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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인디테인먼트 선언’ 비긴즈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이휘현(2019-08-14 15:30:38)



스마트폰의 출현 이후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며,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 게임도 하고 책도 본다. 하루 중 나의 눈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다. 길쭉한 네모, 바로 스마트폰 액정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세상 어디든 무엇이든 누구든 통할 수 있다. 이제는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일상어처럼 통용되는 '혁신(이노베이션)'은 스마트폰의 또 다른 고유명사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0여 년 사이 스마트폰으로 인해 인류의 지성이 역사 이래 최초로 퇴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인간관계는 얄팍해지고, 감성은 단순해져 가며, 인내는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고, 게임 중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폭력성은 유례없이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스마트폰 사용 능력 차로 인한 신 구세대 간의 갈등은 그 골이 점점 더 깊어져 결국에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도 쏟아진다.
이 전대미문의 문명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철저하게 후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후자'였다'. 스마트폰 용도의 팔 할 이상은 전화기로 사용하고, 나머지 지분은 시간 때우기용 포털사이트 검색에 할애하는 정도! 말하자면 이 거대한 스마트폰의 바다에서 외딴 무인도에 유배된 원시인으로 살아온 셈이다.
물론 나는 유배자로서의 삶을 내 스스로가 선택했다고 자부해왔다. 그것도 당당하게. 웹의 세상을 악으로 규정하고, 스마트폰을 전혀 스마트하게 바라보지 않는 고고한 쇄국론자. 3G 이후의 인류는 스스로 지성을 팽개쳐 버린 무지몽매한 반(反)문명인이라 한탄하며 그렇게 꿋꿋하게 스마트 월드의 높은 파도를 맨몸으로 버텨 왔던 것이다.


이런 나의 고집에도 언제부턴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새만금표류기>라는 예능 콘텐츠를 기획한 상태여서 답사랍시고 새만금 내부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었다. 그 때 함께 동행했던 외주제작사 감독에게서 무척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소위 웹 방송이라는 영역의 BJ라는 사람들 이야기는 물론, 어설프게 알고 있던 유튜브라는 채널의 어마어마한 상업적 규모와 유튜버라는 신세계의 셀럽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흥미는 관심으로 이어지고 관심은 실천으로 나아갔다. 작년 가을 <새만금표류기>라는 프로그램에 인기 BJ와 유튜버들을 출연자로 등장시킨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KBS 각 지역총국은 물론 본사 예능국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결과를 놓고 보면 이 모험은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또한 자부하고 싶다;;).
4박5일 동안 새만금에서 인기 BJ 그리고 유튜버들과 경험한 신세계는 이 지면에 세세하게 다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웹이라는 공간을 통해 엄청난 팬덤을 확보하고 있음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것만 밝힌다. 비로소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새로운 세상이, 그리고 전혀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가 이미 이 세상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현생 인류를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 대신 Phone을 대입시켜 탄생시킨 신조어 '포노 사피엔스'는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면을 통해 탄생했다. 십여 년 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선보이기 시작한 스마트폰이 인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영국의 권위 있는 언론이 멋드러진 문장 하나로 정리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인 변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모든 의식과 행동을 뿌리째 흔드는 경천동지의 사태였다. 그야말로 인류에게 또 한 번의 거대한 물결이 들이닥친 셈이다.
허나 이미 언급했듯, 이 거대한 변곡점을 목도하는 인류의 심정은 복잡미묘하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길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멸망의 구렁텅이로 처박을 것인가.


최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이 낳은 새로운 인류를 목도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자 애쓴다. 잔에 물이 반밖에 차지 않았다는 불만보다는 잔에 물이 반이나 찼다는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최재붕 교수에게 포노 사피엔스 세상은 무한한 기회의 영역이다. 거대한 농토가 높이 솟은 굴뚝의 공장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 굴뚝이 다시 연기 없는 디지털에게 제왕의 자리를 빼앗기면서 파생된 것은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군의 탄생을 뜻한다는 것. 그것도 과거 국영수 위주의 암기왕이 아니라 웹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감수성에 맞는 특정한 공간을 키운 새로운 엘리트가 출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유경제를 통해 독점이 해체되고 SNS를 통해 인간관계가 무한히 확장되며 롤 플레잉 게임을 통해 다양한 역할놀이를 경험하는 세상. 스마트폰이 구현한 새로운 웹 생태계를 통해 힘을 얻은 변두리가 철벽처럼 강고하던 중심을 통쾌하게 부숴버리는 세상.
다양한 예시와 구어체를 통해 쉽고 명료하게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상분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거나 누구나 알만한 특정 대기업에 대한 호의적인 언사들이 약간의 찜찜함을 안김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주변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보고 싶다. 나처럼 오랜 시간 '주변부'의 감수성에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 새로운 세상이 멋진 기회의 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참에 내가 새로 만든 신조어 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인디테인먼트'가 그것인데, 인디펜던트(Independent)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합친 단어다. 그간 인디 음악, 인디 영화 등 몇몇 독립 장르들이 있어왔다. 나는 이 개념을 더 확장시키고 싶다. TV에서도 '인디 예능'이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굳이 출연료 비싼 유재석이나 강호동을 데려다가 기존 캐릭터에 기댄 안일한 메이저 예능 만들지 않아도, 재미만 있다면 불특정 다수들에게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다 포노 사피엔스 세상이 만들어 낸 새로운 콘텐츠 흥행의 생태계가 건넨 상상이자 희망이다. BTS가 이를 이미 전 세계적으로 증명하지 않았나. 능력만 있다면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은 누구에게든 도깨비방망이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지면 관계상 이렇게 맛보기로 전달했지만, 조만간 나는 이 '인디테인먼트'라는 신조어로 꽤 장황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그리고 콘텐츠들도 쏟아낼 것이다. 타이틀은 이미 정했다.
'인디테인먼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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