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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 칼럼·시평 [상식철학]
인간 그리고 우주
김의수 전북대 명예교수(2014-11-04 10:11:09)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있던 10월 9일 한글날 한옥마을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발 디딜 틈도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풍경이었다. 외지에서 온 자동차들은 멀리서부터 밀리기 시작했고, 태조로와 한옥마을 골목골목은 주말 서울 명동을 방불케 했다. 풍년제과를 비롯한 여러 가게들에는 간단한 먹거리를 사려고 기다리는 줄이 몇 십 미터씩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걸어가다 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잠시 혼미해질 때가 있다. 


소우주로서 인간 


그러나 우리 인간 개개인은 각기 자기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인의 정체성이 갖는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우리 각 개인이 하나의 소우주라고 말했다. 

형이상학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소중함과 비중을 느끼게 해주는 생물학 정보가 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거북이가 알에서 깨어나 바닷물에 들어가기까지 거치게 되는 생과 사의 험난한 여정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조금 더 미시적으로 관찰해보면 우리 자신의 출생 과정 또한 너무도 놀랍고 신비롭다. 한 남자가 1회 사정하는 정액에는 약 2억 마리의 정충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 딱 한 마리가 난자에 도달하여 생명을 잉태한다. 한마디로 나는 2억 대 1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한 마리의 정충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태된 하나의 생식 세포는 직경이 1mm의 1/5밖에 안 되지만, 자기복제를 통해 무려 10조개의 세포로 늘어나고, 그가 가지고 있는 DNA는 5백쪽 짜리 백과사전 4천권에 달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한다. 생물학이 보여주는 기초지식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존재의 신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런 시각과 대조되는 거시적 관찰은 정반대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실감나게 해 준다.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고 태양까지는 8분이 걸린다. 빛이 1년 동안 달리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하는데, 은하계는 지름이 10만 광년이고 거기에는 무려 3천 억 개의 별들이 있다. 그런데 우주에는 이런 은하계가 수천 억 개나 된다. 이 대우주의 크기는 상상하기조차 힘든다. 


자연 정보와 인생철학 


이렇게 한 인간은 엄청난 희소성을 가진 귀한 존재이고, 그 속에는 어마어마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한대로 광대한 우주 속에서 먼지 중의 먼지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한마디로 너무도 큰 의미를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너무도 미미한 존재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의 정보들을 그대로 인정하기만 해도 저절로 삶의 의미가 정리되고, 세상의 긍극적 물음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저 광활한 우주를 상상해보면 삶에 대한 애착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오로지 겸허와 성실이 자리할 뿐이다. 

소리축제 인파거리에서 우리는 어느 가족의 길거리 공연을 구경했다. 아빠의 장고를 중심으로 국악과 외국 타악기가 어우러진 엄마와 청소년인 두 아들이 함께 한 공연은 멋지고 환상적으로 한옥마을 오후를 물들였다. 각자는 고유한 소리를 내는 각각의 악기를 연주했고, 각각의 소리들은 어우러져 새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소우주들이 모여 대우주를 이루는 장관을 연상시키듯 4인 소가족의 공연은 마을 인파를 넘어 우주를 향하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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