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4.8 | 인터뷰 [꿈꾸는청춘]
옛것을 공부해서 새로운 그릇을 채워요
고전번역가 강지혜
방재현 객원기자(2014-08-01 16:40:06)



 

 



현대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현실을 숨 가쁘게 살아나간다. 새롭게 쏟아지는 것들을 습득하기에 바빠 지난 일을 곱씹거나 향수에 젖는다는 것은 쉽사리 사치로 전락한다. 마찬가지로 수천 년 전 선조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민한 흔적들이 별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고 치부되기 십상이다. 여기 옛것을 붙잡고 씨름하며 그로부터 지혜를 배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청년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고전번역가의 길에 들어선 강지혜(28)가 그 주인공이다.


새로운 세계, 재미를 붙이다

그는 어릴 적, 아픈 할머니를 곁에서 보살펴주는 간호사와 나이팅게일 전기를 보며 간호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간호학과에 합격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와 현실적 이유로 진로는 급수 정됐다. 2005년, 그는 전주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한다. 자유롭기 만한 대학생활에 익숙해지는 것도 잠시, 소속감도 없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으로 대학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을 지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어요. 성실함과 책임감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추천하는 선배가 권유했죠. 무엇인지도 모른 채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이라는 조선시대 중죄인들의 심문 기록을 한글로 번역하는 프로젝트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어요.”

사실 이전까지는 한자와 한문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다. 한글만 보며 자라온 세대로 가로왈 자와 날일 자도 구별하지 못하는 그였다. 연구보조원 일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팀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한자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2학년 무렵, 2급 자격을 취득하고 나서 보니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글자들이 연결되면서 문장이 해석되고 이해되는 것이 새로웠고 재미가 붙었다. 내친걸음, 한자자격증 1급과 사범 자격도 취득했다.


과거를 되새기며 새 힘을 얻다

추안급국안 프로젝트의 3년간, 날을 새가며 번역된 문장의 교정을 봤다. 그러나 신기할 정도로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았고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듯 몰두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역사 전공을 선택했다.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한문을 만났으니 한문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를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연치 않게 만난 ‘한자’와의 인연은 그를 학부에 이어 사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조선후기사를 전공하게 된다.

첫 인연이었던 고전번역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대학원 입학과 함께 고전번역원의 번역자 양성 과정에도 입학했다. 낮에는 대학원에서 밤에는 번역원에서 두 가지 공부를 소화해 내야 했기에 쉴 틈이 없었다. 가끔씩은 심적 압박감과 조바심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옛사람들의 살아가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과거로 돌아가곤 한다. 선인들에 감정이입을 하면 희열을 느끼며 새 힘이 난다. “옛사람들의 언행이나 일상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면 ‘이때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구나’ 하고는 무릎을 치게 되요.”

한문을 구조적으로 면밀히 분석해가며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공부하는 대상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품어본 것도 이 시기였다. 방학기간 중에는 예전 유생들이 서원에서 생활하듯이 전국의 장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서원학습’을 다녀왔고 그 안에서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온 동료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던 탓인지 번역자 과정을 마칠 때는 고전번역원 원장상을 타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는 중에도 박사과정에 진입했고 어느덧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의 대학생활은 오롯이 옛글들에 바친 셈이 됐다.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옛글들을 붙잡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10여년이 훌쩍 흘렀다. “일찌감치 관심에 맞는 분야를 찾아 흥미를 느끼며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주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곁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부모님과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있어서 여기가지 오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옛사람들의 삶에서 지혜를 배우다

강지혜양은 아직도 꿈을 키워 나가기보다는 꿈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좋아서 결정하고 온 길인만큼 힘든 순간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고 온다 해도 스스로 감당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왔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요. 마라톤 하듯이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면 꿈과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 같아요.” 작년에는 벼슬을 지냈거나 덕망 있던 인물의 생존 시 행적이 담긴 시장(諡狀)을 번역했었고 지금은 임금에게 의견을 올리던 상소(上疏)를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권역별 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에 준대형연구소로 선정되면서 그도 향후 30년간 번역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고전번역가로서의 목표도 한층 두렷해졌다.

고전번역을 하며 그는 현대 생활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기술의 발달이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정신적 풍요로움은 그에 따라가지 못해 사람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 옛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현재를 살아낼 수 있는 지혜와 지침들을 그는 발견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 그 삶들이 얽힌 이야기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공통된 분모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구나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도 현재를 돌아보는 기준이 되고 근거가 되어줘요.”


이제 본격적으로 옛것들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20대에 봤던 고전과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고전은 또 다르게 보인다. 시간이 흘러 30대, 40대에 보게 될 고전들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설레는 맘이 앞선다. 그렇게 그는 옛것들을 통해 소통하고 현재를 연결시키려는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갈 생각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고전을 번역하며 어떤 그릇을 채우게 될지 그의 몫은 커져만 간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