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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 | 칼럼·시평 [문화칼럼]
고전번역의 힘
변주승(2015-07-02 16:53:56)

요즈음 들어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드높다. 인문학의 필요성과 인문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드세다. '창조경제'가 화두로 대두되며, '인문학'의 발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인문콘텐츠' 개발이 마치 시대적 요구처럼 부각되고 있다. '인문학'은 과연 이처럼 소중한 것인가?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많은 분들이 인문학에 대해 다양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고전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인문정신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 논하기에는 내 주제도 안 되고 역량도 미치지 않는다. 중앙이 아닌 지방, 서울이 아닌 전주에 묻혀 고전번역에 몰두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봄으로서, 고전번역의 힘과 인문학의 힘에 대한 내 짧은 소견이나마 드러내보려 한다.

 

1997년 2월 서울.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고전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추출한 한보따리 한문사료를 들고 삼천천변에 둥지를 틀었다. 전주는 누이가 살던 곳이라서 대학생 때부터 인연을 맺었으며, 매형의 소개로 1992년부터 전주대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던 곳이었다. 꼬박 3년을 원고와 씨름한 끝에 1999년에 『신유박해자료집』(3권)이라는 내 생애 최초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천주교 순교자 가운데 치명자산에 묻힌 이순이누갈다 가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것도 운명인가'라는 단상에 젖기도 하였다. 2000년부터는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고전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정교(鄭喬) 선생이 고종의 탄생부터 대한제국 멸망까지 역사를 정리한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10권)를 2004년에 탈고했다. 영조 임금 때 조선팔도 350여 고을의 읍지를 수록한 전국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50권)를 2009년에 출판했다.
2014년에는 번역에 착수한 지 10년 만에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90권)을 출간했다. 『추안급국안』은 선조 34년(1601)부터 고종 29년(1892)까지 변란, 역모, 천주교, 왕릉 방화 등에 관련된 중죄인들을 체포·심문한 기록이다. 영인본으로 전 30권, 권당 900면 내외이며, 원문 글자 수는 약 670만 자이다. 번역문은 200자 원고지로 대략 15만 매이며, 총 90책(신국판)에 달한다. 심문 대상자는 신분상으로 양반에서 노비까지, 직역으로 관료와 상인 및 농민과 궁녀 등이 망라되어 있다. 다른 역사서에서 요약·압축된 사건이나 내용들을 심문과 진술 형태로 가감 없이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각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체적 진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 특히 베일에 싸여 있던 궁중 내부의 갈등은 조선 후기 역사적 사건의 속살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신유박해자료집』을 번역할 때만 해도 혼자였는데, 『대한계년사』는 4명, 『여지도서』는 6명, 『추안급국안』은 10명의 역자들이 참여했다. 서울, 인천, 청주, 대전, 동해에 사는 연구자들이 완주 비봉면 천호성지 천주교호남교회사연구소에서 매달 3박 4일씩 합숙하며 공동 작업으로 번역을 진행했다. 역자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학부, 대학원생들이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고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추안급국안』을 예로 들자면 약 30명의 연구진들이 한마음으로 땀을 흘린 결실이었다.


30대 중반 고전번역의 길에 발을 내디딘 뒤로 어언 20년 세월이 흘렀다. 삼천천변 골방과 천호성지 천산재(天山齋)를 오가며 밤 새워 번역하면서, 고전번역의 길은 외길이고 먼 길이라는 생각이 짙어만 갔다. 젊은 날 꿈꿨던 인문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교수의 삶과는 한참 동떨어진 채, 외길과 먼 길을 걷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며 뚜벅뚜벅 묵묵히 한길을 걸은 지 10년 세월이 지나자,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말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한둘이 걷기 시작했던 길이었는데 10년 세월이 지나자 많은 동료와 제자들이 길벗이 되어 있었다. 폐과 위기에 놓였던 학과는 특성학과, 명품학과가 되었다. 대학원에는 수십 명의 2,30대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사와 지역사, 고전번역과 고문서 전공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고전학연구소는 조선시대문집을 번역하는 거점연구소와 '근현대 지역공동체의 변화와 유교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인문학 중점연구소로 지정되었다. 연구소의 '근현대 유학연구단'은 호서와 호남지역 근대 100년 유학자의 사회관계망을 10년 목표로 정리하고 있고, '율곡연구단'은 이이(李珥) 선생의 문집을 정리하고 있다. 『여지도서』와 『추안급국안』을 출간했던 출판사는 완판본 고을 전주의 전통을 이어가며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우리가 출판한 고전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동지들과 세운 (사)한국고전연구원은 '우리를 위한 오늘 모두를 위한 내일'이라는 창립 정신을 꿋꿋이 지키며, 남녀노소를 아우르고 경향 각처에 자리한 3백 명 이상 회원들이 아끼는 조직이 되었다. 이제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중국, 러시아, 일본, 만주 연구자들과 연대하여 부설연구소(Glocal Humanity Society)를 개설해 동아시아로 무대를 넓혀가려 하고 있다.


30대 중반 '이립(而立)'의 나이에 고전번역의 길을 걷기로 뜻을 세운 뒤, '불혹(不惑)'의 40대를 한 눈 팔지 않고 지냈다. 한 때는 이 길이 외길이요 먼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대 중반에 들어서야 알고 보니, 고전번역의 길은 외길이 아닌 큰길이었고 먼 길이 아닌 지름길이었다. 상생과 화해의 인문정신을 구현하고, 지역의 발전과 한국학의 세계화를 목표로 나아갈 수 있는 새 길이었다. 이 모두와 이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고전의 힘! 고전번역의 힘! 인문학의 힘! 바로 그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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