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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인터뷰 [인터뷰]
더 섬세하게 더 자유롭게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낸 김용택 시인
박상미 대중문화평론가(2013-07-03 22:33:14)

뜨거운 입술을 위하여
김용택 시인의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작과비평사,2013)을 두고 시인과 함께한 대담을 정리하다가 문득,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예전엔 김용택의 시를 좋아했는데, 섬진강 시는 다 비슷하겠지 싶어서 요즘은 안 읽은 지 오래됐네… 다녀오면 김용택 시인 얘기 꼭 들려줘.” 시인을 만나러 전주행 버스를 타는 내게 당신이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한옥 마을에 내리는 노을이 한번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의 시에 대한 많은 이들의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나를 전주까지 내려가게 한 것 같아. 당신에게 주려고 산 시집을 옆에 놓고 이 글을 쓰고 있어. 시집의 제목을 가리고 당신에게 읽어줬다면, 당신은 아마 김용택 시인의 시집인 줄 몰랐을 거야. 학교를 벗어난 그의 시는 더 젊어지고, 자유롭고, 섬세해졌어. 이제까지 그가 낸 다수의 시집 중에 나는 이 시집이 앞으로 가장 주목 받을 거라 생각해. 요즘 사람들은 참 시를 안 읽는 것 같아. 당신처럼 말이야. 시인을 만나러 가기 전에 새시집에 대한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보았지. 대부분이 이 시집에도 섬진강 연작시 네 편이 들어있다는 내용이더군. ‘섬진강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전국의 학생들이 그의 시를 배우고 시험도 보지. ‘민중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국민 시인’ 김용택- 그런데, 나는 그 타이틀이야 말로 시인에 대한 ‘오해’의 응결체라고 생각해. 시인은 한 편 답답하고 억울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인은 자연을, 민중을, 생명력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그의 시를 잘 들여다보면 그건 일부에 불과하거든. 김용택의 시는 시골의 정서와 도시의 정서를 다 가지고 있는 동시에,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사유를 담고 있어. 시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들이 많지. 그래서 연령과 학력에 상관없이 넓고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해. 특히 이번 시집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체온을나누는 소통이 부재하는 현실… 세상의 식은 입술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어. 도시의 한복판에 서서 사회 전반의 식은 입술들을 향해 부르는 노래야.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내가 사라진 너의 텅빈 눈동자를/ 내 손등을 떠난 너의 손길을/ 다시 데려올 수 없다… / 아직도 어머니의 식은 젖꼭지를 물고 징징거리는 구차한 문학적 가난이/ 자라다만 /철없는 시대의 응석이 나는 싫다 / … 오오, 사랑이여! 이제 나를 끌어안아다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시는 시대를 사는 일
시인은 지금, 여기,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곳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의 현장에서 “세상 속으로 혀를 깊이 밀어 넣는”(「바퀴들은 쉬지 않는다」) 시를 쓰고자 하고, 시가 그에게 찾아 왔을 때 “떨렸어/ 네 몸을 열고 들어와/ 내게 숨은 것들을 다 찾아 폭파시키던… 오! 시,/ 시였어.”(「달콤한 입술」) 라고 온 몸을 떨며 시를 맞이해. 시인은 자본주의의 이면을 바라보며, 날이 선 격정적인 목소리로 비판하는 시들은 영상으로 살아나서 그고통을 함께 느끼게 하더라. “자본 아래 자살과 타살은 동음이다./ 얼굴 없는 초력자의 조종자가 된다… 스스로를 잡아먹고 거대해져서/ 내키고 닥치는 대로 입술을 빼앗고 씨를 섞어 임신하여/ 자기도 모르는 새끼를 낳고… 무생물이 무생물을 낳는다.”(「농사의 법칙」) 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도시의 뒷골목에 서서 시인은 “눈물을 흘리는 터미네이터를 만들고 싶다… 그들이 무엇이든지 한 손에쥘 수 있다고 싸우는 동안/ 서정의 철조망을 넘어간 시들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기아에 허덕인다.”(「바퀴들은 쉬지 않는다」)며 서글픔을 표출하기도 한다네. 마지막엔 “막강한 나의 적은 나다”(「농사의 법칙」) 라고 고백함으로써, 자본주의와의 싸움이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자 반성을 동반하는 싸움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청년의 뜨거운 고민이 담겨 있는 시들이야.시인은 이렇게 말해. “시를 읽어도 옛날 시각으로 읽으면 안돼요. 철없는 시대적 응석이 나는 싫어요. 시대는 변하는데 낡아버린 정서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나요. 나는 끊임없이 공부합니다. 시골에서 섬진강 시만 쓰는 줄 아는데, 나는 시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모든 신문의 칼럼을 정독하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구태의연한 시를 쓰고 싶지 않아요. 시대는 늘 변하기에시를 쓰는 사람이야말로 시대를 주도하고 같이 가야 합니다. 아직도 시인들이 시대적 응석을 부리는게 싫어요. 감상적 예술에서 벗어나 정치, 예술, 문화 모든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지요. 우리는 아직 김수영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어요. 문인은 가난해야 한다, 외로워야 한다, 이런 생각은 응석입니다. 어린양에 불과한 거예요. 시대와 대등해야하고. 정치와 경제 모든 것과 당당하게 서서 시를 쓰고싶습니다.”정리하자면, 이 시집은 시인이 우리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안타까움과, 뜨거운 애정을 함축하고 있어. 우리 시대의 언어인거야. 달콤하고 행복해야할 키스를 잊은 사회, 소통이 없는 사회에 대한... 우리가 원하는 삶은 따뜻하고 달콤한 키스를 나눌 수 있는 삶인데 말이지. 우리의 소망은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정치권력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어. 식은 입술들이 이쪽이냐 저쪽이냐 편들기를요구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는 이 시가, 나는 참 아프더라.“전쟁 때 할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총을 맞고/ 나무토막처럼 산비탈을 굴러가다/ 삼밭머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 북해도에서 석탄을 캐다 돌아온 아버지는 그들의 총탄을 날랐다./ 밤이슬에 옷을 적시며 어둔 산을 넘고 강을 건너와/ 어머니 곁에 누우면/ 어둠의 저쪽에서 후래시를 들이대고/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 아버지는 겁에 질린 얼굴로 어린 내게 되물었다 … 나는 나의 아들과 딸에게/어느 쪽이냐고 되묻지 않을 것이다 … 쏠 테면 한번 쏴봐라.”(「정면」)

청년 김용택의 시
왜곡된 역사의 정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당당히 맞서고 있는 이 시를 봐. 영화 ‘시’에 배우로 출연했던 배우 김용탁이 말했지. ‘잘 보라.’ 시는 내가 현실을 잘 들여다 볼 때, 어느 순간 내게 오는 것이라고. 시인은 여전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정신의 혈맥을 잃은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쏠테면 쏴봐라”며 맞서는 것이지.‘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나의 시」) 마음으로,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시를 쓰는 사람, 나는 그를 ‘청년 김용택’이라고 부르고 싶어. 학교를 벗어난 그의 시는 더 젊어졌고, 냉철한 시선으로‘지금’, ‘여기’를 깊고 뜨겁게 응시하고 있어.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시 한 편을 읽어줄게. 이 시는 읽는 순간, 영상이 되어 머릿속에 펼쳐져. 한 편의 영화 같은 시야. 예순이 넘은 남자 시인이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해. 시인의 목소리는 20대 초반의 여성의 감수성에 흠뻑 젖어 있지.마치 빙의 상태에서 쓴 시처럼…. 피츠버그, 한 낮의 버스 정류장, 햇살과 바람과 낮달이 마음을 적시는 어느 한 장면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해. 들어 볼래? 안녕, 아빠/ 지금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 마치 시 같다/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한 그루의 나무 같다/ … 나무들은 계획적이다/ 정면으로 꽃을 피우지/ 나무들은 사방이 정면이야, 아빠/… 폭풍을 기다리는/ 고요와/ 적막을/ 견디어내지 못한 시간들이/ 잎으로 돋아나지 못할 거야/ 나는 가지런하게 서서/ 버스를 기다려야 해/ 이국의 하늘, 아빠/ 여기는 내 생의 어디쯤일까?/ 눈물이 나오려고 해/ 버스가/ 영화 속 장면처럼 나를 데리러 왔어/ … 쓰러지는 것들도, 일어서는 것들처럼/ 다 균형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게 될 거야/ … 아빠, 삶은 마치 하늘 위에서/ 수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바람 같아/ 안녕, 피츠버그/ 내 생의 한 페이지를 넘겨준 피츠버그/ 그리고 그리운/ 아빠.(「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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