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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연재 [백제기행]
오래된 공간, 도시의 미래를 열다 [부산]
마당ㆍ전주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기획 도시기행
오민정(2019-04-16 12:53:40)



도시, '개발'에서 '재생'으로

지난 시대 많은 우리나라 많은 도시들의 화두는 '개발'이었다. 하지만 개발중심의 도시정책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도시의 확장으로 인한 도심공동화 현상, 상권의 변화, 인구 감소와 주거환경 악화문제 등을 낳았고, 이제 단순한 도시기능의 쇠퇴를 넘어 도시 소멸 등 도시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국가와 지자체들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재생'은 시대의 화두이자,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2013년에 제정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도시재생은 '인구의 감소와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와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 환경적으로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재생은 인구가 현저히 감소하는 지역, 총 사업체 수의 감소 등 산업의 이탈이 발생하는 지역, 노후주택의 증가 등 주거환경이 악화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관련한 5개 법정 지표를 도시재생지역 선정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부터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관련법이 제정되고 중앙정부 차원의 시스템을 마련해 온 데 비해 그 간 주목할 만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뉴타운 정책 등 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은 부동산 투기와 주민들의 내몰림현상(젠트리피케이션), 이와 관련한 주민 및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니며,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 에콰도르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에서는 지구촌 모든 국가가 직면한 이러한 도시문제에 대해 '포용도시'를 지향하며 지속가능한 도시 등 앞으로의 도시재생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주기도 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 들어 도시의 유형,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조금 더 체계적인 시도이자 도시재생현장의 체감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토교통부 이외에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도시재생 유관사업과도 연계하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2019년 첫 도시문화기행, 부산

올해 마당 도시문화기행의 시작은 '부산'이었다. 사실 부산은 2017년에도 도시문화기행으로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이다. 2년 전, 기행을 통해 만난 깡깡이 예술마을과 비석마을, 감천문화마을은 지역문화예술의 저력이 도시재생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기도 했다.


지난해 지역문화대표브랜드 공모전에서 깡깡이 예술마을이 최우수상에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깡깡이 예술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부산 영도구가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도시재생으로 부산이 이렇게 새롭게 주목을 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라도 올해 부산을 방문해봐야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이번 기행이 부산이라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부산행을 신청하게 되었다.


삼진어묵과 대통전수방

부산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삼진어묵'이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어묵을 떠올릴 것이다. '삼진어묵'은 부산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업체다.

'우연히 영도다리 밑에 있던 점집에서 점을 보게 되고 사업을 하면 성공한다는 점쟁이의 말에 아내의 금비녀와 금반지들을 팔아 어묵자재들을 구입하고 도기회사를 하다가 남은 창고에 이전에 배웠던 기술을 이용해 어묵을 만들기 시작했다'


판매장 벽면에 붙어있던 창업주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한국전쟁 이후 부산 근현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현재 삼진어묵은 3대 째 가업을 이어 오며, 전시·판매장과 체험관, 바로 맞은편에 어묵을 컨셉으로 한 전문 식당을 갖추어 비즈니스 모델로서도 트렌디함을 더했다. 젊은 감각을 더한 제품개발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도입 등으로 어느새 7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향토기업으로 성장한 삼진어묵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위해 사단법인 '삼진이음'을 설립하고 바지선 항구 앞 물류창고들을 활용해 영도구청과 '대통전수방(大通傳授房)'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대통전수방은 지역의 장인들과 청년들을 이어주어 지역 내 전통기업들의 노하우를 전수, 장인의 기술을 계승하고, 창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자, 창의산업공간으로 변모한 물류창고를 일컫는 명칭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운수 '대통'. 크게 통한다는 의미로 기술 뿐 아니라 역사, 문화자산이 전수되어 과거, 현재, 미래는 물론 지역이 크게 통하게 된다는 뜻을 담은 대통전수방은 한편으로 영도 관문 지역에 좋은 기운들이 들어오는 큰 통로로 만들겠다는 영도구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통전수방은 영도구가 2020년까지 진행하는 봉래동 일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어묵에서 시작해 현재 영도구의 6개 분야 장인들의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대통전수방을 다녀오면서 바지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걷다 물류창고를 개조한 코워킹 스페이스를 발견했다. 기행에 동행해주신 강동진 교수님께서도 '최근까지 보지 못했던 곳'이라며  잠시 들른 곳이었는데, 분위기가 바뀌자 민간에서 이런 움직임들이 하나 둘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전형적으로 사무실이 갖춰야 할 입지조건을 극복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힘과 상상력, 지역청년들의 저력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깡깡이 예술마을

깡깡이 예술마을은 자갈치시장 건너편, 영도대교, 남항대교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 항구마을이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 최초 발동기를 사용한 배를 만든 '다나카 조선소'와 '나카무라 조선소'가 세워졌던 수리조선사업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공식명칭은 대평동이다. 하지만 배 표면에 녹이 슬어 너덜너덜해진 페인트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소리가 난다하여 '깡깡이'라는 명칭이 불리게 되었고, 이 소리가 마을 너머에까지 울려펴진다 해서 깡깡이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깡깡이 마을에 들어서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박한 배들과 주공복합(?) 아파트다. 오래된 아파트 아래에 수리소와 배와 관련된 부품가게가 즐비한 풍경은 정말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다. 가게 간판에 적힌 '소방, 뗏목 수리'등의 문구도 독특하고 재미있었는데, 이런 부분들이 남아있고 아직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괜히 부럽기도 했다.

 2년 만에 찾은 깡깡이 마을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변화가 처음 다가온 곳은 항구에 자리 잡은 '깡깡이 안내센터' 였다. 주민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깡깡이 안내센터는 예인선을 활용하여 예술가들이 상상을 더한 '신비한 선박체험관'과 해상투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해상투어는 4월부터 진행된다고 하여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선박체험관에서 키를 잡으며 운항을 가상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곳곳에 마련된 작가들의 작품이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주민해설사분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 곳곳을 둘러보다 보니, 새삼 '지역문화대표브랜드'에 왜 선정이 되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년 전에는 예술가들이 벽화와 예술활동(레지던시 등)이 곳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들이었다면, 이제는 그 활동이 더 확장되고 세련되어 졌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실제 조업을 하고 있는 공장 벽면에는 한국 최초 수리 조선사업단지의 역사를 지나가면서 볼 수 있도록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골목길 자체가 박물관의 전시실처럼 구성한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깡깡이를 테마로 한 웹툰으로 꾸며진 전봇대 등 곳곳에 적용된 상상력과 디테일에 감탄을 하며 걷게 되었다.


"옛날에는 깡깡이 마을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다닌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지."


함께 걸으며 들은 주민해설사분의 설명에 이 곳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깡깡이질에 종사하던 마을여성들이 '깡깡이 아지매'라는 용어로 대표될 만큼 수리조선업으로 번성하던 마을은 1990년대에 들어 지역경제의 급속한 변화로 치명타를 입었다. 조선업의 대형화, 수산업 비중 약화, 신항만 건설에 다른 물류유통의 변화, 더욱이 도심에 있던 연이은 지역기관들의 이전은 영도 경제에 큰 악영항을 미쳤고 낙후된 곳, 발전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패배적인 분위기가 짙어가던 곳이었다. 그러던 곳이 2015년 '예술상상마을'공모에 선정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의 제안으로 시작된 변화는 현재 영도구청, 대평동마을회, 영도문화원이 추진단을 이끌어 냈으며, 부산의 근대문화유산과 산업유산을 보전하고 문화예술의 상상력을 통한 재생형 모델로 탈바꿈했다. 특히 이를 통해 근대조선산업 발상지라는 역사성과 해양문화의 원형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마을의 특화 브랜드로 연결시킨 점은 깡깡이 예술마을만은 독특한 자산이 되고 있다. 또한 '문화사랑방'과 '물양장살롱'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단초로서 깡깡이 마을과 주민의 관계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마을의 이런 변화에 대한 기록과 산업전통 계승 노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정말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과 주민참여의 교과서적인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F1963

F1963은 최근 몇 년간 전국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부산의 '핫플레이스'이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간 철 와이어를 생산하던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이었던 곳이다. F1963에서 F는 Factory, Fineart, Forest, Family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F1963의 탄생은 창업주의 혁신적 발상과 사회공여를 위한 헌신에서 출발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이후 부산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2016년 비엔날레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전시장과 공연장, 서점과 카페 등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더해 곧 문화예술(미술, 음악, 사진, 건축)을 테마로 한 전문적인 도서관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은 이제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으니, 창업주와 사모님은 이 공간을 문화로 시민들과 함께 하시고 싶었다고 해요. 사실, 공장이전 후 이 일대는 아파트 부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아파트 대신 공장부지를 활용한 문화공간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F1963에서의 시간은 시작부터 와이어로 지탱하는 사옥의 건물과 아카이빙, 넓은 부지와 세련된 구조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은 창업주의 스토리와 지역의 기업으로서의 역사, 그리고 향토기업으로서 지역환원에 대한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굉장히 인상 깊은 시간이었다. 부산은 아마도 이런 과정 속에서 주민들이 오랫동안 지역의 번영을 이끌어 온 향토기업을 기억하고,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낸 기업과 주민이 함께 산업유산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F1963은 지역의 산업유산이 재생을 통해 새로운 지역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적 관점에서 공간과 도시를 재구성하다
부산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참 부럽다'는 것이었다. 삼진어묵, 고려제강과 같은 향토기업들이 건재하고 있고, 기업은 지역환원을 고민하며 민간의 힘으로 문화와 도시재생에 투자하고 변화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이 지역 근현대사의 단면이자,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고, 이를 계승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는 점이 이상적인 협력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내가 방문했던 부산은 예술가들이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생의 현장이었다. 지금도 부산에는 예술가들이 레진던스 활동을 통해, 작업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이제 거기에 더해 주민들과 기업이 나서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을 통한 재생을 원동력으로 이를 지속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해 고민하고 운영과 협력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된 공간, 도시의 미래를 열다'라는 테마로 방문한 2019년의 부산. 이번 기행은 한때 '벽화마을'이라는 주제로 확대 재생산되던 일률적인 문화재생의 모델을 넘어 도시재생, 그리고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방향과 가능성, 그리고 가치에 대해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도시재생의 수단으로서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을 되돌아보고 상생을 모색하는 파트너로서 주민과 행정, 기업과 예술가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던 이번 기행과 2019년 3월의 부산의 풍경을 나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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