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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인터뷰 [사람과사람]
장수 지지꼴에는 그의 '품'이 있다
도예작가 나운채씨
황경신 기자(2003-07-03 14:17:03)

고향도 아니고, 한번 와본적도 없다는, 그저 산과 물이 있는 곳을 따라나서다 보니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는 사람. 도예작가 나운채(43세)씨의 터전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에 자리잡고 있다. 도예터 '지지꼴'은 인적드문 비포장길을 수미터는 달려야 닿는, 장수군에서도 오지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폐교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도록 지난 한해 소중한 일들을 벌였다. 지난 가을 한달동안 열렸던 '지지꼴 도예문화제'가 그것.

"제가 이곳에서 단순히 작업만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생활근거지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작업이 됐음 하는 생각에서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내가 작업하는 곳이 곧바로 전시장이 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는 것이 맞겠구나 했죠. 실제로 그 기간동안 1백50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다녀갔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보이는 행사가 아니었다. 도예 체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했고, 들꽃피는 마을학교와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학생들의 현장 체험도 진행됐다. 이번 문화제는 번암면 주민들과 이곳을 찾은 이들의 '작은 축제'가 되었다.

도자기를 굽고, 연극공연이 펼쳐지고, 마음을 녹이는 시인들의 시낭송속에 걸죽한 막걸리 사발이 서로서로 오갔다.

나운채씨의 고향은 전남 장성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과 작업활동을 하던 그는 우리나라 도자기의 최고지로 꼽히는 이천의 공방을 운영하던 중 우연히 어느날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단순히 그릇을 만들고 판매를 하는 일들도 의미가 있지만 이천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장삿꾼들이 꼬이게 마련이고 점점 나도 장사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막연히 자연을 느끼며 이상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섰죠. 폐교가 맞겠다 싶더군요. 학교자체가 의미가 있는 공간이고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배움을 익혔던 곳 아닙니까? 길이 없을 것만 같은 골짜기에서도 길이 열려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혼자 몸으로 내려온 이곳에서 그는 새 식구들을 얻었다. 그의 새 식구들은 다름아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들꽃피는 마을'의 아이들이다.

'들꽃피는 마을'은 정규학교와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받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그룹홈의 형태로 운영되는 대안학교다. 다른 대안학교들과는 달리 학교의 형태를 갖추고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활터전을 제공해주는 가정의 역할을 담당한다.

"내자식, 내부모만 있는 사회에서 상처가 많은 아이들입니다. 한달동안은 서로 견디기 힘든 탓에 오고가기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이젠 같이 살아간다는 의미를 너무 잘 알지요. 가을에는 전국 각 가정에 흩어져있는 들꽃 아이들 모두가 이곳으로 수련회를 오기도 합니다."

그가 아이들과 생활하며 가장 힘든 일은 인적드문 그곳에서도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동정어린 눈빛과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들중 한놈은 벌써 자신도 작가가 되겠다며 열심히 흙을 빚어내고,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기쁨에 여행을 떠난 또다른 아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허전한 요즘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겨우 만 5년을 넘어서지만 지역문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각별하다.

"서울에 있을때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많이 힘들었는데 이곳에 오니 중앙과 지방이라는 박탈감이 또 있더군요. 이곳 사람들에게 서울은 지방이 돼야 하는데 말입니다. 장수군에서도 많은 사업들을 벌이고 있지만 논개빼면 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접목이 적은 탓인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이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매일아침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그 산에 오른다. 길이 없을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길을 발견하고, 앎이 그친다는 '지지(知止)꼴'에 작업장이 아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앎을 이어가는 나운채씨. 그가 알아가는 '앎'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지꼴에 들르는 사람들과 들꽃같은 아이들과 상생하는 마음, 함께 살아가는 순리를 깨닫는 순간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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