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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 | 칼럼·시평 [문화시평 ]
전북미술의 역량과 가능성을 보다
전북청년 2015 展
정우석 학예사 (2015-02-02 17:12:07)



<전북청년 2015>은 젊은 지역작가 발굴 및 창작지원의 일환으로 전북 청년세대의 가능성을 집중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작가선정부터 뜨거웠다. 작년 9월말 공모를 통해 78명의 신청자를 접수받아 1015일 전문가 3(전북도립미술관장 장석원, 아방가르드 작가 성능경, 한국문화예술위원 김찬동)의 심사가 총 3차에 걸쳐서 이뤄졌다. 1차는 작품성과 작가의식 등을 평가기준으로 27명이 우선 선정되었다. 2차는 전시경력 및 전시프로그램 참여 등 왕성한 작가활동에 대한 경력과 선정이후 역량과 가능성 등 다방면에 걸쳐 평가하여 9명이 선정되었다. 3차는 이번 청년작가 발굴 및 지원프로그램과 성격이 부합하는지 심사위원의 개별적 분석과 논의가 이루어져 최종 4[김병철(설치), 김성민 · 이주리(회화), 탁소연(한국화)]이 선정되었다. 올해 6월초에 미술관 본관에서 청년작가 4명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대대적인 전시를 가질 예정인데, 이번 상설전시실에서는 보고전 형식의 전시를 진행하였다. 본관전시 이후에는 검토를 거쳐 올해 9월에 개최될 아시아현대미술전 및 기타 전시관련 행사 등에 미술관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등 전북미술의 역량과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병철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제작으로 현대미술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전에는 세라믹 작업에 몰두했었다. 점토매체를 다루다가 석사논문 <이우환>론을 계기로 메타포(은유)적인 비움과 덧붙이기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사각 테이블이 지닌 물리적 요소에 착목한 작업에서는 테이블의 네 다리를 불완전한 이미지로 시각화한 후, 그 비워둔 자리에 라는 주체적 입장을 끌어들인다. 테이블이라는 보편적 사물이 작가의 재해석에 의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의 사물(테이블)을 대상으로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일상 속 사물을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문화 안에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의 작업장에는 작품이외에도 아이디어 스케치북으로 가득하다. 한 작품을 구상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일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진지한 자세가 그 스케치북에 빼곡하게 담겨져 있는데, 그의 예술가적 자질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성민은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현대인들의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캔버스 안에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도살장에 걸린 가축들의 살과 뼈,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 누드 등 유독 동물성의 존재들을 부각시킨 절박한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소파에 누드로 앉아 있는 사내는 배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왠지 무기력하고 피곤해 보인다. 도축장에 매달린 가축들의 살과 뼈, 힘없는 사내의 몸 모두는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만든 제도적 산물들이다. 사회시스템이 만든 무한경쟁의 삶속에서 낙오자가 된 동시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이 도축장의 가축들과 힘없는 사내의 몸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시대의 암울한 초상을 은유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이거나 관능적인 인체의 누드가 아니라 남자의 벌거벗은 몸을 통해 현재의 삶이 처한 막연함, 불안함, 초초함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이주리는 현대인들의 암울한 자화상을 적나라하면서도 직접적인 표현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몸 덩어리에는 자아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서 솔직하고 진지한 심정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마저 엿보인다. ‘이라고 하는 던져진 운명과도 같은 어쩔 수 없는 자아의 현실을 회갈색의 모노톤 화면에 엉킨 군상들의 형상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알몸의 군상들은 기성세대가 축조해 놓은 기존의 가치관과 자아와의 충돌일수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일수도, 경쟁사회에서의 긴박한 긴장감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군상이외에도 단독으로 그린 알몸 초상의 작품도 선보였다. 군상과는 사뭇 다른 정적이면서도 고독함을 자아내고 있으며, 마치 어머니 지궁 속에서 태아가 꿈틀거리듯 인간 태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을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눈을 꼭 감고 있는 알몸의 군상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있어서 내안으로 시선을 돌려 그 안에서 진정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의 심경을 발견하게 한다.

 

탁소연의 최근작 모티브는 이름 모를 낯선 타인의 모습이다. 지인이나 모델이 아닌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을 제작한 <무명씨> 연작이 그것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때론 어둡게, 때론 그림자처럼, 때론 흔적처럼 보이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 본인이 주체일 경우 <무명씨>는 타인이 되지만, <무명씨>가 주체로 바뀌게 되면 작가 자신은 결국 타인의 존재일 수밖에 없게 된다. 어둡거나, 희미한 그림자와 같거나, 혹은 흔적처럼 보이는 <무명씨>는 결국 우리 자신의 자화상 일수도 있는 것이다. 삭막한 도심 속을 끊임없이 오고가는 <무명씨>의 표정과 몸짓을 담담하면서도 과감하게 생략하여 표현한 수묵작품에는 숨을 고를 여유가 느껴지게 한다. 한지와 먹의 물성이 자아내는 우연적이면서 즉흥적인 특질은 작가의 내면세계에 내재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대변해준다.

 

우리지역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배출된다는 것은 전북 문화의 자산적 가치를 드높이는 일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작가 혼자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지역 사회의 관심과 격려, 성숙한 미술문화 환경 조성이 뒤따라야한다. 이번에 선발된 4명의 청년작가들은 투철한 작가정신과 함께 열정을 다해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창작열이 왕성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청년작가들의 작품발표를 통해 향후 각자의 작품세계를 더욱 성숙시키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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