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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 | 칼럼·시평 [문화시평]
판소리는 현재진행형
홍현종(JTV PD)(2015-04-01 13:29:54)

- 판에 박은 소리, Victor 춘향 -

판소리는 현재진행형

 

전통은 있으나, 현재를 찾아보기 힘든 판소리.
그것은 명창이라 불렸던 예전 그분들의 이야기도 아니며,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 본연의 모습과도 일치할 수 없다. 단지 오늘날 판소리가 처한 현실을 나타내줄 뿐이다.
이러한 판소리를 음악이기 이전에 이야기를 앞세워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와 활력을 불어 넣어준 ‘춘향 이야기’가 있다니 그 작품을 만나보자.

조선시대 시작된 민속예술 ‘판소리’는 개화기 서구문물의 도입과 더불어 ‘창극’의 형태로 발전해 당시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예술장르였다. 특히 1900년대 초 유성기의 등장으로 인해 공연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까지 판소리는 발전하게 된다.

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판에 박은 소리, Victor 춘향’은 시작된다.

1937년 일본 빅터(Victor) 레코드사의 녹음실에는 당대 최고 소리꾼들이 함께하는데, 그 레코드판 녹음 과정의 “이야기”를 국립민속국악원 단원들이 현대적 공연으로 재탄생시켰다.
장단붙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창극의 전형을 일궈낸 정정렬 역에 소원검, 월매의 원숙한 절창을 들려주는 이화중선 역에 방수미, 방울만큼 목소리가 아름다워 예명이 방울인 임방울 역에 김대일,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아니리와 시원스러운 목청을 자랑하는 박녹주 역에 김송, 청아한 목소리로 춘향의 사랑을 노래하는 수줍은 소녀 김소희 역에 서진희, 당대 최고 명고 한성준 역과 해설은 정민영이 맡았다.

판소리는 ‘음악’이기 이전에 ‘이야기’이다. 수년간 판소리를 접해본 필자의 견해로는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소리를 하는 것이 더 맞다. 일찍이 국어학자 이병기 선생은 판소리의 이러한 특징을 살려 “극가(劇歌)”라 칭하기도 하였는데, 판소리라는 공연예술은 소리를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며, 정확히 전달될 수 있는 소리꾼의 표현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공연을 살펴보자.
이 공연의 첫째 묘미는 마이크 없이 소리꾼들의 발성만으로 내용이 전달되는 것인데, 당시 판소리 연희(演戱)의 형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며, 이는 오늘날의 관객에게도 새로운 예술적 경험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전통을 재연한답시고 관객의 편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 본연의 감성과 특징을 맛보이고자 함이 명확하며, 관객입장에서는 보다 집중해서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내용이 굉장히 쉽다. 어려운 한자어 대신 일상용어를 많이 살려냄은 물론, 음악과 더불어 연극적 요소가 충분히 가미됨으로써 별도의 사전 지식 및 현장 자막 없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당연지사 소리꾼의 발음이 소리 실력만큼이나 의미를 전달함에 있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기도 하였으나 상당히 유쾌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판소리는 전통이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이 공연은 고전 춘향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춘향가를 만들어가는 당시 소리꾼들의 상황과 에피소드를 표현하고 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에서 재미를 얻기 보다는 당대 명창들이 입체창 형식으로 돌려 불렀던 상황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판소리 ‘더늠’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기학 연출자는 “창극은 답답한 전통의 굴레를 뒤집어 쓴 예술이 아니라 1900년 초 소리꾼들의 자유로운 정신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판소리였으며, 그것은 판소리가 그 시대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형식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없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소리꾼이 좋아하고, 소리꾼이 잘 할 수 있는 판소리가 아닌, 청중이 원하고, 듣는 이가 좋아하는 소리를 할 수 있을 때라야 “진정한 명창”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데, 지기학의 통찰은 판소리 본연의 의미를 전파하는 것은 물론 판소리를 살아있는 대중예술로 되살리려는 시도일 것이다.
특히 6명의 소리꾼과 3명의 반주자로 단출하게 짜인 구성은 이 공연이 왜 재공연 될 수 있었으며, 롱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또한 박제화 되고 보호되어야만 하는 판소리가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예술장르임을 이번 공연은 증명해 보인다.

판소리도 창극도 아닌 ‘소리극’이라는 경계를 달리고 있지만, 판소리를 현재진행형으로 이끌어내는 제작진의 호기와 시도에 관심과 박수를 보내며, 우리의 이야기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새로운 판소리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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