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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 인터뷰 [이십대의 편지]
평범하게 사는 청춘이고 싶다
정상석(2013-02-05 10:36:30)

결혼하면 아이 넷을 기를 것이다. 이름은 순서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음악을 가르쳐서 가족연주회를 열어야지. 이름은 사계절콘서트가 좋겠다. 성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아들 하나, 딸 셋으로 해야겠다. 둘은 낳고 둘은 입양할 생각이다. 국력 증진을 위한 인구의 재생산이라는 거창한 사명감은 아니다. 오랫동안 그려온 단란한 가정의 꿈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외 알바를 뛰는 친구들에게 들었다. 한 과목에 20만원은 기본이란다. 초등학생도 그렇다고 한다. 그 친구가 부럽기보다, 미래의 아이들 걱정이 먼저였다. ‘우리 애들이 과외 시켜 달라고 하면 어쩌지?’ 그뿐만이 아니다. 난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못 받았다. 우리 집은 약간 차이로 국가장학금 대상이 아니었다. 성적도 부족했다. 집에서는 죄인이 됐다.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알바를 구할 수도 없었다. 부족한 용돈이라도 메우기 위해 대학생기자단 같은 대외활동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집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깎은 자취방 월세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추워서 보일러 좀 돌렸던 저번 달의 가스비 고지서는 내 멘탈을 붕괴시켰다. 어제 먹은 유통기한 지난 빵 때문인지 이틀 동안 아껴먹은 참치 캔 때문인지 소화기관은 위화감이 가득하다. 밖에선 티 안내고 다니지만, 실상은 참 궁상맞게 살고 있다.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아이 넷을 잘 키울 수 있을까?

흔히 20대를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청년들을 말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열명 중 넷이 삼포세대라고 한다. 평균 초혼 연령은 1997년 남성이 28.6세, 여성은 25.7세에서 각각 31.9세, 29.1세로 늦춰졌다(2011년 기준). 출산율은 2012년 기준 1.23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요즘은 하나가 더 추가돼 ‘사포세대’라는 말도 생겼다. 취업을 위해 많은 청년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존심’까지 내던졌단다.

원인은 두말할 필요 없이 ‘돈’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등록금, 기약 없는 취업준비, 불안정한 일자리, 높은 집값, 아낄 수 없는 양육비, 끝없이 나가는 사교육비….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삶의 비용을 국가가 아닌 개별 가족이 부담해왔다. 그래도 살만 했다. 그 비용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변했다. 시장 실패를 개인이 뒤집어썼다. 오늘날 1000조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수많은 가족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양육과 교육 등 가족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벅차게 한다. 결혼해서 애 낳고 가장되는 평범한 일로 여겨졌던 일조차 특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좋은 소식은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에서 다양한 복지정책을 제시했다. 연간 27조원씩 5년간 135조원을 복지에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올해 확대 편성된 복지 예산에 따르면 정부는 저소득층에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3세부터 5세 이하 어린이에게는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보육료를 지원한다. 국가장학금 수여대상은 지난해 하위 30%에서 하위 70%로 확대된다. 등록금 평균 37%에 달하는 장학금은 50%로 확대된다. 근로장학금과 정부 학자금 대출 수혜 대상도 늘어난다. 청장년·어르신·여성 맞춤형 일자리 사업도 확대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저 공약들이 박근혜 당선인의 혜안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청년들이 끊임없이 정부에게 요구해서 얻어낸 것일까? 당연히 후자이다. 반값등록금은 실패했지만 국가장학금이 실시되고 대상이 확장되는 것은 한국대학생연합과 그에 동조한 수십만의 대학생들 때문이다. 고용보험과 맞춤형일자리 사업이 확대되는 것은 청년유니온과 함께한 수많은 청년들의 노력 덕분이다.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들을 위해 아프면 아프다고 함께 소리지르는 청년유니온에 나는 매 월 오천 원을 자동이체하고 있다. 대가 없이 청년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프랑스 대학교 등록금이 저렴한 이유가 프랑스 대학생들의 투표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반만 맞는 말이다. 프랑스 청년들이 투표율은 높지만 전체 세대별로 볼 때는 딱히 높다고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곳의 등록금이 싼 이유는 ‘68혁명’이라 불리는 극렬한 학생운동의 결과물이다. 게다가 당시 집권정당은 보수정권이었다. 우리라고 못할 게 있나? 세상의 모든 삼포세대들이여, 청년을 대변하는 단체에 힘을 실어주자. 가서 피켓을 들어도 좋고 입금을 해줘도 좋다. 정 사정이 안 되면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이라도 달자.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다. 마냥 땡깡 부리는 것도 아닌데, 설마 절박하게 요구하는, 자식 같은 우리를 무시할까? 좌절은 그만, 일어나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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