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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 | 인터뷰 [공간과 사람]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다
서학아트스페이스 김성균 관장
강미선(2017-05-19 14:57:14)



서학동예술마을은 예전에 ‘선생촌’이라 불렸을 만큼 교사와 학생 등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박하면서 기품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역상권의 쇠퇴와 주거시설 낙후 같은 경제논리에 밀려 점점 쇠락하였다 2010년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 후로 화가, 자수가, 사진작가 등 예술인들이 하나 둘 이사를 왔고, 갤러리가 들어섰다. 지금은 20가구 30여명의 예술인들이 이곳에 살면서 치열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제 서학동예술마을은 주민과 예술인들이 서로 아름답게 소통하는 동네 예술인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됐다. 그 가운데 서학동예술마을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복합문화공간 ‘서학아트스페이스’가 있다. 이 공간을 이끄는 김성균 대표를 만났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7길

‘서학아트스페이스’는 조각가인 김성균의 작업실이자, 서학동예술만을의 문화공간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카페, 조각 작업실이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것이다. 갤러리인 2층에는 회화, 조각, 디자인 등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가 수시로 전시되고 있고, 지하 조각 작업실에서는 테라코타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다. 1층은 카페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고, 3층과 4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전주한옥마을, 남부시장 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서학아트스페이스가 있기 전 본래 작업실은 지금 우아동이라 불리는 외망실 마을에 있었어요. 밤이 되니 인적이 드물기도 하고, 멋있는 문화 공간에 대한 그리움도 있어 작업실을 옮길만한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지인이 서학동을 추천했죠. 원래 이 자리는 탁구장, 가정집, 미용실 등 많은 것이 있던 자리였어요. 눈 여겨 보다 자리가 생겨 들어왔고 게스트 하우스, 카페, 갤러리 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실이 있는 지하에는 조각, 물감, 작품 등 김성균 작가의 물건들이 들어서 있다. 작업하기 힘들다고 소문난 것이 조각이지만 작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식사 시간 외에는 작업실에서 보내며 열정적인 예술 작업을 펼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티스트가 제 꿈이긴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릴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시골이라 예술가를 꿈꿀 만큼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미술작업을 할 때 칭찬받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전공도 회화로 했죠. 막상 가보니 회화는 잘 안 맞았는데, 수업 중 산소용접을 해야 하는 작업이 있었어요. 정말 열심히 작업했죠. 조각의 완성품이 나왔을 땐,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 이런게 나한테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성과에 대한 희열이 커졌습니다. 그 때 조각을 선택하게 되고 그러면서부터는 제 여러 생각들을 조각으로 표현하게 됐죠.
열정으로 만들어낸 그의 작품들에는 한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작품에 툇마루 등의 한국적인 소재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에 있어서 특별히 어디선가 영감 받는 것은 없지만 한국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소재로써 마음이 가고 모티브로 작품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게 민화, 조각보 등의 한국적인 소재가 그렇게 마음에 들더라구요. 이런 소재들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작품까지 이어져 온거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소재는 툇마루에요. 옛날 한옥의 대청마루에 있는 툇마루 아시죠? 툇마루를 제 작품에  많이 써요. 옛날부터 재료로 쓰기도 하고 모티브로 쓰면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죠. 주변 사람들은 그저 때 낀 나무로 볼 수 있지만, 저는 그 안에는 긴 시간동안 마음과 이야기와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에 그 여러 사람들의 흔적들이 담겨 있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거죠.
이런 그의 작업에도 어려움은 있다. 거의 모든 예술인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더욱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서학아트스페이스에서 여러 작업과 함께 전시, 초대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부족하기만 하다.
“최근에야 예술마을로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이 동네가 아직 사람들에게 인지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진 않아요. 문화공간이지만 저에게는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으니 경제적인 역할도 해주었으면 하는데 아직 이 공간이 거기까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또 앞에서 말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자는 시간, 식사 시간 빼고는 여기 있는데 오는 사람들은 거의 이 동네에 관련된 사람들이고 외부인들이 오지는 않더라구요. 이런 복합문화공간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 경제적 이유가 커요. 갤러리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조각에 임하고 있다. 그의 조각관도 다른 예술가들과는 남달랐다.
“처음에는 조각을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조각을 하는 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죠. 사람이 생각을 하고 일상적으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지내지만, 존재감이라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지 않고 나만의 모습, 나만의 이야기가 있으려면 어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겠죠. 저는 그게 어떤 사람에겐 글을 쓰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예술, 그 밖의 사람은 어떤 매체라고 생각하죠. 제 경우에는 그 매체가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 자신이 예술가라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단지 예술가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보다 소수라서 주목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자신은 평범하다고 생각하죠”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웃자, 웃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단순한 이야기지만 좀 살아보니 웃는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걸요. 그리고 해학이라는 말을 좋아하죠. 요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이 버겁잖아요. 가끔 짜증스러울 때도 있구요. 그래서 이 서학아트스페이스라는 공간에 와서 그런 일들을 웃음으로 승화시켰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방문한 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워하고 또 잠시 잊었다가도 뭔가 체험도하고 그런 공간이길 원하는 거죠”
특별한 철학아래 운영되고 있는 서학아트스페이스에서는 ‘오름전’, ‘중국 경덕진 도자작가 6인전’, ’사유하는 시간‘ 등 수많은 초대전과 개인전 등이 열린 바 있다. 한 켠에는 지난 전시 팜플렛들이 놓여 있어 서학아트스페이스를 다녀간 예술가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 작가도, 지역의 작가도 있었다. 이렇듯 서학아트스페이스는 지역예술가들의 쉼터이자 신인 작가들의 꿈을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수시로 전시가 열려요. 관심 있는 예술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전시하고 싶은 이들을 제가 직접 찾아다니기도 하죠. 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앞으로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국제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거예요. 제 꿈을 위해서 더 노력하고 열심히 움직일 예정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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