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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 인터뷰 [인터뷰]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다
대안교육공동체를 꿈꾸는 '모두학교' 김병희
최정학(2015-12-15 09:39:20)

 

 

 

저녁 7시, 전주시 평화동 주공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상종합사회복지관 3층은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로 가득하다.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 하나 둘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예의바르게 인사하며 교실을 나선다.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을 둘러싸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재미있었던 일들, 누가 괴롭혔던 일들…. 내딛는 걸음마다 아이들에게 팔을 붙잡히면서도 김병희 씨는 그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인다. 때로는 호응해주고, 또 때로는 진지하게 아이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이곳은 방과 후 대안학교, '모두학교'다. 말 그대로 방과 후 시간에 대안학교에 버금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 모두학교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는 김병희(43) 씨다. 공식직함을 모두학교 팀장. 지역신문사, NGO 등에서 일하다가 30대 중반에 사회복지를 공부한 늦깎이 사회복지사다. 5년 전 학산종합사회복지관으로 발령받아 오면서 모두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학교에 아이들 보낸 학부모였다가, 2013년에 운영을 제안 받고 이제는 학부모이자 교사로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어"

"지역 내 방과 후에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이 생각보다 적어요. 그러다보니 학부모들 대부분이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죠. 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다보니, 아이들도 정해진 시스템대로 움직이게 되고요.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됨으로써 학부모도 아이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능력, 그러니까 자주성을 잃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학교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방과 후 시간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방과 후 학교'이지만, 여기에 더해 '대안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현재 교육의 기본적인 방향은 경쟁위주, 입시위주입니다. 공교육도 마찬가지에요. 사교육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죠. 부모들은 막연한 불안감과 조바심에 시달리며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을 아이들과 갈등하며 지내고 있어요. 이런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복지관 중심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재미있게, 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방과 후 대안학교, 모두학교'다. 2011년부터 1년간 고민하고 기획해서 2012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다섯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시작했다. 모두 학산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이었다. 그 중에 한명이 김병희 씨다.
"준비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크게 두 가지 정도였습니다. 하나는 남의 눈치 안보고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였고, 또 하나는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나가고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성이 길러지기를 바랐던 것이죠."

모두학교가 꿈꾸는 것은 일방적인 지식전달과 일률적인 학습체계, 그리고 성적순으로 서열화 시키는 경쟁중심의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스스로 학습하고, 타고난 재능을 찾고 계발하여 이웃과 나누고, 경쟁의 논리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 사랑의 원리를 배우고 실천하여, 결국은 아이들 스스로가 삶의 주인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할 일을 짜는 '자주시간표'

모두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시간표를 직접 짠다. '자주시간표'라는 것인데, 모두학교에서 한 달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미리 계획하고 실제로 그렇게 생활한다. 모두학교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의 얼굴만큼이나 서로 다른 시간표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영어와 수학은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그 밖의 시간들은 아이들이 피아노, 줄넘기, 수영, 탁구 등등을 선택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죠.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그 시간을 스스로 운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PC방 같은 경우도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그래서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떤 게임을 누구와 몇 시간 할 것인가를 약속하고 보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하죠. 아이들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면서 예의를 배우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사랑을 배웁니다."
대신, 아이들은 매일 모두학교를 나서기 전 '자기주도활동일지'를 적는다. 스스로가 했던 약속을 오늘 하루 잘 지켜냈는지를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점검하는 것이다.

 

육아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 학부모 집담회

모두학교는 입학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에게 아이에 대한 기본정보, 양육태도, 교육철학 등에 관한 질문을 통해 면접을 보고 한 후 입학을 결정한다. 모두학교의 교육이념, 비전 등에 동의하는 학부모들과 함께 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모두학교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가치를 내건 교육공동체입니다. 우리 교육철학에 동의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거죠. 모두학교는 아직 완성된 학교가 아닙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은 같이 해야 할 부모들이 관건인거죠."
부모들은 매주 한 번씩 집담회를 갖는다. 한 시간을 목표로 '수다 떨고' 헤어지는 자리이지만, 늘 넘기기 일쑤인 시간만큼이나 모두학교 운영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테이블 위에 오르는 주된 이야기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생활상이나 변화 등을 이야기하며 얻는 정보나 통찰이 많다. 그리고 여기서 얻는 것들은 모두학교 운영에 반영된다. 부모들은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그 고민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깨닫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아이들만큼이나 부모들의 의식도 함께 변하고 있어요. 아이가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이런 것이 바로 교육운동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모두학교가 문을 연지 이제 만 4년. 그 사이 학생들은 초등학생 14명, 중학생 8명으로 늘었다.

"모두학교의 방향은 옳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도 지난 4년간은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 고민했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이제 조금씩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과 그리고 부모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거죠. 내년이나 내 후년에는 조금 더 큰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다'하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김병희 씨의 소망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가 아이 키우는 일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며, 대안교육을 소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동체를 이뤄 살아보는 것이다. 방과 후 대안학교 '모두학교'는, 지금 마을과 함께하는 방과 후 '대안교육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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