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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 | 인터뷰 [공간과 사람]
"지역을 바꾸려면 지역 언론이 바로 서야죠."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손주화 사무국장
윤지용(2017-04-28 10:21:08)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좋은 언론이다. 언론이 권력에 짓눌리거나 자본에 주눅 들지 않고 제 소명을 다하는 사회라야 질 좋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이 지속가능하고 건강하게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지역의 언론이 건강해져야 한다는 믿음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있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을 찾아가 손주화 사무국장을 만났다.


지난날에는 권력이 언론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그랬다. 역대 독재정권들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언론을 통제했다. 저항하는 언론은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굴종하는 언론에게는 특혜를 주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당시까지는 정권의 비위를 거스른 언론인들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구타나 고문을 당하던 수준이었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한층 더 체계적인 통제가 자행되었다. 정권 출범 직후 자신들의 입맛대로 언론사들을 강제로 통폐합했고 '언론기본법'이라는 법을 만들어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보도내용에 대한 사후보복 뿐만이 아니라 아예 매일 보도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선제적인 언론통제'도 있었다. 1986년에 폭로된 이른바 '보도지침'이라는 것이다.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매일 각종 사건이나 사회현상 등에 대해 '가', '불가', '절대 불가' 등의 지침을 작성해서 각 언론사에 배포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 지침을 충실히 이행했다. 폭로에 따르면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10개월 동안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 지침 584건에 달했다. 용기 있게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던 뜻있는 언론인들과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국가모독죄로 구속되는 등 모진 탄압을 받았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가 진전된 덕분에 언론을 둘러싼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아직도 언론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시도는 여전하고 실제로 관철되고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권력이 언론 위에 군림하던 시대는 아니다. 오히려 언론 자신이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제4부' 혹은 '제4의 권력(the fourth power)'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 지난날 권력의 하수인이라 비판받았던 언론이 어느새 '권력의 동업자'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입법부나 사법부, 행정부 등 다른 권력들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심판받거나 상호 견제가 가능한데 비해서 언론에 대해서는 그나마 그런 제도적 장치마저 없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나쁜 권력에 대한 탄핵은 언론의 의제설정능력과 여론주도능력이 선하게 작용한 사례이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견제 받지 않는 언론이 지닌 무소불위의 힘이 스스로의 특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남용된 사례들이 훨씬 더 많다. 바로 그래서 언론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비판이 절실하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전북민언련)'은 사회적 공공재인 언론이 그 사명을 다하도록 하려면 시민에 의한 감시와 비판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시민운동단체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승리에 힘입어 사회 각 부문의 시민운동이 태동하던 시기인 1990년대에 전북지역에서도 다양한 시민운동단체들이 자리잡아나가고 있었다. 당시 '전주시민회'의 언론분과에서 활동하던 청년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언론분야에 특화된 시민운동단체의 설립을 모색하고 있었다. 때마침 전북대 강준만 교수, 한일장신대 김동민 교수 등 언론분야의 전공학자들 사이에서도 보다 전문성 있는 언론운동단체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러한 두 흐름이 맞물리면서 1999년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언론시민운동단체가 출범하였다. 출범 당시에는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었는데, 얼마 후 "운동"이라는 표현이 주는 선입견을 없애고 보다 폭넓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출범 직후인 2000년에 치러진 제16대 총선에서는 지역 언론들의 선거보도를 감시하는 활동을 통해 주목받았고, 그 이후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 거대 일간지들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무가지(無價紙)와 자전거로 상징되는 경품을 폐지하기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유신정권 이래의 뿌리 깊은 관행이었던 이른바 '계도지'가 폐지된 것도 중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계도지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을 계도한다"는 미명으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일간지를 다량으로 구매하여 반상회나 각종 관변 조직 등을 동해 대중에게 배포하던 관행이었다. 권력은 언론매체를 활용해 스스로 치적을 홍보하고 매체는 구독부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공생관계였던 셈이다.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전북민언련은 다양한 분야로 활동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언론계의 현안이나 대중문화현상 등을 주제로 한 시민교양강좌인 '언론시민학교'는 어느새 25기에 이를 만큼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퍼블릭 엑세스(Public Access)'의 일환인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설립을 주도한 것도 전북민언련이었다. 퍼블릭 엑세스는 지금까지 수동적인 미디어 소비자로만 존재해왔던 대중이 스스로 창작자가 되어 영상물 등을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미디어에 대한 인식을 비판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는 캠페인이다. 일종의 소비자주권운동인 셈이다. 최근에는 각 지역의 마을신문, 팟캐스트, 우리동네TV 등 다양한 공동체 미디어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활동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전북민언련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이는 손주화 사무국장이다. 주화씨는 2006년에 전북민언련 사무처 간사 공채에 응모하여 '언론시민운동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생체정보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 이런 일에 종사한다는 것이 좀 생뚱맞은 것 아니냐?"고 슬쩍 도발해보았더니 대답도 도발적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문과, 이과가 따로 있는 건가요!" 알고 보니 일찍이 고등학생 때부터 <인물과 사상>을 탐독했고 공대에 입학해서도 사회대에서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할 정도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민운동 영재'였다. 10여 년 전 단체의 막내 실무자였던 주화씨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실무책임자가 되었다.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조재익 간사가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하늘같은 선배님이 되었으니, 시민운동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셈이다. 대외적인 활동들 이외에 '백두산산악회', 주말농장 '모니카애뜰', 영화모임 '달달' 같은 아기자기한 회원 동아리활동들을 꾸려낸 것도 에너지 넘치는 주화씨의 '업적'이다.
주화씨에게 언론시민운동 활동가로서 긍지와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한다. "변화를 만들어냈을 때죠." 그러면서 지난해에 지역 언론사 기자들의 '공짜연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언론 종사자 내부의 자정운동을 이끌어냈던 사례를 꼽는다. 전북지역의 경영자단체나 개별 기업 등에서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나 해외동행취재 등의 명목으로 사실상의 '여행'이라 할 수 있는 편익을 제공해오던 관행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결과, 문제의 연수계획을 무산시켰고 전북기자협회 차원에서 해외연수 및 해외취재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주체적인 참여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에요. 우리 지역에 뜻있는 언론인들이 많이 계시지만 아무래도 언론사주의 이익, 각종 유착관계와 낡은 관행들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죠. 그래서 시민들 스스로 나서서 잘못된 보도나 취재관행들을 감시하고 항의해야 언론이 바로 설 수 있어요. 그래야 지방자치의 질과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도 나아질 수 있고요." 힘주어 말하는 주화씨의 얘기를 들으며, 민주주의는 시민의 각성과 참여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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