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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 | 인터뷰 [문화를 짓는 사람들]
뮤지컬,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힘
극작가 김소라
문신 시인˙편집위원(2023-09-08 11:14:29)

'문화를 짓는' 사람들 극작가 김소라

뮤지컬,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힘



글 문신 시인˙편집위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라는 무대에 오른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태어난 인생을 ‘세상에 던져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던져진 세상에서 우리는 주어진 배역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받아 든 대본도 없고, 연습이나 리허설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준비 없는 삶이 그러하듯, 우리의 삶은 자주 엉망진창이 되고 깊이 절망한다. 그게 인생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느닷없이 막이 내리는 것.

이런 점 때문에 오랫동안 무대예술은 인간의 비극적 삶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추앙받았다. 그러므로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해석해낸 또 다른 인생을 올리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다. 이를테면 인생을 인생하는 일이 무대에서의 일인 것이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어느 날 만난 김소라 작가에게서 받은 영감이 이것이다. 인생을 인생하다! 김소라 작가에게 인간의 삶은 한 편의 뮤지컬로 해석될 수 있는 멋진 텍스트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한 소절의 노래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리듬으로 서로 소통한다는 것. 그러한 리듬의 소통을 우리는 파동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뮤지컬이라고요?

뮤지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랐다. 다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컬이란 말이 환기하는 이미지는 대규모 인원이 등장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의 퍼포먼스다. 당장 머릿속에 <오페라의 유령>이나 <영웅> 같은 작품이 떠오른다. 그런데 지역 단체에서 뮤지컬을? 그러한 오해는 김소라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뮤지컬이라고 하면 대다수가 대형뮤지컬을 떠올리는데 규모에 따라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 뮤지컬이 있어요. 대형뮤지컬은 대체로 라이선스 뮤지컬이에요. 그런데 저희는 주로 서사가 기반이 되는 작은 창작뮤지컬을 올려요. <아트컴퍼니 두루>에서 능력껏 할 수 있는 영역이죠. 제작비가 충분하면 규모 있는 뮤지컬을 기획해 무대에 올려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지역 극단의 한계는 분명하죠. <아트컴퍼니 두루>에선 우리 역량에 맞춰서 소극장 중심의 창작뮤지컬을 하고 있습니다.”

김소라 작가가 활동하고 있는 <아트컴퍼니 두루>는 7명의 운영위원이 있으며, 정회원은 20명 정도다. 공연시장 자체가 서울 중심인 까닭에 지역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지역에서 이만한 규모로 꾸준히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는 단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작품을 창작하고 제작하여 무대에 올리는 극단은 전북에서 <아트컴퍼니 두루>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 편의 뮤지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공연예술 전반에서 볼 수 있는 제작 흐름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보니 뮤지컬은 아주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감정과 서사와 음악의 건축술처럼 느껴졌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이잖아요?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가 중요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한편의 뮤지컬을 제작하는, 그러니까 무대에 올리기 이전 단계에서는 크리에이트 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중에 저는 대본을 쓰고, 가사를 쓰고, 때로는 연출도 합니다. 그리고 전문 작곡가와 협업해 노래를 만들죠. 노래가 완성되면, 배우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음악감독이 있어요. 뮤지컬은 전문 분야별로 분업화가 잘 돼 있어요. 그래야 종합예술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뮤지컬 작가의 길

문학, 음악, 미술, 무용 등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모든 활동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오면서 그런 감정은 대개 ‘말’이나 ‘이미지’로 표출되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언어생활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인간 감정은 어떻게 표출되었을까? 우리의 상상이 정확한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의 무의식이나 본능에 남아 있는 걸 토대로 보자면, 인간의 감정은 가장 먼저 몸짓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 같다. 흥이 나면 저절로 몸짓이 둥싯둥싯해진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김소라 작가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 여기에서 비롯했다. 극대화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노래와 몸짓이 결합한 뮤지컬이라는 걸 깨달았다. 뮤지컬은 재미있었다. 스스로 자기와 잘 맞는 장르라고 여겼다.

“2009년 결성한 <아트컴퍼니 두루>는 그동안 지역의 이야기를 재창작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습니다. 모든 게 서울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바로 지역이라는 생각입니다. 지역은 우리 삶과 밀착해 있고, 지역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이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지역의 삶, 우리의 삶을 살려내는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지역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는데, 지역은 소재가 아니라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지역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어요.”


김소라 작가는 2022년 공연예술창작산실 대본 공모전에 선정된 작품 <조선 셰프 한상궁>의 각색 및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조선 셰프 한상궁>은 전주비빔밥을 주제로, 그 맛의 진심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대한제국 말기,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시국에서 수라간 궁녀 한상궁이 역사적 사건에 휩쓸린다.

이후 고향인 전주로 내려온 한상궁이 음식의 진심에 눈떠가는 과정을 시대적 상황과 잘 버무려냈다. 그러나 김소라 작가의 서사적 지평은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안녕 크로아티아>, <디어 마들렌> 같은 작품은 보편적인 서사를 다룬다.

지난 7월에는 전주한벽문화관에서 공감 유니버스 2023 쇼케이스 첫 공연으로 뮤지컬 <웨이팅>을 올리기도 했다. <웨이팅>은 가까운 미래인 2030년을 디스토피아적으로 접근한 뮤지컬이다. 이 작품에서 김소라 작가는 악화하는 지구환경 속에서 도래하게 될 인간의 현실을 경고했다.



뮤지컬 <조선셰프 한상궁.


옳은 시간의 힘

이렇게 김소라 작가의 작품은 우리의 삶을 근접에서 바라본다. 그건 시대와 공감하고, 사람과 공감하기 위한 작가의 예술 미학일 것이다. 구성원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뮤지컬에서 그러한 시선은 공감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럴 때 관객도 작품에 스스럼없이 참여할 수 있다. 그게 김소라 작가가 추구하는 좋은 뮤지컬이라는 생각이다.

“10년 넘게 <아트컴퍼니 두루>에서 뮤지컬을 통해 삶과 예술의 의미를 전해주고자 노력해왔어요. 그 연장에서 그동안 창작해왔던 우리의 작품을 중심으로 9월 23일에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공감 콘서트를 열어요. 표가 얼마나 팔릴지 모르지만, 그 공연의 수익금은 국내외 소외 아동을 위해 전액 기부합니다. 이런 활동이 지역의 예술가들이 자기 고통을 감내해가면서, 때로는 생계의 문제를 고민해가면서 얻어내는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후기산업사회에서 지역의 예술 활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도 김소라 작가의 예술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의 힘이 앞으로의 시간을 힘껏 밀고 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뮤지컬은 김소라 작가의 삶을 크게 박동하게 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김소라 작가가 공연예술에 발을 딛게 된 것도 20대 때 본 뮤지컬 한편이었다. 최정 작가의 뮤지컬을 보고 무작정 최정 작가를 만났다. 이후 <티오디 랑>이라는 낭독극 단체를 만들어 함께 공부했다. 젊은 날 의기투합하여 대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 카페 연극 <그해 여름>을 카페에서 올리기도 했다. 그 후 한예종의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공부했다. 창작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누군가의 영혼을 맑게 정화해주는 빛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김소라 작가는 오늘도 묵묵하게 대본을 쓴다. 내년에는 서울에서 뮤지컬 <에밀 졸라>를 올린다.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통해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본질을 살펴보는 작품이다. 김소라 작가가 바라는 건 분명하다. 예술을 통해 관객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것. 김소라 작가의 작품은 잘 사는 삶보다는 옳게 사는 삶을 담아내고자 한다. 앞으로 <아트컴퍼니 두루>와 김소라 작가가 헤쳐나갈 옳은 시간의 힘을 힘껏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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