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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1 | 연재 [저널초점]
면회를 다녀오던 날
이종민·편집주간(2004-01-27 16:48:19)

그날 오전 평양에서는 남한의 국무총리가 옛날의 '북괴 괴수'를 "각하"라 부르며 남쪽 "각하"의 문안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연세대학에서는 북한영화상영 문제로 학생들과 경찰들 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어 그 일대의 교통이 아수라장이였다. 우리전북 지역에서는 재야 인사들이 문익환 목사가 입원해 있는 예수병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방북인사의 석방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일시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한 문목사의 잠정적 병원입원 조치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일이 있은 며칠후 문목사는 '남북고위급회담'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는 정부의 사족과도 같은 해명과 더불어 석방되었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우리 일행은 국회의사당에 오물을 투척함으로써 온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대신해 주었던, 그러나 현행법상 특수공무집행방해라는 죄명으로 수감되어 있는 여섯명의 학생들을 면담지도한다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누가 누구를?)일을 수행하기 위해 영등포 구치소를 찾았다.
면담이 이루어지기전 우리는 구치소장으로부터 교도업무의 엄정성 회복을 강조하는 환영인사를 들어야 했다. 교도소안의 엄정한 질서야말로 한 사회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구치소장을 만나거나 수감자의 면회를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높으신 모검사님의 주선으로 별 까다로운 절차를 밟지 않고도, 오히려 환대를 받으며,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수감자들의 대우고 죄질에 따라 훨씬 엄격하게 구분된다. 교도시설과 인원이 절대 부족한 우리의 실정에서 교도관들의, 엄정한 질서유지를 위한, 사소한 구타(?)등의 행위를 비민주적이라고 비난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도업무는 성직과도 같은 "힘들지만 보람있는"일이다 등이 그 설명의 주요골자들이다.
교도소가 한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이러한 질서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떨쳐버리기 힘든 의문 때문에 구치소장의 열변이 다소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미쉘 푸코가 지적하고 있듯, 광인수용소가 기득권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어진것인 것처럼 이런 교도소도 어떤 특정 가치체계를 고수하기 위하여, 이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은 "범죄와의 전쟁선언"이라는, 일국의 대통령 체신에는 걸맞지 않은, 호들갑이 결국 어떻게 악용되고 있고 또 그럴 수 있는가를 곰곰 되씹게 되는 요즘 세태 때문에 더 강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처음 학생을 면대하면서 우리는 놀랐다. 너무도 당당하고 밝은 표정이었으며 순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운동권 학생은 결손 가정에서 자라나 성격이 삐뚤어져 있다'는 공안당국자나 지녔음직한 편견을 아직도 덜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기만이 정의로운듯한 이들이 가혹한 현실에 접하여 느끼게될 후회나 번민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불의에 분노하지 못한 자신들의 소시민적 비겁함을 다소나마 정당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후회할 일이라면(우리처럼)하지 않는 게 더 현명한 일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질문도 궁기가 서려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가?"혹은"그런 행위를 통해 무엇인가 나아지리라 기대를 했는가?또 실제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결국 자네만 이 고생이 아닌가?"물론 우리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야 한다는 이런 상황에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인생론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변절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또 그 말이 학생들이나 옆에서 면담내용을 열심히 적고 있는 교도관의 비위를 상하지 않아야 한다는 염려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훨씬 어른스럽고 정연했다. "단 한번의 노력으로 무슨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고 기대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행위가 올바른 사회를 세워 나가는데 조그만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꼭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고 자신의 행위를 억지로 정당화하려한다는(우리가 기대했던)독선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당당함에 우리의 대응은 고작, "뭐 필요한 것이 없는가? 뭐 먹고 싶은게 없는가?"정도였다. 그들이 하나같이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권을 했던 것은 물론 우리의 앙량한 동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강권에 못이겨 그들이 머뭇거리며 열서너명에 이르는 '수감동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닭파우치'(닭고기 일부를 튀긴것)를 우너했을 때, 우리는 다시 속물스럽게 얼마 되지 않는 우리의 출장비를 속셈해야 했다.(나중에 우리가 타고 내려온 새마을 열차의 차비에 비한다면, 또 그안에서 난생 처음으로 먹어본 '오늘의 특별정식'의 가격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우리는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은 물론 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내내 그런 비교를 해보지도 못했다.) 음식물을 차입하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이를 통해 수감동표들로부터 '교수님들' 면회의 보잘 것 없는 차입 때문에 수모를 당하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으시댈수도 있으리라는 소시민적 기대마저 갖고 있었다.
여학생들을 면회하면서 우리의 당혹스러움은 더해갔다. 볕을 쬐지 못해 더욱 해맑아진 얼굴이(다시 우리들 자신의 되지도 않는 편견에 의하면) 전혀 운동권학생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수들이 면회를 하면서 똑같은 말만, 그것도 교도관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계속한다는게 영 체면이 아니라는 초조감이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초조함은 실수를 낳는 법. 우자에 다름아닌, 예전 운동가의 변신을 예로 들어가면서...중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학교 시절에 지니고 있던 '2에서는 3을 뺄 수 없다'는 등의 단편적인 지식이 천박해 뵈듯이 지금 여러분이 정의 혹은 진리라 부르짖던 것들이 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도 단편적이고 소박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게 마련이며 어른들이 모두 비겁하거나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만은 아니다 등이 우리들 횡설수설의 대체적인 요지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짐하듯 그 변신한 운동가의 '득동송'을 인용했다. "세월이 흘러가야만 깨달을 수 있는게 있다"라는...
이에대한 여학생의 응답은 얄미울 정도로 차분했다. '최선을 다한 시행착오는 성장의 튼튼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국민학교 시절을 거치지 않은 중학교 생활을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들의 이러한 행위가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주 유치하고 어리석어 보일런지 모르지만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갖고있는 최대의 지식과 또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최고의 가치에 근거한 것이며, 사실 건가한 어른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들 행위의 모든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그의 말을 인용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취지는 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변절한 운동가를 매도하지 않는 여유를 유지하였다.
그는 어쩌면 우리들의 딱한 사정까지도 헤아리고 있는 듯 했다. 교도관이 만약, 그들이 우리 앞에서는 당당한 모습을 보였지만 구치소로 되돌아 가면서는 눈물을 흘리더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의 돌아오는 발걸음은 훨씬 무거웠으리라. 우리들 방문의 의미를 조금도 확인할 수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추운 겨울이 오기전에 하루 빨리 풀려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구치소에서는 차입이 금지되어 마실 수 없던 술을 함께 마시며 서로서로의 아픔과 허약함을 위무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들과 같은 젊은이들이 온몸의 희생으로 분노를 토로할 수밖에 없는 혼탁함이 하루 속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기원해서만 될 일이 아님을 뻔히 알지만, 이것마저 없다면 우리들 존재가 너무도 초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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