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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 | 칼럼·시평 [서평]
그렇게 백석이 찾아왔다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다산책방
백상웅(2014-08-01 16:01:43)

1999년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하고 문학회에 들어갔을 때다. 새내기 중에 남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고, 둘 다 유난히 말랐다. 선배들은 늘 굶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 후배들을 자취방으로 끌고 가 자주 라면을 끓여주었다. 냄비 하나 겨우 작은 상에 둘러앉으면 꽉 차는 방이었다. 그 작은 방엔 시집들과 문학 이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나는 책들을 보며 선배들이 과연 저 책을 다 읽은 것인가 시답지도 않은 궁금증에 빠지기도 했다.

선배들 자취방 한쪽의 작은 중고 냉장고에는 유행처럼 손으로 옮겨 쓴 시가 붙어 있었다. 김수영, 기형도, 장석남, 황지우…… 나는 그 시인들의 이름도 시도 제대로 모르는 초짜였지만, 나도 언젠가 자취를 하면 시를 냉장고에 붙여놓으리라고 소박한 꿈을 꾸기도 했다. 냉장고에 붙은 시 중에 가장 자주 보였던 시는 백석의 시였다. 밤새 술을 마시다가 낭만에 젖은 누군가의 입에서 낭송되던 시에도 꼭 백석의 시가 있었다. 선배들은 백석을 사랑했다. 나는 백석을 알게 되었다.


백석을 다시 만나다

2006년이었다. 학교를 옮겼다. 나는 안도현 시인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백석을 다시 만났다. 선생님은 교재로 백석 시집을 채택했고, 제자들은 수업시간마다 백석 시집을 펼치고 시를 읽었다. 시집으로 공부를 할 때면 시집을 낸 시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어떤 느낌으로 읽었는지 문자를 보내라는 미션을 줬던 선생님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린 백석에게 문자를 보낼 수 없었다. 백석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어도 북에 있었기에 연락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수업도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선생님은 “오늘도 당신을 사랑해서 꽃이 피었다”는 문자를 친구에게 부모에게 보내보라고 과제를 냈다. 어떤 답장이 올 것인지가 이 과제의 가장 큰 재미였다. “오늘도 당신을 사랑해서 꽃이 피었다”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첫 행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의 변주였다. 안도현 시인 곁에 있으면 알게 모르게 백석을 만나게 되고, 백석을 따라 사랑 고백도 하게 된다. 그리고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백석을 흠모한 시인

2014년이 되었다. 『백석 평전』이 나왔고, 안도현 시인이 썼다. 선생님은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백석을 짝사랑해왔고 한다. 이 짝사랑에 대한 마음은 서문에 잘 표현되어 있다. 서문에서 몇 줄 옮겨 적어본다. “1980년 스무 살 무렵, 백석의 시 「모닥불」이 처음 내게 왔다. 그대부터 그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평전’이라는 형식으로 백석의 생애를 복원해 본다면 이것 역시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선생님을 시의 열병에 빠지게 만든 백석의 시 「모닥불」은 단어의 열거만으로도 강렬한 시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백석, 「모닥불」 1연)은 스무 살 안도현을 사로잡았고, 삼십 년 넘는 세월동안 선생님을 애달프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간절히 짝사랑을 한다는 것, 그래서 한 인간을 베끼고 싶다는 건 시인이 시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철없고 속절없는 찬사가 아닐까 싶다.


낭만과 추억, 그리고 ‘백석’

그간 내 마음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던 백석은 술자리에서 낭송되는 낭만이거나 시수업의 교재였다. 나는 그 낭만과 거기에 쌓인 추억을 떠올렸고, 교재를 아꼈을 뿐이었다. 다른 말로 그냥 좋다거나, 마냥 좋다거나…… 그러나 『백석 평전』을 읽고 비로소 이 애매모호한 감정들에 형상을 찾게 되었다.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백석은 찾아왔다.

평전의 첫 장에는 경의선 이름이 한 군데도 빠짐없이 적혀 있다. 만주에서 황폐한 유랑의 시간을 보낸 백석은 경의선에 몸을 실었다. 해방이 왔지만 38선을 경계로 남북은 나뉘었다. 백석은 고향으로 갔고, 고향에 남았다.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한 지친 영혼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몇 번이고 하는 내 모습도 괜히 집어넣어보기도 했다. 갈 곳을 고민하다가 결국 전라선을 타고 고향 여수로 내려가는 내 모습…… 그러나 백석은 나보다 더 절망적이었고, 가야할 땅은 한 곳밖에 없었다.

백석의 이야기는 이렇게 슬픔에서 시작해서 백석의 유년과 청춘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북한 시절과 죽음까지 흘러간다.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평전처럼. 이시영 시인은 『백석 평전』을 읽고 이런 말을 남겼다. “흠모의 정에 넘치면서도 객관성을 얻기 위해 노력한 그의 평전은 오랫동안 백석의 가장 적확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의 백석에 대한 안시인의 평가는 아주 온당하다고 본다. 그의 노력에 감사한다.”




백상웅 「꽃 피는 철공소」 외 3편으로 2006년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을, 「각목」 외 4편으로 2008년 제8회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거인을 보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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