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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 | 연재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신귀백의 영화엿보기<나쁜남자>정말 나쁜 男子는 누구인가?
신귀백(2003-03-26 16:42:41)

이차가 그짓인 나라, 선미촌의 겨울 풍경. 80년대 후반, 아가씨들이 빨간 오리털 잠바를 교복처럼 입고서 각목으로 짠 긴 의자에 주욱허니 앉아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진문화공간 주차장에 차를 댈 때마다 놀다 가시라던 가게도 언제부터인지 쇼윈도우로 바뀌었고 고깃집 조명아래서 드레스를 걸친 채로 손님을 기다린다. 그런데 이 동네가 중앙일간지에 떠억 하니 사진이 실렸다. 조기(弔旗)가 걸렸다고.
그래서, 가 보았더니 정말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시인은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추상적 관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해설서는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비애"라 말한다. 웃기지 마라. 그 검은 깃발이 은유고 상징이겠는가. 가슴이 저려왔다. 윤락가는 교통이 좋으면서도 땅값이 싼 곳에 발달하는 법. 조기 걸린 뚝너머가 그렇고 철인동이 그렇다. 요즘도 밤에 혼자가면 포주 할메들이 젊은 샥시 있다고 속삭이는 그 철인동 가까운 익산 제일극장에서 <나쁜 남자>를 보았다.
김기덕의 전작들이 하나같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장면과 장면들이 모두 쉼표 없이 진행되는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면 그래도 <나쁜 남자>는 일단은 쉼표도 있고 과녁에 탄흔이 한 군데로 모아지는 영화였다. 그러나 곤혹스러웠다. 정말 저런가. 저럴 수 있나? 저걸 지독함으로 이해하는 나는 마른 땅 이쁜 곳만 골라 디뎠단 말인가? 서양미술사를 끼고 다니며 에곤실레를 좋아하는 여대생이 창녀가 되는 엉성한 필연성은 말하지 말자. 재즈선율이 아름다웠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엘리자베스 슈가 연기한 창녀역에 가슴이 정말 짠했던 것처럼 털실짜는 언니, 파를 다듬는 서원, 토사물 장면들에서는 연민이 따라왔지만 대부분 불편함만이 입안 가득 고여오는 것은 왜인가? 위안이라면 조재현의 빛나는 연기뿐.
그래, 남보란 듯이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었던, 죽어서도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15명의 그녀들도 이영애처럼 신나게 카드를 긁고 싶었을 것이고 좋아하는 남자랑 장동건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 여성부가 만들어진 우리나라, 과연 그들도 GNP에 걸리는 백성일까? 저소득 근로자 재형저축의 혜택을 알았을까? <메멘토>에서 15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잊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온 몸에 중요한 사실을 새긴다. 같은 군산 대명동에서 5명이 죽은 후 우리의 메멘토가 고작 일년이란 말인가. 정말 어떤 시인도 이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우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는구나. 이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는 죽음에 내 친구는 동정심 유발하는 아비투스 치우라고, 정신적 마스터베이션 그만 두라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어떤 男子가 우리 민족 절반을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며 악의 축이란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황인종 하나를 끼워 넣기 위한 비열한 수작이다. 그래, 9.11테러의 무기는 핵무기도 생화학가스도 아닌 자기네 나라에서 뜬 비행기였고 15명이 죽은 개복동의 대량살상무기는 밖에서 잠그게 만든 열쇠, 욕망무한대의 이기심이었는데 말이다. 그래, <공공의 적>에서 넥타이 맨 얄량난 검사를 욕하는 반장처럼 누구를 한 대 정말 쥐어박고 싶다. 정말 나쁜 男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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