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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 | 연재 [유주환의 음악이야기 ③]
몸에 좋은 인공감미료 한 자밤!
유주환(2019-03-22 16:50:39)

"예술이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특정한 각성을 위해 자연스러움에 부득이 손을 대는 행위다. 선택하고 생략하고 확대하며 흥미롭게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왜곡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다."

- 박형서 '개기일식' 중에서, 2016년 



요한 네포무크 훔멜은 18세기 빈의 작곡가입니다. 훔멜의 재능은 자주 모차르트와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그 재능에 대해 세상은 꽃, 수긍, 질투 같은 것으로 반응합니다.  아직 젊었던 그가 하이든의 후임으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훔멜이 거머쥔 에스테르하치의 악장은 모두가 소망하던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카를 체르니도 18세기의 작곡가입니다. 그를 두고 베토벤은 하나에 열을 깨닫는 신동으로 치켜세웠습니다. 그 명성은 베토벤이 여전했을 때도 극심했고 베토벤이 여전하지 않을 때도 극심했습니다만, 오늘 우리들 중에는 '체르니 30번'의 체르니가 사람 이름인 걸 처음 알았노라, 너스레 떠는 이도 있습니다.


그 통운通運의 지경에서는 체르니가 좀 더 유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두꺼운 전공서적에 한 줄로 간신히 살아남은 자가 훔멜인 반면, 체르니는 체르니 30번 때문에라도 이름이 남겨졌으니까요. 고전주의 작곡가의 수는 기록으로만 사백이 넘습니다. 살아서의 그들 대부분은 자기가 최고라 믿었을 겁니다. 다들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주의의 대표를 기억하고자 하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만을 꼽게 됩니다. 궁금합니다. 그 많던 음악가 중 어쩌다 셋만 남게 되었는지, 나머지는 망각으로부터 왜 안전하지 못했는지.


답은 간단합니다. 음악을 역사로 기록하는 이들의 '농간' 때문입니다. 이들은 음악에서의 사건을 '일상'과 '자극'으로 나누고, 자극에 기여한 사건들에 존재할지도 모를 알고리듬과, 그 산법에 작동된 '편견'을 동원해, 이편과 저편으로 음악을 나눕니다. 그러니 역사가가 사건 하나를 일상으로 볼 것인지, 자극으로 볼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 예술가는 훔멜도 되고 베토벤도 되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카Carr의 말마따나, 역사가가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편견의 순간이 바로 역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의 사유를 모두 부당한 것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름의 합리적 기준을 근거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건을 중대한 자극으로 판단할 것인가. 여기에는 대략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미적 가치에 충실한가.'
작품이 아름다워야만 역사에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예쁜 선율의 음악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학적으로 멋진 본새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월의 밭일로 거칠어진 농부의 손이 있다고 칩시다. 그 거칠고 시커먼 마디마디를 예쁘다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만, 기실 그 손이 아름답다, 이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정직한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을 공양한 손이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은 모두 138개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작품을 통해 베토벤은 강한 어조로 자신의 말을 전달합니다. 그의 <합창 교향곡> 마지막 악장은 소음으로 시작됩니다. 가수는 그 소란의 다음 소절에서, 이제 시끄러운 분쟁일랑 집어치우자, 외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합창>을 예쁜 작품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음악이 베토벤의 도구가 되어 신념을 토하고 있으니, 역사는 이를 아름다운 자극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제공되었는가.'
역사가 주목하는 또 다른 조건입니다. 하이든은 은둔의 작곡가였습니다. 당시 그는 헝가리가 지배하던 아이젠슈타트Eisenstadt 에스테르하치Esterházy 궁정에서 30년간 일했습니다. 그가 군주와 맺은 고용계약의 대부분은 규제의 더미입니다. 궁전 밖에서의 사사로운 음악회가 금지되었고, 자기 악보를 반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희소가 가치로 변하여 적지 않은 하이든의 작품이 불법의 행태로 돌아다녔습니다 (이 불법 복제의 유력한 범인으로 하이든을 지목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아, 이게 하이든의 작품이야?!" 그 악보는 당시 음악가들에겐 아주 좋은 학습지였는데요, 단정한 고전의 감수성과 기술이, 일관된 형식에 담긴 예, 그 지속적이고 모범적인 산출물이 하이든의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한결로 일관했던 하이든의 작품을 중요한 자극으로 평가했습니다.   

 

셋째, '당대의 유행을 선도하였는가.'
역사는 그의 음악이 입은 옷을 베스트 드레스와 워스트 드레스로 구분하고, 자극의 조건으로 삼습니다. TV에서 디자이너의 의상 쇼를 볼 때가 있습니다. 저 옷은 데일리다, 저건 특별한 자리에 좋겠다,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데 어떤 옷은, 저걸 과연 어찌 입고 다니라는 건지, 난처할 만큼 과감합니다. 예를 들어, 음악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베토벤은 과감한 스타일을 선호한 사람이니, 그 음악을 대중의 것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모차르트의 디자인은 어떠했을까요? 모차르트의 음악에 종종 과감함이 번득이긴 하지만, 그 디자인의 고갱이란 세상 유행을 더 화려하고 모던하게 만들 줄 아는 기술에 있습니다. 그 수려함이 귀족의 애호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역사는 그 화려한 감각을 중요한 자극으로 평가했습니다.  


가치 있는 아름다움, 작풍의 꾸준함, 유행의 선도. 이 세 가지 자극의 조건에 저는 다른 하나를 더하고 싶습니다. 균형으로 가미된 '인공의 감미료'라는 덕목입니다. 감미료란 식재료 본래의 맛에 특별한 각성을 더하려 첨가하는 물질입니다. 학생 때 저는 훌륭한 음악이란 자연을 닮은 것, 이라 배웠습니다. 자연의 그 압도적 응당함과 개연이야말로 미의 극치이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주장에 설득당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박형서는, 합리적 사건의 모방에만 그치는 것은 예술이 아니며, 부득이 자연에 인위함으로 각성을 제공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 주장합니다. 저는 그 인공적 감미의 태도가 건강한 예술의 조건 하나다, 훔멜과 체르니가 역사의 자극으로 선택되지 못한 이유에는 그들 음악이 자연적 합리성을 우선한 탓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 유연한 합리가 우리를 편하게는 하지만, 유연함이 그 몸의 전부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우리를 허무하게 합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모두 누구들의 후배 작곡가이며, 누구들의 선배였지만, 특별히 유난했던 그 셋은 형식, 분위기, 드라마에 '어떤' 각성의 감미료를 넣을 줄 아는 이들입니다. 감미료를 언제 넣어야 하는지, 몇 개의 자밤이 적당할 것인지, 훈련된 재능으로 그들은 판단했습니다. 그 가미를 은연중에 즐겨했던 하이든은 음악이 고상하고, 산뜻한 조미를 즐겨한 모차르트는 화사하며, 강한 양념은 베토벤을 메시지의 작곡가로 만들었습니다. 


인공의 감미료가 중요한 이유가 더 있습니다. 작품에 첨가된 감미료의 정체와 양은 그 작품 창조자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미궁입니다. 왜냐하면 이 뜬금없는 감미료란 잘 훈련된 재능의 창조자가 무의식으로 결정한 미스터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베토벤에게 왜 그 화음을 그렇게 결정했는가? 묻게 된다면, 그의 답은 뻔합니다. "그냥?"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작곡할 수 있는가,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언젠가는?" 이것이 지금까지 저의 대답이었습니다만, 앞으로 한동안도 그 말로 대신할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작곡을 하게 하려면, 먼저 음들의 패턴을 수로 바꿔낼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는데, 그 유기적인 알고리즘을 입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예술적 사고에 관한 지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뇌 활동의 지도라고 부릅니다. 유감인지 아닌지, 우리는 우리 뇌와 체계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의 음악 작품이 멋진 자극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의식으로 첨가하는 뜬금없는 감미료가 필요합니다. 음악의 어느 지점에 감미료가 필요할 것인지, 이 뜬금없는 사유의 판단은 지도로 표준화하기 어려울 일입니다.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이 만들어 내는 음악은 통계와 확률과 계산에 근거한, 아주 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체르니스럽고 훔멜스러운 소리의 조합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 일상의 조합이 자극을 제공한 적은 없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왜곡이며, 예술의 가치는 어이없이 뒤틀린 의외성에 담보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기계가 하기 어려울 일입니다.


훔멜, 체르니, 인공지능에게 심심한 유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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