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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한 장의 사진, 진실 그 이상의 이야기를 쏟아내다
김군
김경태(2019-08-14 15:25:37)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김군>은 하나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군용트럭 위에서 기관총을 앞에 두고 불쾌한 듯 카메라를 노려보는 20대 남자의 사진. 보수논객 지만원이 당시 북한특수군 600명의 개입을 주장하기 위해 그 사진을 대표적인 예로 이용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사진 속 남자는 '제1광수'로 북한의 전 농림상이었던 '김창식'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단 하나. 얼굴에 몇 개의 포인트를 찍어(?) 비교해서 보면 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매우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광주 시민군들을 북한고위관료들의 얼굴과 매치시키며 수많은 광수들을 조작해낸다. 그 당사자들이 그에 반발하며 그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지만, 정작 제1광수로 꼽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는 사진 몇 장에 기댄 채 그의 현재 행방을 찾아 나선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전두환과 그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라는 거시사적 담론은 이제 평범하지만 뚜렷한 인간의 얼굴을 갖는다. 


참고로,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아는 정보는 '김군'이라는 사실뿐이다. 제작진은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광주시민들과 그 현장을 촬영한 사진기자를 만나 김군이 등장하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들은 사진들을 통해 각자가 상상하는 김군들에 대한 이야기를 꼬리를 물며 들려준다. 즉, 그들은 우선 목격자의 시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채 그 사건을 관망한다. 인터뷰의 목적은 인터뷰이들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김군이라는 동료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질문들은 찬찬히 그들에게 스며들어 이내 자신들이 겪은 끔찍했던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우회로가 된다. 30여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충격과 아픔은 여전히 생생하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김군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한 냉철한 이성은 저들의 내밀한 고백 앞에서 주저 없이 무너지고 길을 잃는다.


사실 영화는 김군을 찾기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인터뷰이들은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한 채 서로 엇갈리는 이야기를 한다. 제작진은 김군을 둘러싼 이야기를 넘어서곤 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묵묵히 귀 기울 일뿐이다. 편집 역시 증언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정서적 고양에 초점을 맞춘다. 하물며 누군가 저 사진 속의 김군이 자기라고 주장하며 나온다 한들, 그것을 입증할 '과학적인' 방법은 요원하다. 중요한 건 김군에 대한 진실이 아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더 이상 진실게임에 갇힌 채 소모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사진들 속 이미지는 진영 논리에 따라 각자의 의도대로 해석되고 소비된다. 이미지란 원래 그렇게 불완전하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객관적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남아있을 수 없다. 불충분했던 사진은 의외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미지는 힘이 세다. 비록 그 힘은 진실 그 자체에 복무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진실에 가닿으려는 감각들을 깨우기에는 충분하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주인공이 베어 문 마들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기자가 남긴 사진들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마지막에 이르러, 인터뷰에 참여한 과거 시민군들이 하나둘씩 극장에 모여 서로의 생존을 치하하고 스크린에 펼쳐진 사진들을 함께 관람하며 동료애를 다진다.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던 새댁은 노인이 되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주먹밥을 나눠주며 그날을 반복해서 산다. 살아남은 이들은 죽은 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살고, 또 다른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 죄책감과 고마움은 현재의 또 다른 불합리한 사태에 발 벗고 나서서 맞서 싸우도록 해주는 정서적 동력으로 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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