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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 | 칼럼·시평 [이십대의 편지]
여전히 지구는 돌아간다
문이랑(2014-12-02 10:18:16)

이번 해를 넘기면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GRAYE라는 이름을 달고 프로듀서로 활동한지 4년차가 된다.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21살의 군산 촌놈은 그토록 원하던 음반을 서울에서 내게 되었고, 이젠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의 크고 작은 공연과 생각치도 못한 몇 번의 메이저 잡지의 인터뷰로 씬(scene) 안에서 나름의 입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었던 나는 TV엔 나오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 것을 다 이뤄버린 셈이다. 내가 세워놓은 목표와 꿈을 이뤘음에도 내 삶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말이면 공연을 위해 서울에 가고, 평일엔 내가 살고 있는 군산에서 공연 기획을 한다. 몇 번의 좋은 기회들도 있었지만 나에게 맞지 않거나 하기 싫으면 굳이 하지 않았다. 

덕분에 중요한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혹은 흔히들 말하는 그런 성공을 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20살, 아버지의 사업이 잘못되어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자퇴하게 되었고, 지금도 큰돈이 필요할 때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그 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냄에도 ‘행복’을 얻기에는 쉽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행복의 기준을 딱 정해 놓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고 해서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또는 반대로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서,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산다고 큰 행복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보통 나와 같은 나이의 수많은 20대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취업, 결혼, 금전적인 성공을 강요받으며 어른이 되고, 행여 이 중 하나라도 이루지 못할까 하루하루를 불안감 속에서 산다. 또 어떤 이는 있지도 않은 꿈을 위해서 매일 같이 기계와 같은 삶을 반복하고 언젠가 그 꿈을 이루면 행복은 1+1 같이 따라 올 것이라는 큰 착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고 있지만, 매번 휴대폰 요금을 밀려 납부하고 아직까지도 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금에 허덕이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사실 누군가가 그건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하더라도 상관없다. “좀 더 살아보면 너도 현실을 알게 될 거야” 라는 말도 수 없이 듣겠지. 

거창한 스타가 되어 어마어마한 무대에 서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오래 활동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 순간에도 내 음악을 듣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기분 좋은 순간들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에서야 느낀 것이지만, 앞서 말한 것들을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저작권료나 높은 공연료가 아니라, 걱정 없이 그냥 하던 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나 잘 하는 거다. 꼭 음악가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스타가 될 필요는 없지 않나? 

이와 같이 모두가 알면서도 잊고 사는 사실 중 하나는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온갖 쓰레기를 버려도 약 45억년을 버텨온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계속 돌뿐. 

지금의 나조차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 아픈 친구들이 있다면 앞으로 쭉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나와 당신, 그 누가 어떤 짓을 해도 여전히 지구는 돌아가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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