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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 | 인터뷰 [세대횡단 문화읽기]
천상의 소리로 만나는 세상과 타인(他人)
문화저널황경신기자(2003-03-26 16:44:34)

신이 선사한 소리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사람의 목소리, 천상의 소리는 곧 우리 몸에서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가리킨다. 목소리의 음악이 곧 성악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띄우는 소중한 한걸음의 음악은 바로 '합창'.
이번달 세대횡단 문화읽기는 전주교대 음악과 김성지 명예교수와 전주시립합창단 상임 지휘자 구천씨가 봄이 오는 길목에 마주했다. 두 사람은 지휘자라는 같은 음악의 길을 걷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주시립합창단 창단 지휘자나 다름이 없는 김성지 교수와 현재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구천씨는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끊임없는 '합창예찬(禮讚)론'을 펼치며 그들의 악기 '목소리'의 기량을 과시했다. 물론 그들이 풀어놓은 예찬론은 합창음악의 바탕이 흔들릴 만큼 위기를 맞고 있는 대중화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의 또다른 표현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김/주위 분들이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있습니다.
구/그동안 합창음악의 발전을 위해 너무 많은 애를 쓰셨고, 지금도 여전히 애써주시고 계신데 얼마전에 악보를 과다하게 보셔서 눈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수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김/아이구, 내가 뭘 얼마나 했다고 그럽니까. 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지듯이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 쉽게 아프기 마련이죠. 그래도 나이가 그냥 드는 건 아닌 것 같습디다. 이제와서 배우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남아있고, 또 새롭게 배우고 느끼고, 요즘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살고 있습니다.
구/교수님께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바로 '정년퇴직'인 것 같습니다. 호적상으로 연세는 그렇다쳐도 항상 젊은 저희보다 앞서고 당당한 모습이 '정년'이나 '퇴직'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아보입니다. 퇴직이후에도 많은 활동들 여전히 하고 계시죠?
김/공식적인 건 없습니다. 교회 성가대 돌보면서 틈틈이 학교 강의에 나갑니다. 집에서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습니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그래도 음악을 해서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음악하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퇴임이 없지 않습니까?
구/물론이죠.

손가락 세가며 박자를 맞추던 그 시절
구/저는 항상 교수님을 전북 합창음악을 이끈 귀한 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교수님의 활동을 바탕으로 보완하고 변화를 시켜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활동하신지 이제 40년도 넘으셨죠?
김/그렇죠. 그저 좋아서 시작한 것이 합창인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려. 1960년에 아마추어 합창단인 '목가합창단'이 처음이었죠. 당시만 해도 변변한 연습장소도 없고 공연장소도 없어서, 지금 전주 중앙동 가족회관 자리에 옛날에는 전주 공보관이 있었거든요. 그곳에서 첫 연주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박자계산을 손가락 세가며 하던 시절이었죠, 연습할 장소 찾아서 한밤중에도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수한 사람들이 열정하나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구/전북 합창음악의 변천사와 함께 하신 셈인데요. 아마추어 합창단들의 많은 활동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김/연주단체들을 중심으로 전북지역의 합창음악의 변천사를 정리해 볼 수가 있는데, 1960년부터 시작됐다고 봐야겠죠. 목가합창단의 뒤를 이어서 1965년 예수병원 직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있어죠. 제가 창단을 해서 35년간 지휘를 맡았습니다. 그리고도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할렐루야합창단이 있었는데 정기연주회를 15회나 했어요. 뿐만 아니라 전북초등교원합창단, 중등교사합창단, 동별로도 합창단들이 있었고 지금에 비하면 아주 많은 합창단들이 어려움속에서도 활동들을 했었죠.
구/그렇군요. 60년대 아마추어 합창단 활동을 시작으로 결국 전주시립합창단이 태동하게 된 것 아닙니까?
김/전주시립합창단을 맡은 건 1987년인데,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죠. 한번 아예 없어졌다가 비상임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도중에 내가 맡았는데 비상임이다 보니 다들 직장에 다녀서 야간연습을 하며 힘들게 명맥을 유지해왔죠.
그리고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운영되는 상임합창단으로 거듭났고, 제 뒤를 이어 지금은 구천선생이 와서 아주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아이구 아닙니다. 모든 여건이 열악하던 시절에 희생적으로 이끌어주신 교수님 덕택이죠. 요즘 어떤 분야든 조건없이 좋아서 그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거든요. 요즘은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 되다보니 그런 지도자, 리더를 만나기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쉬운 현실이죠. 그렇다보니 아마추어 합창단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 같구요.
김/지금 시대는 경제적 관계를 중심으로 흐를 수 밖에 없죠. 희생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앞세워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그리고 구선생 말대로 무엇보다도 아마추어 합창단이 사라지고 있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노래'는 되는데 왜 '합창'은 안되는 건지…
김/합창이 옛날에 비해 많이 쇠퇴를 한 것이 분명한데 곧 저변확대가 안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학교에서부터 다 사라졌고, 경연대회가 좋은 게 아니라 합창운동 자체가 끊겨버린 거죠. 옛날에는 학교뿐만 아니라 도 주관, 시 주관, 동별 대항 합창대회도 있고 그랬는데 문화수준이 더 높아진 요즘은 더 찾아보기가 힘드니…. 지금을 합창의 위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구/네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세태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시대회, 도대회 경연날짜까지 많은 시간을 노력하다 보면 실력이 향상되는 건 당연했고, 대학도 일반대학생 아마추어 합창단이 많았는데, 제가 그런 대회가 있으면 꼭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이젠 그런 대회도 다 없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 동호인이 많아야 그 속에서 프로도 탄생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아주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김/바탕이 흔들리고 있는 거죠. 요즘은 성가대가 없는 교회들이 아주 많아요. 노래를 할 사람이 없는거죠.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학교가 먼저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적인 측면이 아주 많거든요. 민주시민 교육에 있어서 가장 해야할 일이 '합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더불어 배려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민주시민이고 합창 또한 그것 없이는 되지가 않잔아요?
구/그럼요. 최근에 각 학교의 합창대회가 없어지는 건 아무래도 학부모들 반대가 심한 것 같습니다. 대회를 연습시간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또 단체급식을 하다보니 점심시간을 짜투리 시간 내서 연습하는 일도 어렵다고 하더군요. 예전 학생들은 도시락 빨리 먹고 점심시간에는 연습하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김/조화, '앙상블'이 무시되는 세상입니다. 학교 교육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건 개인의 능력뿐이니 합창대회나 연습시간이 아까울 수 밖에요. 옆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한데 말입니다. 합창의 본질이 배려와 조화 아닙니까? 이런 현상은 합창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뿐만 아니라 교수님, 성악 전공자들도 예전에 비해서 수적으로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합창의 저변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더욱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공자들은 전문성있는 합창 연주활동을 하고, 전주같은 경우는 그 전문적인 부분을 시립합창단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전공자들의 활동도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이거든요.
성악 전공자들의 경우 오페라 배우나 훌룡한 독창자를 꿈꾸고 또 그 과정을 위해 달려나가지만 음악적 훈련은 오히려 합창에서 더 잘되는 것 아닙니까? 독창은 잘하고 합창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되거든요. 전공자들이 아마추어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기본적으로 '앙상블'을 소홀히 하고는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없죠. 구 선생 말대로 우리같이 전공자들의 책임이 크기도 하죠. 먼저 나서서 노력을 해야되는데 말이죠.
뿐만 아니라 합창은 몸만 있으면 되는 음악인데도 참 대중화가 쉽지 않아요. 노래처럼 대중화가 쉬운 게 어디 있습니까? '노래'는 되는데 '합창'은 왜 안되는 건지…. 신이 준 소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 아닙니까? 목소리는 또 고장도 안나구요.
구/합창계에 몸담고 있는 원로 선생님들과 현역들이 이런 논의와 고민을 함께 자주 나눠야 되는데 말이죠.
김/현재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많은데 합창처럼 파트를 나누고 맡아서 부를 사람은 없어요. 이것이 우리 노래문화의 수준이 아닐까 하는데. 그러니까 멜로디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아, 우리동네 할머니들도 애국가는 다 부를 줄 안다니까요.
구/그러게요. 재미있는 일은 우리나라 전국에 노래방이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는 전세계에 노래방이 있단 말이죠. 남태평양 섬에 가도 노래방이 있어요. 여기서 한걸음만 더 발전하면 합창이 되는데 말이죠.
김/독일 사람들은 한명이 있으면 독창을 하고, 2명이 있으면 이중창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몇 명이 모이든 돌아가면서 다 '솔로'로 노래를 한단 말이지. 우리 민족을 '가락민족'이라고들 그러는데 판소리도 혼자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민족의 특성에서 오는 건지는 몰라도 한 사람이 위대할 수는 있어도 함께 더불어서는 잘 안되는 거 이게 문젠데. 바로 이런 것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 합창이 아닌가 해요.
구/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합창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불어 함께 하는 분위기와 여건 조성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저희 전주시립합창단의 경우에도 여러 여건들이 허락된다면 동요대회, 성가대 경연대회 같은 것들을 개최해서 입상한 팀과 협연을 하는 무대를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충족시켜 나가서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계획을 세워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김/정말 공감이 가는 생각입니다. 특히 동요대회는 시립합창단 같은 곳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동요는 곧 어린이들의 인성을 교육하는 일이거든요. 요즘 동요 부르는 애들 보신 적 있으세요? 다들 대중가요만 할 줄 알거든요.
만약 시립합창단에서 이런 일들을 해낸다면 굉장히 획기적이고 신선한 무대가 될 것 같군요.
구/그래도 일단은 많은 민간합창단들의 활동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마련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김/저변확대를 위해서는 물론 그렇죠. 그 많던 단체들이 없어지고 지금 우리 지역같은 경우 부부합창단이 하나 있고, 세실여성합창단이 활동하고 있고, 전주남성합창단, 모테토합창단 정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 같죠?
구/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합창단총연합회 사무총장일을 맡고 있어서 각 지역적인 상황을 조금 아는데요. 서울 같은 경우에는 구별로 구랍합창단이 있는데 굉장한 활동이 지원되고 있어요. 활동비는 물론이고 서울시합창경연대회가 있어서 그 열기가 과열양상을 보일 정도로 아주 뜨거워요. 수준도 굉장하구요. 대구하고 대전같은 경우에도 활성화가 돼있구요.
김/그게 제도적인 면이 크지 않겠습니까?
구/그렇죠. 도시크기에 따른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제주도를 보면 또 이야기가 다르거든요. 지금 제주도에는 합창열풍이 불고 있어요. 전국합창경연대회를 개최할 정도니까요. 물론 전북지역 같은 경우는 주춤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 역량만큼은 뒤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 관찰해 봤을 때 그 소리의 질이 아주 우수하거든요. 소리의 고장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더라구요. 전주시립합창단의 경우에도 어딜 가든 찬사를 받고 제주도에서도 우리 공연을 보고 초청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조금만 여건이 된다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대를 걸어도 될 것 같습니다.
김/적극적으로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있는 예찬(禮讚)
구/합창은 다른 음악 장르보다 그 수가 많다보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어요. 연습과정만 보더라도 한곡을 부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중간에 끊었다가 시작한다든지 그런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단원의 경우에 먼저 시작을 한다든지 박자를 놓친다든지 하는 돌출상황이 종종 있거든요.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실수한 단원은 굉장히 민망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시작을 해야 되니까요.
김/그래서 합창은 조화와 배려의 음악이라는 겁니다.
구/교수님 그리고 또 잘 아시겠지만 시간 약속이 아주 중요하지 않습니까?
김/물론이죠. 음악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그런데 구선생 늦는 사람이 꼭 늦지 않습니까? 한번 늦는 사람은 끝까지 늦더라구요. 지금 교회 성가대 하나를 맡고 있는데 내 마음을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연습시간에 늦게 와서 기도 길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하. 정말 지휘자 열병나는 일이죠.
구/이해가 갑니다, 교수님. 시간이 곧 박자인 셈이죠. 직업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아마추어리즘에서 봐도 합창에서 시간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야 합창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약속시간에 늦는다는 것은 이미 호흡이 안맞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합창의 또 각자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죠.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때 바로 아름다운 하모니가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하모니는 합창을 하는 개개인의 획일적인 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김/그렇죠. 그 하모니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앞서도 말했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잘 돼야 하는 거죠. '그대 있음에 내가 있는'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홀로 있으면 있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듯이, 나는 너로 인해서 내가 되는 것이 바로 '합창정신'이거든요.
구/맞습니다.
김/한 사람이 백보를 걷는 것보다 백사람이 발을 맞춰서 한 걸음을 띄는 것이 합창정신이죠.
구/이야기가 어떻게 '합창 예찬'으로 흐른 것 같습니다, 교수님.(웃음)
김/그러게요. 하지만 합창이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건 사실이죠.

구선생, 우리는 "행복을 파는 상인"입니다
구/교수님, 합창음악은 또 지휘자 음악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단원들은 지휘자가 설정한 것을 이해하고 그 요구를 안아야 탄생이 되는 음악이라서 공연이 제대로 안됐을때는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랜 세월 합창을 하면서 이 지역의 합창을 우뚝 세워놓시지 않으셨습니까. 항상 지휘자로서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과 음악에 대한 철학이 부러웠습니다.
김/과찬입니다. 구선생 얘기대로 지휘자를 누구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지휘자라는 게 뭘 잘못한다고 해서 혼자 죽는게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 중간에 있는 작곡가, 연주가 모두를 함께 죽이는 꼴이 되는 거거든요. 아주 역할을 잘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박자 저을줄 안다고 지휘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지휘자의 손끝에서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악보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리더로서의 어떤 마력같은 게 있어야 하지요.
구/맞습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교수님 말씀대로 음악에 대한 철학적 세계 더불어 많은 숫자의 단원들과 하는 작업이니 품성이나 재치있는 면들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수님은 아주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어느 합창단을 이끌어가시든 단원들이 지치고 짜증스럽지 않도록 단원들에게 제공해주는 면이 아주 많으신 것 같거든요.
김/구선생, 그런 말이 있지요. 나폴레옹이 말하길 "리더는 행복을 파는 상인"이라고 했습니다. 난 이것이 바로 지휘자의 면모라고 생각합니다. 단원들에게, 관객들에게, 또 내 스스로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일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음악을 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김/오늘 장시간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니 결국 음악적 의미는 '앙상블'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앙상블'을 이뤄낼 수 있는 역할을 지니고 있는 것이 합창이구요. 인간세계의 균형과 존경, 배려를 담은 합창운동이 시작돼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구/혼자의 테크닉을 뛰어넘어야 그 환희를 느낄 수 있는 합창의 매력은 정말 이루 말로 다 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래식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지만 그 끝의 경지는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사람의 감정적인 목소리로 최고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야니까요.
김/합창이 선사하는 환희의 경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선생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할 것 같군요.
구/네,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지금까지 그랬듯이 많은 힘을 주십시오.
/진행-황경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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