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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 | 인터뷰 [사람과사람]
열정 속에 나를 던져봐! 세상이 달라질 걸?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3-26 16:08:23)

스코틀랜드와의 부산 평가전에서 통쾌한 3대 1의 압승을 거두며 한국 축구에 한 가닥 환한 희망의 빛을 안겨준 월드컵 대표팀. 경기가 끝나고 그 여운이 채 가라앉지 않은 다음날 오전, '붉은 악마' 전주지부 송세영(21·서해대 2년) 회장을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PC방에서 만났다.
걸걸한 전화 목소리에 '붉은 악마' 특유의 저돌적인 모습이 뇌리에 박혀 있던 터라, 으레 짧은 머리와 다소 중성(?)적인 이미지를 기대했지만 왠걸..., 아담한 체구에 수줍음 많은 20대 초반의 '꿈꾸는 소녀' 딱 그대로다.
스코틀랜드전을 화제로 말문을 트자,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보았다"며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천수 선수의 골 장면이 내내 인상적이라면서... 관심분야를 막론하고 마니아들에게서 느껴지는 들뜬 흥분이나 부산스러움이 그에게서도 어김없이 묻어 나온다. 정적인 수집가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축구 마니아에 그악스런(?) '붉은 악마'라는 데에야 더이상 말해 무삼하리오.
그래서 더더욱 축구와의 인연이 궁금해 졌다. 듣고 보니 조금 싱겁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 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없다.
"초등학교 6학년때가 94년 미국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였어요. 학교에 와 보니까, 한국 대 스페인전 경기를 TV로 보여주더라구요. 경기가 너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거든요. 아마 그 때 축구에 깊이 매료됐던게 아닌가 싶어요."
어릴적 경험일수록 훨씬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 마련이다. 편견이 많아지고 주변 상황에 민감해 질수록 누군가에 혹은 무언가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열정'이란 그래서 나온 말일 터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붉은 악마' 전주지부의 회원은 현재 4백여명.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3~40대 일반인들까지 직업군과 연령대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들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여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축구에 대한 애정이다. 지난해 9월, 10여명 남짓으로 시작한 전주지부가 불과 1년이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급팽창을 해 온 것이다. 가히 폭발적인 호응이 아닐 수 없다. 이 현상 하나만으로 축구 열기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동안, 그는 예상외로 냉정(?)해 진다. 잔뜩 흥분해 자랑할 법도 한데, 어쩐지 반응이 조금 뜨악하다.
"전주 회원만 4백명이라고 하지만, 사실 거품이 많다고 생각해요. 월드컵 기간동안만 잠깐 호기심에 가입한 회원도 있을 수 있고,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는 차츰 그 관심도 줄어들 수 있을거라고 보거든요. 한 마디로 반짝 관심이라는 거에요. 월드컵이 끝난 뒤에 이 축구열기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그 뒷심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요."
한 여름 소나기를 우려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한국 축구는 '국가주의적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문득 마음 한 켠에 걸리는 것도, 그의 이야기처럼 이런 현상이 진정한 축구 사랑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곱씹어 볼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 마니아로서 눈에 띄는 활동을 시작한 것은 중 3때부터다. 그때부터 전북 현대 프로축구팀의 서포터로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넓고 확 트인 운동장, 선수들의 시원시원한 드리블과 환상적인 발놀림은 그저 '이유 없이' 좋기만 해서 그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것들이다. 녹색의 푸른 운동장과 붉은 유니폼, 그 속에서 선수들의 몸 놀림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펼쳐지면, '붉은 악마'의 물결 속에 자신이 박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환희다.
"월드컵 대표팀 원전 경기는 어디든 다 쫓아다니면서 봤어요. 붉은 악마의 일원이 돼서 함께 응원을 하고 있으면 그 기분 정말로 미치는 거에요.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어요. 고생도 정말 많이 해요. 몇 시간을 서서 뛰는 데다가, 과하다 싶게 흥분을 하면 머리가 띵하거든요. 월드컵 평가전 국내 경기는 다섯 번 다 원전경기라 완전히 쓰러질 정도였어요.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의 크로아티아전과 제주도에서의 미국전이 굉장히 좋았죠. 아무리 녹초가 돼도 다음날 또 가게 하는 마력이 있거든요?"
게중에는 '조금 심하다'는 우려도 있고, 붉은 악마를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그래서 월드컵 때마다 번번히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트러블 메이커' 훌리건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 졌다.
"훌리건은 이미 축구팬으로서의 경계를 넘어선 거라고 봐야죠. 붉은 악마는 비신사적인 행동은 절대 못하게 교육받고 있고, 훌리건 가까이도 못 가게 하거든요. 골이 터졌을 때 휴지를 던지잖아요? 그 휴지를 너무 길고 단단히 감으면 그걸 '휴지 폭탄'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자제를 시켜요. 잘 못하면 누군가의 머리를 맞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만큼 조심을 하고 있고, 자기 표현을 너무 과하게 하면 그게 바로 훌리건과 다름 없잖아요."
한국 선수 중에서는 황선홍과 김도훈을, 외국 선수 중에는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웬을 좋아하는 송세영 회장. 한국의 두 선수는 골 결정력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한 번씩 '터뜨려 주는' 듬직함이 있어 좋고, 오웬 선수는 드리블이 환상적인 데다가 잘 생겨서 더욱 좋다고.
스물 한 살 '꿈 꾸는 축구 소녀'는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는 듯한 짜릿한 쾌감과 목청껏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그 순간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는 월드컵 이후의 4년여의 공백이 거품이 아닌 진정한 축구 사랑으로 이어지길, 그리고 모든 관중들과 국민이 너나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붉은 악마화 되는 그날을 꿈꾼다.
2002 한일 월드컵이 그에게는 절대적인 기회다. 붉은 유니폼을 차려 입고, 관중석 어딘가에서 목청껏 그의 젊음과 열정을 날려보내고 있을 그가 환히 웃으며 말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다 함께 한번 미쳐보자"고. 우리 모두,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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