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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 | 문화현장
다정한 시선으로 담은 10년의 기록
서학동사진미술관 10주년 기념전 ‘전주의 봄날’
고다인 기자(2023-06-28 16:24:58)


서학동사진미술관 10주년 기념전 ‘전주의 봄날’ 


다정한 시선으로 담은 10년의 기록


고다인 기자





서학동 골목 끝 작은 사진미술관이 문을 연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10년 전, 서학동사진미술관(옛 서학동사진관)을 열었던 사진작가 김지연 관장은 그 시간 동안 변하거나 혹은 변함없는 전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봄비 내리는 오후, 미술관에선 사진집 출판 기념전과 함께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다. 



“전주에서 저는 이방인과 같았어요”

어쩐지 전주 토박이 느낌이 나는 작가의 고향은 사실 광주다. 그는 전주와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한다. 자칭 ‘이방인’이던 그가 낯선 도시에 말을 걸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사진이다. 특별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한가할 때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돌았다. 그렇게 서학동사진미술관이 개관한 2013년부터 현재까지 10년 동안 마주친 일상들이 모여 이제야 ‘이방인’이라는 수식어를 뗄 수 있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쉬는 어르신, 담장에 핀 찔레꽃, 분주한 시골 상인들. 벽에 걸린 다정한 풍경을 따라 걸으면 전주 온 동네를 구경할 수 있다. 모든 작품은 현재 ‘로’로 표기되는 지명 대신 교동, 노송동, 우아동, 서학동 등 익숙한 ‘동’으로 소개한다. 작가의 사소한 배려가 더해져 전주 사람들에겐 사진 속 순간들이 더욱 정답게 다가온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전주의 봄날’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눈 쌓인 골목길과 노란 은행나무 풍경의 사진이 눈에 띈다. 그랬다. 작가의 ‘봄날’은 사전적 의미의 계절이 아니다. 사계절 모두 그의 시선이 닿아 봄이 되었던 것이다. 


“전주에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에게 받은 감사함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전주를 기록하고 ‘봄날’이라 칭했죠. 10년 동안 전주를 바라보니 지금은 전주가 제일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말에 동감해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기록 

‘정미소’, ‘전라선’, ‘근대화상회’ 등 지난 작품을 보면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지금 전주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대한방직은 섬유산업의 쇠퇴와 함께 국내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며 오랜 기간 방치되어온 곳이다. 그는 작은 개구멍을 통해 공장에 침입해(?) 내부 곳곳을 찍다가 관계자에게 한소리 들으며 쫓겨나기도 했다. 이제 이곳에는 컨벤션센터와 호텔, 쇼핑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위험을 감수한 덕에 대한방직의 최후를 남길 수 있었다. 


전시관에 걸린 작품들은 모두 갈색 액자 속에 담겼지만 유일하게 검은 액자에 담긴 한 장이 있다. 전주천 양옆으로 울창한 버드나무가 감싸고 있는 사진이다. 그저 ‘예쁘다’하며 찍어둔 사진인데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며 특별대우(?)를 받게 되었다. 최근 전주시가 홍수 피해 예방을 앞세워 전주천과 삼천 인근의 버드나무 260여 그루가 무자비하게 잘라버린 것이 그 이유다. 그는 매일 지나며 당연하게 여겼던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도 다시 볼 수 있는 ‘지금’의 가치

그는 사진의 매력이 현장성을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실존하는 대상을 무한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볼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 습관처럼 카메라를 든다. 몇 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지며 그만둘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진 찍는 일도, 이 공간도 지켜나가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함께 서학동사진미술관을 운영하게 된 서양화가 이일순 대표는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가꿔온 공간의 정체성을 지켜가며 일상 가까이 문턱을 낮춘 예술 공간으로서 또 다른 10년을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가 그리는 앞으로의 봄날은 어떤 모습일까? <전주의 봄날> 기념전은 끝났지만 사진집을 통해 작가의 다정한 기록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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