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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 | 인터뷰 [아름다운 당신]
우리는 책으로 지역과 소통하고 싶다
고창 책마을해리 이대건, 이영남, 박형주 씨
이세영 기자(2014-02-05 14:08:25)

고창군 해리면 월봉성산길, 옛 라성초등학교에 책마을이 자리잡았다.  책마을해리의 핵심은 고창이 고향인 이 촌장을 중심으로 이영남 버들눈도서관 관장, 박형주 편집팀장의 3인이다. 이 촌장과 이 관장은 부부사이, 박 팀장은 고향후배로 이 촌장과 엮여 있다. 서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이 그들의 말로 ‘깡촌’에 들어온 사연이 제법 길었다.

      

책마을이 세간에 알려진 건 최근의 일이라지만 실상 책마을해리의 역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마을해리 이 촌장이 폐교된 라성초등학교를 매입한 것이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기증한 학교였는데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냥 매각하는 것은 기증자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후손에게 구입의사를 먼저 물어온 거였죠.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교육사업을 하면 어떨까 싶어 집안 어른들과 상의해 학교를 구입하게 됐습니다.

이 촌장이 선뜻 학교를 구입하고자 했던 것은 나름의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책마을에 대한 꿈이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책마을은 폐교를 매입하며 하나둘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해 어린이 청소년 책공간 ‘꿈, 다시피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8년 방문자 숙소를 리모델링하고, 2010년에 버들눈도서관만들기 캠프 통해 도서관을 열었다. 2012년에 책마을해리를 열고 출판캠프를 시작했으니 6년만에 책마을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리모델링이 더디게 진행되다보니 언제 끝나냐며 주위에서 성화입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하나씩 책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책마을해리는 변하고 있다. 10만권의 책을 가진 책박물관은 아직 서가에 책이 다 꽂히지 못했다. 서가도 준비해야 하고 전시공간도 꾸며야 한다. 올해에는 더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책마을의 전시대 등 전시공간을 꾸밀 재료를 가져올 욕심에 촌장은 요즘 경기도 작은도서관 축제 기획위원장으로 발품을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책마을해리를 소개해 달라하니, 이대건 촌장은 책마을해리를 ‘범주’개념으로 설명한다. 널따란 책마을해리에 지역의 문화를 양껏 담고 싶은 생각에서란다. 물론 고창어린이책박물관, 버들눈도서관, 이야기학교 라성, 누리책공방 등이 책마을해리의 범주 안에 실재한다.

이 촌장이 생각하는 책마을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책마을해리의 범주에 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다. ‘책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로 외연을 넓히면 출판계 친구들, 출판문화운동을 하는 사람, 도서관 사서, 도서관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책마을해리의 범주 안에 든다. “많은 분들이 책을 기증하고, 관심을 기울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겨울이라 아쉽네요.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

 

삼년전 문을 열기 전까지 셋은 모두 각자의 직장이 있었다. 이 촌장은 꽤 괜찮은 출판사의 편집 주간이었다. 서울시립대 국문과를 졸업하기도 전에 출판사 일을 배웠으니 20년의 세월을 출판계에서 보냈다. 그만큼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으며 한창 일할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 제 이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20년동안 출판 편집자 생활을 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책마을 운동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더 늦으면 내려올 수 없을 것 같아서 기회를 잡았습니다.

책마을을 꿈꾸며 서울에서 내려와 주말을 보내고 가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이 촌장 혼자 내려와 풀을 베거나 교사를 관리했다. 틈틈이 아는 출판사와 지인들을 통해 책을 모으면서 책마을을 준비했다.

차츰 할 일이 많아지며 아내인 이 관장도 이 촌장과 함께 책마을에 들렀다. 하지만 선뜻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오는 것을 결정하기는 힘들었다. 이곳이 그의 시댁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시골로 내려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시댁마을만 아니었다면 더 빨리 내려왔을지도 모르죠. 2년정도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고 정신이 분산돼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두 딸아이들도 큰 문제는 안됐다. “시골에 가면 동물원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내려왔다. 그렇게 막상 내려오고 나니 우려와 달리 불편한 점은 없었다. 바쁘고 일이 많아졌지만 정신만은 오히려 가뿐해졌다. 아이들도 친구들이 없는 게 흠이지만 시골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그는 그 특기를 살려 편집을 주 업무로 하며 책마을해리의 안팎살림을 도맡아 한다.

박 팀장은 이 촌장덕에 인생이 바뀐 경우다. 이 촌장과는 같은 고향 선배로 가끔 연락을 하던 사이였다. 이 촌장이 어느 날 ‘고창에 뭐 하나 하는데 같이 가보자’고 했다. 조경기사였던 그는 선배가 하는 일이니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이 촌장의 주말행에 동참했다. “하룻밤 여기서 자고 가면 편안해졌어요. 노후에 고창에 가서 살아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이 일이 잘되면 나도 여기서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박 팀장은 조경기사일을 그만두고 이 촌장과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책마을 일원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직업까지 바꾸게 된 것이다. 아직도 서툰 게 많지만 배우면서 하나씩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깡촌에 내려와서 뭐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 부분은 돈을 많이 벌어 여유롭게 살 것인가, 욕심없이 만족하며 즐거운 삶을 살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주체적 삶을 고민하는 출판캠프

 

이렇게 모인 셋은 도서관에 쌓인 책을 정리하고 건물들을 고쳐나갔다. 6년여동안 모인 10만권의 책을 서가에 꽂는 일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시간은 더디게 가지만 그들의 계획대로 차근히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책마을해리의 문을 열고 출판캠프를 시작했다. 책마을출판캠프는 지역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책의 기획에서 제작까지 직접 할 수 있게 한다. 지난해 출판캠프에 다녀간 아이들은 1천여명에 육박한다. 강의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했다. 같이 온 선생님과 학부모들도 같이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입소문을 타고 출판캠프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덕에 책마을해리는 상당히 고무돼 있다. 지역에서 출판운동이 가능하다는 단초를 본 셈이다.

“‘내가 세상의 주체다’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직접 연습해 보는 일은 많지 않아요. 저자가 된다는 체험을 통해 주체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내 이름으로 만든 책이 생긴다는 것은 누구나가 볼 수 있는 공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저자가 된다는 경험은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 캠프에서는 책에 들어갈 저자소개를 스스로 하게 한다. 훗날 자신의 모습을 쓰는 이 순서를 지내고 나면 아이들의 태도가 많이 바뀐다고 한다. 출판캠프에서 아이들이 만든 책은 책마을해리의 출판사 ‘나무늘보’에서 출판한다. 이렇게 출판한 책은 ‘날아라, 직업체험탐사대’ ‘15소년영국표류기’를 시작으로 귀농귀촌 자녀들이 만든 ‘고창은 한 권의 책_고창愛 살어리랏다’, 부안초교 학생들이 만든 ‘습지는 한 권의 책’, 천안여고 학생들이 만든 ‘한권의 책 습지’, 고창 행복원 어린이들이 만든 ‘책에 빠진 고창고인돌’ 등이 있다. 모두 아이들이 쓰고 그리고 만든 책들이다.

 

 

지역의 콘텐츠로 먹고살고 싶다

 

그렇다 해도 책마을이 꿈꾸는 내일은 출판캠프에만 있지 않다. 그들이 도서관, 전시관, 공방, 농장을 만들고 일반서적을 내는 도서출판기역과 어린이 서적을 내는 나무늘보를 각기 만든 것은 지역의 콘텐츠를 책마을이 엮어 가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판캠프의 큰 주제를 ‘생태 생명’으로 정했습니다. 출판과 이 지역의 영농체험이 상관 없어 보이지만 저희는 그 간극을 깨고 싶었습니다. 영농이라는 것은 실제 농업뿐만 아니라 지역의 소중한 콘텐츠를 활용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역의 생태, 역사, 문화, 예술 모두가 이 지역 사람들이 만든 것이잖아요.

책마을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것이 이들의 고민이다. 책마을을 영농조합 ‘꽃피는’으로 만들고 향토산업마을에 지원하고 지역 산물을 유통하려는 것은 모두 이런 차원이다. 지역의 콘텐츠를 활용하고 실질적으로 지역민과 함께 먹고 사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결국 어떻게 수익모델을 찾고 책마을의 자생력을 갖추느냐 하는 고민이다. 어렵지만 출판캠프에 주민들을 참여시켜 체험을 돕게 했다. 책마을의 자생력은 지역주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어쨌든 이 공간에서 책이 만들어지고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꾸며지잖아요. 무언가 만들어지는 곳의 기능을 하자, 마을과 함께 실질적으로 먹고사는 것도 해결하자는 생각이죠. 책마을이 책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의 공간으로서 자생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올해 지원한 향토산업마을은 주민과 소통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책마을의 의지다. 향토산업마을을 만드는 것보다 책마을과 주민과의 소통이 우선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 책마을 사람들의 삶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책 만드는 일이야 누가 신경쓰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전혀 생소한 일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돼요. 앞으로도 이런 일들을 많이 만들 생각인데, 우선 마을사람들과 어디까지 소통이 되는지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분명 티격태격 싸우겠지만 끊임없이 시도할 겁니다.

 

 

전국에 책마을해리를 만드는 꿈

 

책마을에서 준비하는 것 중 하나는 지역이 인적 공간적 네트워크를 이루는 일이다. 도 차원에서 몇 군데 지역이 함께 하는 책 축제가 그것이다. 작가, 전시, 공연 기획자들이 함께 각 지역의 책축제를 준비하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책축제를 통해 지역의 문화역량을 결집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축제가 진행되면 또 다른 책마을 해리가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큰 꿈도 꾼다.

그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만난 세상은 눈으로 소복이 덮였다. 그들이 들려준 책마을해리의 내일을 기약하듯, 여백으로 남겨진 한국화가 그려지고 있었다. 먼 훗날, 책마을해리를 소개하는 책에는 어떤 모습으로 그들이 그려질까 상상한다. 책마을출판캠프에서 아이들에게 쓰게 했던 ‘저자소개’류로 말이다.

 

김대건 : 20년 출판편집자로 활동하다 책마을해리 촌장으로 50년째 재직 중. 막일 못한다는 구박에도 꿋꿋이 버티며 책마을해리를 맨손으로 마을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전국에 100여개 책마을을 만들어 지역의 출판문화를 꽃피우게 했으며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이용해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이영남 : 전국에 산재한 책마을해리 도서관을 두루 살피는 총괄 관장. ‘시월드’로 이사하며 맘고생을 했으나 500대 기업으로 성장한 책마을 해리의 안팎을 살피며 ‘시월드’를 평정했다. 출판캠프를 찾은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만들고 늘어나는 식구들 보는 낙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