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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 | 인터뷰 [인터뷰]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데 이유는 필요 없다
이상한계절 김은총, 박경재 듀오
이동혁(2019-03-22 16:41:09)

"음악을 통해서 제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어요."


김은총 씨에게 음악은 해방구였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빨간약이었고, 새살을 솔솔 돋게 하는 마데카솔이었다. 정말로 치유를 받았나요, 같은 싱거운 질문은 던질 필요가 없었다. 묻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았다. 그는 확고한 뜻을 가진 뮤지션이었고, 이미 지역에서 그 뜻을 실천하고 있는 이상가였다. 음악의 힘을 믿지 못한다면 결코 다다르지 못했을 그 길을 그는 훨씬 이전부터 걷고 있었다.


"처음 들은 팝송이 퀸이었어요."


오케스트라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음악만 듣던 박경재 씨에게 퀸의 음악은 문자 그대로 신세계였다. 네 명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이토록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다니! 숫자의 많고 적음이 음악을 질과 완성도를 가르는 기준일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 적은 멤버로도 창의적인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크나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한 사람은 밴드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각각 달랐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일 수 있었다. 전주에서 음악을 시작한지 어느덧 7년여, 이제 그들의 쌓인 이야기를 슬슬 들어 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 몸에 맞는 음악을 찾다
'이상한계절'의 음악적 장르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락을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중심에 '포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수많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포크 음악을 축으로 삼은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토속성을 띤 포크 음악의 본류에는 한국적인 정서도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한계절은 자신들의 음악을 '모던 포크'라 소개한다.


"서구 음악을 따라 하고, 모방하고, 베껴 가고... 그게 요즘 트렌드고, 소위 '인싸'들의 음악이라고 치부되는데, 조금 더 한국적인 정서와 얼을 담고 있는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들이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흑인 음악이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광석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 가슴에 찡하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것만 봐도 그 노래가 우리에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와 창법과 영혼들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상한계절이 포크 장르에 집착 아닌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그 옷이 우리 몸에 맞는 옷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들려주느냐, 라는 고민에서 지역적인, 그리고 민속적인 부분도 다 아우를 수 있는 장르를 찾다가 결국 도달한 곳이 바로 모던 포크였다. 전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전주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대중음악 문법에 담을 것인가. 이상한계절의 음악성은 바로 그러한 고민들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지역 음악 자급자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토속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지역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오히려 역행하는 행보, 그 엉뚱함이 흥미롭다.


"지역의 지명이 들어가는 노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당장 떠오르는 곡만 세어 봐도 열 손가락을 넘기기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서울의 지명이 들어간 노래들을 꼽아 보면 상당히 많아요. 옛날 노래를 찾지 않아도 '양화대교', '신촌', '홍대', '한강' 등 서울의 지명이 들어간 노래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지역민들은 굳이 서울에 살지도 않는데, 주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노래들을 소비하고 있어요. 이상한계절은 그 지점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지역 음악 자급자족 프로젝트
이미 자본화된 서울에서는 돈 되는 음악, 소위 잘 팔리는 음악만 만들어 내고, 양산해 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지역 음악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직접 만들자!' 이것이 이상한계절의 정신이었고, 이런 정신에 바탕하여 시작된 게 바로 '지역 음악 자급자족 프로젝트'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자급자족을 이루기엔 아직 토양이 척박하고, 모든 것을 다시 일궈야 하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돌도 골라내야 하고, 밭도 새로 갈아서 뒤짚어 엎어야 하고, 그 토양과 기후에 맞는 씨앗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안에서 지역 음악을 낮게 보는 낮은 지역적 자존심, 자존감을 골라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온전한 자급자족은 오롯이 음악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생산해 내는 것인데, 정작 우리 두 사람은 지역 음악을 위해서 각자의 삶을 희생하고 있어요. 그런데 희생을 해 봤더니 만들어지긴 하더라고요. 서울의 대자본과 기술력이 모인 음악과의 대결은 버겁지만, 할 수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예 안 된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그런 느낌이에요."


그들이 추구하는 지역 음악 자급자족은 단순히 음악만으로 먹고 산다는 뜻만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지역의 소재와 지역에서 이야기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어 드러나게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그런 일련의 작업도 지역 음악 자급자족 프로젝트의 중요한 축이다.


"약자들의 목소리가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포용됐을 때 사회가 아름다워지고 지역이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에 일조를 하고 싶어요. 단순히 지명만 넣는다고 해서 지역 음악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대변해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더 2017년 '천인갈채상' 수상이 뜻깊다. 음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됐다는 것, 무엇보다 이상한계절의 음악을 전주 시민들이 전주의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줬다는 것이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천인갈채상 자체가 1,000명이 후원해서 주는 상이기 때문에 최소한 1,000명은 우리를 알고 있고, 우리 활동에 대해서 긍정적인 뜻을 보내 주고 있구나, 우리가 활동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의 힘을 받고 있구나,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런 응원에 힘입어 2018년 3월 3일에는 우진문화공간에서 지역 뮤지션 최초로 음감회를 진행하고, 단독 콘서트로서는 지역 최초로 매진 공연까지 펼쳤다. 이상한계절에게도 아주 기념비적인 사건이었겠지만, 지역 음악계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던 무대다.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저렇게도 활동할 수 있구나, 하고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다른 지역도 많은 왜 굳이 고향도 아닌 전주에서?
"'전주에 가면'을 처음 썼을 때 환영하는 분들보다 '그런 음악을 해야 돼?' 반문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니가 진짜 전주를 사랑해? 왜? 너한테 전주가 무슨 의미인데?'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던 거죠. 그러다 2년만에 발표한 곡인데, 그때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반문한다는 건 어떤 누군가한텐 폭력이 될 수 있는데, 2년 동안 스스로한테 그 폭력을 끊임없이 저질렀구나."


김 씨의 말처럼 사람이 뭔가를 좋아하게 되는 데 반드시 이유가 필요하진 않다. 그냥 좋아서.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은 거다. 이유 있는 사랑은 이유가 사라지면 식어 버리고 말지만, 이유 없는 사랑은 언제까지고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상한계절이 전주에 갖는 애정은 진솔하다.


"전주를 기반으로 시작한 팀들은 많지만, 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하는 팀들은 극소수예요. 그것만 봐도 이상한계절의 음악을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는 곳은 전주예요.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 주고픈 마음도 있고, 지역민들이 지역 음악에 더욱 자부심을 갖게 하는 역할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날 기다려 주는 곳, 전주.' 가사에 적혀 있듯 이상한계절에게 전주는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 주는 곳이다. 다른 어려움은 있었을지언정 적어도 음악에 한해서는 숨쉬듯 자유로운 곳이 전주였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지역민들이 다양한 삶 속에서 자유로웠으면 해요. 여기 왜 남았어, 라는 질문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이상을 향한 계절이란 뜻을 품고 있는 그들이 궁극적으로 품고 있는 이상은 무엇일까? 지역 음악 자급자족을 통해서 직접 만들고, 나누고, 그리고 다시 재생산하는 것이 지역적 이상이라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비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줄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소비와 똑같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에서도 행복하고, 지역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이 이상한계절의 궁극적인 꿈이 아닐까?


"어렵고 무겁고 힘든 과정이지만, 인생에서 이런 계기를 만난다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고, 또 흔치 않은 영광인 것 같아요. 그래서 기꺼이 감당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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