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상적인 분이 안 계세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세월의 훈장과도 같은 손이겠죠.”

‘제3전시관(味)’에서는 초중고생들의 그림글 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됐다. 전시에 앞서 직접 공모전을 진행한 결과이다. 224명의 아이들이 그린 작품은 전문 예술가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긴다. 올해는 축제의 규모를 확대해 더 이상 발길이 닿지 않는 빈 공간에도 예술을 더했다. 세월이 흠뻑 느껴지는 구멍가게와 정류소, 농협창고는 각각 동화일러스트 작품전시와 서각회원전, 농부를 테마로 한 마을 박물관이 되었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전시장을 지키고 밝은 얼굴로 관객들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예술과 농촌, 사람이 어우러진 축제의 힘이 느껴졌다.





예술로 일으키는 농촌 재생

침체된 마을이 잠시나마 예술로서 활기를 찾으며 ‘보절아트페스타’는 농촌예술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과 고민도 따른다. 경제적인 기반이 부족하다보니 기획과 운영에는 한계가 있고, 여전히 생소한 농촌과 예술의 접목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지속성에 무게를 두고 앞으로 더 많은 마을에 예술을 불러올 계획이다. 짧은 기간 전시하고 사라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마을의 방치된 공간들을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사계절 내내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농촌에는 문화적인 키워드보다 생산, 수출, 판매 이런 일차원적인 것들에 집중을 많이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문화에 집중하는 것이 곧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농촌이 예술로서 재생이 되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예술관광이 가능해지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죠. 올해는 2개 마을이 참여했지만 내년에는 3개 그 다음 해에는 4개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내년에 좀 더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될 ‘보절아트페스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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