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8.2 | 연재 [옹기장이 이현배 이야기]
그릇을 비워라! 마음을 비워라
이현배(2015-06-09 09:58:55)


 벽에 글씨가 하나 붙었다. 그동안 뭘 걸어보려는 논력을 하지 않았기에 한갓진 곳에 거울하나, 달력하나 이렇게 걸린둥 마는둥 했드랬다. 대개 작은 집에 살자니 벽에 뭐가 걸리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뭘 걸려골ㄹ 안했다. 그러나 저번 날 중하 김두경 선생께서 밥 한끼 같이 먹자하여 식구 모두 모악산 아랫동네를 갔드랬다. 밥 맛있게 먹고 차까지 마시고 선물까지 받았는데 글씨였다. 한자로 '핍우', 다르게는 '펌우'라고도 읽는다는데 설명듣기를 '어리석음을 깨트리다' '어리석음이 다하다'는 뜻이리라 글씨 모양은 어릭석을 '우'의 아래 '마음심'을 곡괭이 모양의 '핍'자가 파낼 것 같은 형상이다. 그게 곧 이 옹기장이에게는 마음을 캐내라는 것이 되었다.

 어제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우리가 첫살림을 살았던 경기도 역곡서 이웃하고 지냈던 이였다. 그래 그때 얘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던 안동네라는 곳은 앞으로 아파트 숲이 있지만 개발제한구역이라 뒤로 나무숲을 둔 초가집까지 있는 그런 동네였다. 동네 앞의 넓은 들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몰리자 아래채 방을 들어 세낸 곳이었다. 그래 천정이 낮았다. 아내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린 백호짜리 그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지 못하고 누워야하는 그런 높이였다. 그 그림은 몇번이나 이사하면서도 계쏙 그런 신세였고 그러다 찢겨 없어졌다. 그림 말고도 장롱도 못들어가는 곳이라 반닫이를 구해 이불은 얹고, 옷은 넣고 그렇게 살았드랬다. 그렇게 작은 살림을 살 때는 가장인 이 사람보다 높은게 없었던 것이다. 그림처럼 높았다가는 누워지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 이제 제법 살림이 커지니까 저기서 늘 이렇게 충고한다. '이 어리석은 인간아 마음을 비워라.' '이 어리석은 옹기쟁이야 그릇을 비워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