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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 인터뷰 [공간과 사람]
'술맛' 하나로 우리들 추억 속에 남다
우리지역 얼음맥주의 원조, 익산 엘베강
홍현종(2018-11-16 12:49:26)

군산 대야에 살던 김칠선 할머니(81)는 40여 년 전, 제주도에 다녀오는 길에 기차 안에서 셋째 딸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후 1982년 사람들의 왕래가 많던 익산역 앞에 "엘베강"이라는 맥줏집을 차리게 되는데, 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다행히 할머니만의 생맥주와 안주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할머니의 사연 또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소개가 된다. 다행히 10여 년 전 인터넷의 도움으로 잃어버렸던 딸을 찾게 되고, 할머니의 맥주 또한 명물이 되어버렸다.



오후 3시 가게 문을 열면, 갈 곳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었던 엘베강. 저렴한 안주는 엘베강만의 전통인데, 지금도 주 메뉴인 오징어입이 4천원에 판매되고 있다, 2천원인 소시지와 5천원인 군만두 또한 맛은 물론 간단한 요기까지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엘베강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맛있는 맥주' 때문이다. 실온에 보관하다, 냉각기를 통과하며 순간적으로 차가워지는 일반 생맥주와 달리 엘베강의 생맥주는 통째로 냉동고에서 3일간 숙성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얼려진 잔에 담겨져 살얼음이 맺힌 맥주가 되는 것인데, 별다른 비법이 아닐 수도 있겠거니와 지금은 많은 가게들에서 비슷한 숙성 단계를 거치고 있다지만, 이러한 공정을 거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충분한 공간'이다. 테이블을 늘리고 주방을 줄이려 하는 보통의 맥줏집과 달리, 엘베강은 테이블을 줄이고 주방을 넓히는 고유의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야만 정확한 얼음맥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8년 허리 수술을 한 후,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에게서 지금의 운영자인 김상수(66) 대표에게로 엘베강은 이어진다. 처음 2년 정도는 손님들의 텃세 때문에 너무도 힘들었다고 하는데, 할머니의 역할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래서 엘베강은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데, 첫째 소주를 팔지 않는다. 맥주 전문점인 엘베강의 전통을 유지하고 싶어서다. 덕분에 소주를 즐겨하는 손님들은 찾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 맥주는 오로지 OB맥주만 사용한다. 'OB베어 엘베강' 엘베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셋째, 병맥주도 판매하지 않는데, 엘베강만의 얼음맥주는 생맥주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술을 바꾸면, 손님도 바뀌게 된다" 김상수 대표의 말이다. 손님들에게서 조그만 문제들까지 지적을 받고는 하는데, 대부분의 손님들이 단골이기 때문이다.


엘베강에게도 어려웠던 시절은 있었다. 2016년 2월 건물주는 갑작스럽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월세를 올려주겠다는 김상수 대표의 제안마저 건물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34년간 자리를 지켜온 엘베강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는데, 엘베강이 떠난 그 자리에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새로운 맥줏집이 들어서게 된다.

'추억이 있는 장소', '만남의 장소' 김상수 대표가 말하는 엘베강이다. 그래서 현재의 가게로 이전할 때, 기존의 테이블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모두 다 가지고 나왔다. 내부 도색도 같은 색으로 했고. 사용하던 기계들도 그대로 사용하였다. 최대한 기존의 엘베강을 재현한 것인데, 다행히 손님들은 잊지 않고 새로운 엘베강을 찾아주었다.
몇 해 전 김상수 대표의 아들이 할머니맥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체인점 사업까지 시작하게 되었는데, 외숙모인 김칠선 할머니에게서 김상수 대표로, 또 다시 아들에게로 익산 얼음맥주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맥주 한잔에도 나름의 사연이 있고, 고집스러운 전통이 흐르는 공간.
익산 엘베강이 "술맛" 하나로 우리들 추억 속에 남아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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