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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 | 연재 [교사일기]
아이들을 뒤쫓는 선생님의 자화상
장은섭 만경고 국어 교사(2003-03-26 16:53:32)

아이들을 처음으로 대하게 된 그 날을 나는 쉽게 잊을 수가 없다. 평소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거울 앞에서 서성거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어색한 넥타이를 고쳐 매느라 한참 동안을 끙끙거렸던, 어쩌면 내 생애 순진했던 어린 시절의 그 시골 소년보다도 조금은 더 순수했을 그 아침의 기억들이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깨끗한 손수건처럼 조심스레 개어져 있다. 단지 단정하고 성실한 첫인상을 잘 보여야겠다는 목표 하나였으므로….
약간의 설레임 깃든 기대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속에 그렇게 학교에 첫발을 내딛던 그 시간! 웃음이 가득 넘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서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아이들이 수업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자리잡는 이상적인 수업! 금방 손에 잡힐 듯이 짧은 시간동안 이었지만 첫 출근을 준비하는 몇 십분 동안 뇌리속에 아름다운 영상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아마도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내 자신을 타일러도 본다. 아~ 그러나 어찌 그것으로 모든 것들이 끝날 수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처음으로 시작하는 초임교사의 순진한 포부에 우리의 아이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두 볼을 붉게 물들였다. 내 자신이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10년 넘게 흘렀건만 내 자신조차 변해가는 학교를, 선생님들을, 그리고 아이들을 상상해 보지 못했었다. 나만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서야 휑한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되었다. 선생님들이 계시는 교무실에 선생님의 호출이 없어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물론 초임인 나로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여년 전 그 때는 그저 무슨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거나 선생님의 특별한 부름이 있던지, 혹 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콩콩대는 조그만 가슴에 안고서 용기를 내어 찾아가는 곳이 교무실인지 알았었는데, 요즈음 우리의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선생님에게 편하게 농담을 건네고 그냥 시간 보내기가 무료해서 선생님들의 책상 주위에 몰려든다. 아하~ 이 얼마나 편하고 즐겁고 좋은 학교의 모습인가, 제자와 선생님의 정경인가?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의 위치가 위협(?)을 받고 있는 건가? 필자의 견해로는 긍정적인 변모가 부정적인 변모보다 우선 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교무실을 편하게 찾아와서 예의를 갖추지 못한 태도를 보여주는 아이들이, 무엇이 바른 행동인지 그른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있다. 물론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얌전하고 올바른 태도로 선생님들을 대하고 학업에 전념하는 아이들이 더욱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교사들이 가장 많이 피부로 느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시대의 변화를 앞서가지 못하고 뒤따라 간다는 점이다. 교육의 최대 수혜자여야 할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이 시대를 이끌어갈 내용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우리가 한 시절 풍미했던 내용들로 이루어져 시대의 흐름을 뒤쫓는다면 우리의 미래가 더욱 발전하고 나아지리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보여질 수 없음은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말이다.
사회전반에 걸쳐 빠른 변화가 거듭되고 바른 가치관의 확립이 무엇보다 어렵고 소중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하고 또 가장 필요로 하는 교육 목적과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 인성교육과 독서교육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필자가 가장 중점적이고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수업목표이기도 하다. 멀리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우리 자녀와 형제 자매들의 학교 생활을 살펴보면 의외로 그 문제는 쉽게 발견된다. 한 예로 요즈음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사교육 문제로, 취학한 자녀를 둔 가정에서 자녀 1인당 30만원 이상을 학습 교재나 학원비로 지출하는 가구가 전체 40%를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한 학생이 방과후 평균 2∼3곳의 학원을 오고 가며 과외수업을 받고 또 시간에 쫓기다 보니 집에 귀가하는 시간은 밤 11시나 12시를 훌쩍 넘기게 되고 이후에 별다른 자유시간을 갖지도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면 다음 날 이렇게 녹초가 된 몸으로 등교한 학생의 생활은 어떨가? 물론 모든 학생들이 여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우리의 아이들이 피곤에 지친 몸 때문에 정작 학교 수업에 소흘해지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있다시피, 학원에서 전개되는 수업의 대부분 내용들이 학교 수업의 선행학습 차원에서 이루워지기 때문에 중요 과목을 보통은 몇 주 또는 한 두달, 심지어 1학기, 1년치 학교 수업을 앞질러 미리 수업을 받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쇠도가니에 가득찬 쇳물이 정형화된 형틀에 가득 고이고 하나의 완전한 주물로 만들어 지듯이 선행학습을 마친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 다 뛰어난 우등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이치가 아닐까? 하지만 현실을 어떨까 정작 그 수많은 사교육에 지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성적 향상이라는 보라빛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학교 수업시간, 전날 늦게까지 이어진 학원 수업으로 정작 충실해야될 시간에, 선행학습으로 다듬어진 꽉찬 머릿속을 멋지게 실력발휘하며 자신있게 발표를 하지도 못하고, 시들시들 졸음 겨운 눈으로, 혹은 아예 책상에 엎드린 채로 수업시간을 맞는 아이들, 게다가 당당하게 학원에서 수업이 늦게 끝났다는 이유로 때론 학원에서 내준 과제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정중하고 떳떳하게(?) 양해를 구하고 잠을 청하는 아이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피곤하고 지친 아이들, 그리고 뭔가 잘못 깨닫고 있는 아이들, 학부모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젠 조금 변해야 되지 않을까요?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도, 우리의 아이들도 말입니다."

장은섭/1973년 김제 출생. 전주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김제 만경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중이다. 학교에서 교과 수업외에 국어교사에 걸맞게 도서관 관리와 전교생 독서지도를 맡고 있는 장은섭 교사는 교내에서 학생 한명당 1년동안 책 10권 사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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