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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 | 칼럼·시평 [문화칼럼]
금마에서 구운몽을 꾸어보다.
김주성(2015-09-15 12:08:44)

 

 

올 7월에 들어 전북사람들에게 매우 흥겨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다름 아닌 익산 왕궁리와 미륵사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대를 공부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으며,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뜬금없기는 하지만 좋은 일이라 기뻐했을 것이며,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재를 다시 한 번 돌아볼 기회도 되었을 것이다.

하기야 미륵사지와 왕궁리를 직접 발굴했거나 발굴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쁨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미륵사지 발굴은 거의 20여년 지속되었으며, 왕궁리 발굴은 25년동안 계속되고 있다. 거의 45년의 세월이다. 허허벌판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풍납토성처럼 거주민들과의 갈등은 그리 크지 않아서 그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러나 미륵사지나 왕궁리 다같이 탑 하나만 덩그라니 서있는 이곳을 발굴하면서 발굴자들도 훗날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썼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직접 발굴과 해석을 하신 학자들이나 관계 기관의 행정직원분들, 또 이런 저런 불편 부담을 감수해주신 지역민들 모두에게 그냥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도 이곳을 지나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마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에게 이곳이 세계문화재로 등재된 유적이라고 한다면 큰 기대를 안고 왔던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해외의 유명한 유적지를 다녀오신 분들도 이런 감정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는 아니래도 사진으로 보았던 유럽 영주들의 성 정도는 남아있었을 것으로 예상한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달랑 탑 하나와 넓은 공간에 주춧돌만 널려있는 이곳이 실망을 넘어서 사기극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생기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우리의 자산일지 모른다. 이곳은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이다. 여기에 우리가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타날 것이다. 이제까지도 힘을 모아 여기까지 왔던 것을 남녀가 어렵게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고 비유한다면, 지금부터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하여 계속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아무래도 유적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보존과 활용이라는 두 키워드가 자주 들먹거려질 것이다. 보존과 활용은 부부관계이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보존을 위해서는 활용이 때로는 제한을 받고, 활용을 위해서는 보존이 때로는 양보를 해야 한다. 부부싸움은 필연이다. 이해와 타협을 넘어선 사랑만이 가정을 행복하게 해주듯이, 보존과 활용도 유적사랑이 기본이어야만 훌륭한 유적으로 거듭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는가.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피라미드가 3개 서있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30초만 바라보면 신비함이 사라지고 감각은 무뎌진다. 피라미드가 위대한 인류유산으로 남게 된 것은 그 거대함에서 인간들이 수많은 상상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B.C. 3천년~4천년에 인류의 힘으로 저런 거대한 돌더미를 쌓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저 높이까지 무거운 돌덩어리를 끌어 올리면서 무너지지 않게 쌓았을까. 파라오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노예처럼 부리면서 쌓았다면 저것을 완공시킬 수 있었을까. 아니면 동원된 사람들도 파라오의 음덕을 입어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어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피라미드는 최근까지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외계인의 공격을 받았을 정도로 인류 상상력의 원천이다.

이제 금마의 유적지에 우리가 어떤 옷을 만들어 입히느냐에 따라 세계인들의 유산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유산으로만 남을 것인가가 결정된다. 이탈리아의 베로나는 로미오와 쥴리엣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 고장의 단순한 사랑이야기였다. 셰익스피어라는 거장이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히므로 해서 세계인들의 사랑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연 보여줄 것이 없다. 보여주기 위하여 베로나 시에서 줄리엣의 집을 선정했다.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베로나에는 로마의 유적지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유명한 로마의 원형극장도 남아 있으며, 시 곳곳에는 발굴된 유적지를 유리로 덮어 놓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줄리엣의 집의 난간을 보려는 사람과 줄리엣 동상의 젖가슴을 만지고자 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을 상술이 놓치겠는가. 로마의 원형극장과 줄리엣의 집을 연결하는 도로상에는 명품샵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돈 있는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미륵사에 관해서는 유명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미륵사지 석탑에서 명문이 발견되었다. 이 명문에서는 사택적덕의 딸이 왕비로 나오고, 선화공주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를 놓고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역사상의 사실 문제는 역사학자에게 맡기자.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라와 백제의 전쟁 와중에 피어난 사랑이야기를 누가 띄워 줄 것인가가 기대된다. 왕궁리는 신라의 무왕이 왕궁을 세웠던 곳인데, 신라 무열왕이 죽자 이곳의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금마의 땅에 5보 너비의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신라의 국왕이 죽었는데, 왜 이곳에서 이런 반응이 나타났을까. 이야기 모티브의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왕궁리와 미륵사 사이에 세계적인 쇼핑센터가 만들어지는 상상만 해도, 빨리 그 곳에 부동산투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생각이 든다. 탑 하나와 주춧돌만 남은 황량한 유적에 어떤 유능한 재단사가 나와 어떻게 꾸며줄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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