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4.6 | 인터뷰 [꿈꾸는 청춘]
술 권하는 작곡가
사단법인 수을 이가원 기획실장
김이정 기자(2014-06-03 09:26:36)




가양주는 집에서 빚어 마시는 술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집에서 김치를 담는 것처럼 술도 집집마다 빚어 마셨다. 그 술로 손님을 접대하고 명절을 나고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집에서 술 빚는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02년 전통술박물관이 개관하고 그 하위조직으로 교육관과 작은 양조장이 생겼다. 이 세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수을은 전통 가양주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곳이다. 지난해에는 가양주 명인을 뽑는 국선생 선발대회와, 한손에는 술잔을 들고, 판소리부터 레게음악까지 풍류에 취할 수 있는 술판도 같이 벌어졌다. 술과 이야기, 음악 3박자가 고루 어우러졌고, 사람들은 흥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향긋한 술 냄새가 진동하는 곳, 그리고 이곳을 이끄는 팔방미인. 아쟁을 연주하고 음악을 작곡하며, 축제기획까지 맡고 있는 수을의 이가원 기획실장이다. 


수을愛 빠지다 


“다이나믹한 삶을 살았어요.” 이가원 기획실장은 그의 20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과 학원자주화투쟁, 매향리 미군기지 문제, 북한 대학생들과 통일 문제에 대해 논하며 열정적으로 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일이 하고 싶었으니까.’ 

그는 배움은 가장 넓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배움을 통해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고향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하늘도 그 뜻을 아셨던 걸까. 지난해 김제에서 지역풍물과 관련해 무박 3일 축제기획하고 있던 중이었다. 축제행사에서 쓰일 술을 협찬받기 위해서 전통술박물관에 접촉을 하던 중 뜻하지 않게 전통술박물관 측으로부터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고심 끝에 지난해 6월부터 수을에서 기획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주중에는 오롯이 수을의 일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작곡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체질적으로 겁을 안 내는 편이에요. 연극에서 음악감독이 대본을 분석하고 소리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처럼 수을의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수을의 큰 사업 구상에 대해 큰 틀과 행보를 정하고, 실무에서 필요한 업무는 하부 구조의 전문가들이 맡아서 하게 되죠. 적절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 음악 작곡을 하는 일과 수을에서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이 결국엔 일맥상통하게 되더라고요.”

전주한옥마을에는 2002년 전통술박물관이 개관하고 그 하위조직으로 교육관과 작은 양조장이 생겼다. 수을은 전통 가양주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곳이다. 그는 교육관과 작은 양조장, 전통술박물관 등 3개 기관을 총괄 운영하면서 방향을 잡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주한옥마을 술축제가 열렸던 동문거리의 술집들에서는 독특한 술판들이 벌어졌다. 레게음악과 풍물, 풍자 판소리, 게릴라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전통주와 함께 어우러진 것. 술맛에 취하고, 음악에도 취하는 축제였다. 안주는 ‘뒷담화’면, 충분했다.

“축제에는 술과 음악이 빠질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러한 풍류문화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죠. 바로 이야기, 이야기 중에서도 ‘뒷담화’에요. 술자리에서의 뒷담화는 가장 인기 있는 안주거리에요.” 

그는 술이 단순한 소비가치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 전통주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주도(酒道)의 문화에 매력을 느꼈다. 전통주는 다른 주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할 수 있는 양도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전통주에 깃들어 있는 술의 정신을 배워 선조들이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술을 빚어 나눠마셨던 문화처럼 생산적 가치로 자리 잡길 바래요. 아직까지는 전통주 분야가 다른 주종에 비하면 희귀분야이자 소수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전통주 산업을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이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할 실정이에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국선생선발대회의 수상자들이 20, 30대의 젊은이들로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죠.”


아시아의 샤먼을 꿈꾸다


평일에는 수을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곡 작업에만 몰두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작곡을 하는 일도, 술 빚고 축제를 기획하는 일도 그의 인생에 있어 동일선상에 있다고 여긴다. 그가 수을의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여태 준비해 온 것 같다는 생각들로 이어졌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 했다. 지금껏 잘해왔고 나쁘지 않았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그는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을 뿐이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지난해 수을이 인증 사회적기업이 되었고, 내가 계획했던 대로, 예상했던 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릴 때 가장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최근 영화 역린을 봤는데 이런 대사가 있더라고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게 된다.’ 그 대사처럼 지금까지 쭉 해온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에게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 혹은 그가 바라는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샤먼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답했다. 샤먼은 무당이다. 무당은 하늘의 뜻을 땅에 전하고 사람의 말을 하늘에 전하는 이다. 가슴에 맺힌 것들이 한없이 풀어지도록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 아니면서 귀신이어야 하는 게 무당이다. 인간과 신이 친구처럼 어우러져 울고 웃으며 큰 잔치를 엮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무당이다. 예로부터 고민이 있으면 우리네 선조들은 무당을 찾아가 근심걱정에 대하여 상담하고 푸지게 굿을 했다. 그러고 나면,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가 샤먼이 되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무속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향을 민족음악을 공부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서점에 가면 제일 먼저 가는 코너가 음악관련 서적 코너가 아닌 민속학과 민화, 무당과 관련된 책들을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되더라구요. 기회가 된다면, 세계의 샤먼에 관련된 이야기들, 신화와 설화 등에 관하여 연구하고 싶어요.” 

아버지의 권유를 통해 어릴 적부터 시작했던 아쟁과 국악, 축제와 술, 이 모든 것이 결국은 그가 원하는 삶인 샤먼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앞으로 전주에 눌러앉아 발칙하고 새로운 문화를 펼쳐볼 요량이다. 

그의 기대되는 앞날을 위하여 이상은 높게 술잔은 평등하게 건배사를 외쳐본다.   



 주도,  축제,  음악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