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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 | 칼럼·시평 [문화칼럼]
팔걸이 의자에 대한 단상
김옥영 스토리텔링연구소 온 대표(2014-04-29 14:00:44)

일주일이 지났다. 새처럼 지저귀던 아이들은 이상 말이 없다. 무시무시한 침묵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찢고 있다. 봄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있다. 불의하고 무도하고 무능한 어른들 때문에. 

지난 일주일 너무나 비통하고 참담했다. 팽목항에서 울부짖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에 공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바닥을 보는 듯한 아찔한 절망감과 분노 때문이기도 했다. 수백명의 꽃다운 생명이 침몰한 세월호 속에 갇혀 있는 지금, 무슨 다른 이야기를 있겠는가. 편집자는 원고 청탁서에문화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에 관련한 이야기라고 썼지만, 죄송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는 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이번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는문화라는 관점도 유효하다는 이야기는 있겠다. 세월호의 침몰과 그에 대한 대처가 총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부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미디어에 의해 밝혀지고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겠다.  


문화란 무엇인가? 좁은 의미로서 그것은 흔히 무엇인가를만들어내는것이라고 인식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우리의 , 삶의 방식 자체를 의미한다.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 서두에서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문화는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다.” 인류만이 가진 고유한능력습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추상상징 이해하면서 얻어진 행동양식의 결과이다. 인간이 이루어낸문화 바로 상징적 사고로부터 비롯된다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상징을 이해하고 구사할 있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삶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언어를 만들었고 사물에 의미를 덧붙였다. 의미는 윤리가 되고 제도로 발전해갔다. 칼은 원래 사냥감을 베거나 적을 치는 실용적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추상이 덧입혀지면서 칼을 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종족 보존을 위한 섹스는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로 발전했고 부부의 책임과 의무가 부여되었다. 이것이 세대를 거쳐 학습되면서 사회의 독특한 체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흔히 한민족 문화니 한국인의 문화니 일컬어지는 것도 그렇게 이루어졌고, 나치의 문화도 히피의 문화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상징화가 어떻게 집단의 문화가 되는지 우리는 진도에서도 극명한 사례를 목도하고 있다. 일전에 학부모들의 임시거처인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장관이 팔걸이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맹비난을 받았다. 학부모들이 바닥에서 거처하는데 장관이 의자에 앉아 구급용 테이블을 치우고 위에서 라면을 먹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장관도 인간이니 먹어야 산다. 산해진미도 아니고 라면 한그릇 먹은 가지고 과잉반응이라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것은 라면에 있지 않다. 나는 불편함의 원인이 다른 있다고 본다. 

 장관을 위하여 어느 수하가 가져다놓았을 팔걸이의자-이것은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 상징이다. 이것을 가져다놓으라고 지시한 누군가의 의식체계 속에 장관은 다른 일반인과 구별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존재의 힘과 권위를 드러내줄 오브제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수행원들은 그것을예우라고 말할 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요된 상징에 동의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생때같은 자식들이 수장되어 부모들이 오열하고 있는 참혹한 현장에서도 그러한 상징화가 우선되어야 하는가? 

사실 팔걸이의자만이 아니다. 어떤 관료는 세월호 실종자 명단 앞에서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어떤 수행원은 장례식장의 부모에게장관 오셨다 속삭였고, 어떤 수행원은 대통령의 말씀이 끝났으니박수!”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한두 사례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모시는 분이, 혹은 자신이일반인들과 구별되는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그것을 구별 지을 있는 상징적 오브제와 행위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며 그들이 습득한 문화는 권력의 위계에 충실한 전근대적인 질서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즐겨 말하는국민 그들에게 대상화된 존재일 뿐이며, 그들의 행위는 그들 스스로가 국민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존재라는 사실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도는 구난체계의 무능을 드러내는 쇼윈도우일뿐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를 드러내는 쇼윈도우이기도 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모습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자리에 있으나 마치 개의 나라처럼, 국민으로부터 멀리멀리 유리되어있는 그들만의 문화가 두렵다. 


정부는 4 국정기조의 하나로문화융성 내세우고 문화가 국민 행복의 열쇠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오페라도 좋지만,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국민을 더욱 행복하게 하리라 믿는다. 

국민이 함께 울고 있는데, 당신은 팔걸이의자를 찾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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