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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5 | 칼럼·시평 [문화시평]
삶의 본질문제에의 철학
'우리시대의 풍경'
진동규 시인(2003-09-08 17:44:14)

1. 본질적 문제 접근에의 만남
들판 이곳저곳에 몇 개 말뚝이 박혀있었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낮은 구릉 같은 곳이었다. 거기 박힌 말뚝도 그랬다. 잘 다듬어졌다 거나 또 어떤 이정표 같은 성격의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이 있었구나, 누군가의 「의도함」 같은 것이 있구나, 그런 「흔적」이구나, 하는 정도의 말뚝이었는데 그 때 그 말뚝이 어쩌면 그토록 강하게 다가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그때 그것은 여운으로 남아서-신성한 자연 앞에 음흉한 음모 같은 것이 있었구나-하는 데까지 우리들의 상상력을 발전시키는데 충분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 단순한 말뚝 몇 개가 「못박힘」 같은 강한 충격으로와 새겨졌는지는 또 한번 생각 해 볼 일이다.
오래 되어서 몇 년 전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가 전주에 터를 잡고 처음 가진 전람회장 아니었던가 싶은데 그의 그림을 처음 만난 인상은 그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퍼런 들이 또 타고 있었다. 잘 마른 갈대밭언덕, 그래서 봄불은 여시불 활활 잘타는 산불이 아니었다. 시퍼런 들이, 청솔바람 그대로 살아 있는 동네 뒤 퍼런 야산이 타들어오고 있었다. 능선 뒤로부터 불길은 도도하게 타들어 오고 있었다. 불길은 그리 만만히 꺼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가 만들어준 공간 안에서 심한 가슴의 고통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근거림이란 것이 섬뜩하리만큼 생생하게 전해지는 작가의 육성, 그것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 되어진다.
작품이 독자로부터 감동을 획득해야한다는 것은 절대 명제다. 한마디로 예술품이란 필연적으로 고도한 기교를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고 또 나름의 질서와 맛같은 것이 없이는 호소력을 앓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독자에게 감명을 주기에는 미흡함이 없지 않다. 탁월한 기교는 사람들에게서 「기가 막힌다」라는 1차적 감탄을 끌어낼지는 모르지만 가슴으로부터의 울림을 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그것은 진실에 바탕하는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임옥상의 작품이 이 시대에 계층간의 구별 없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은 그가 끝내 예술의 근본적인 문제를, 삶의 본질의 문제를 악착스러우리만치 끈질지게 천착해 들어가며 노력하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 만남에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에게는 이미 진즉부터 이런 작업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타들어오는 생명의 땅, 그의 그러한 상황인식은 오늘 보여주는 〈우리시대의 풍경〉으로 구체화 되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2.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하는 이야기 그림
두루마리 그림 〈우리 시대의 풍경〉전에 한두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 하나는 그림은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가라」하고 명제도 없이 던져보는 것이 아니고 철저하니 속이야기까지 들려줌으로써 독자와 함께 호흡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것과 또 하나는 우리 지역 공간에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나는 이 글에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간략히 옮겨주는 외에 따로이 첨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이 아마 제작 전에 이미 쓴 글같이 느껴지는 청사진을 전시장에 함께 보여주고 있다. 아주 답답하게 구상한 바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솔직하게 제작 동기에서부터 제작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카탈로그는 처음 보았다. 그가 서술하고 있는 그대로를 첨삭 없이 옮겨놓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흠내지 않는 일일 것 같다.
82년 주제 선정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이야기」"땅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본질적이지 않겠느냐"에 큰 윤곽을 세우고 도불로 인하여 이 땅의 역사를 그리고자 했던 계획이 너무나도 우리와 유사한 도정을 가지는 아프리카 현대사를 그리게 한 모태가 되고 앞으로 이런 그림들을 다른 과정을 거쳐 종합하고자 한다.
이에 그는 이번 작품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자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농촌의 모습, 수몰민 이야기, 그리고 한 가족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쫓겨나는 이농의 문제와 이들이 결국은 도시빈민 즉 산업 예비군으로 편입되어져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이어 상업도시와 대도시의 현실과 그림의 중심 부분에 미8군에 위치해 있는 남산과 골프장이 그려질 것이다. 곧 이어서 기지촌의 문제와 그런 거대 도시를 가능하게 하고 그 거대 도시가 직면한 현실을 뒷받침해주는 공업생산 즉 공장지대가 그려지며, 노동현장의 전형적인 노동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그 공장의 결과로서 땅의 현실로서 드러나는 공해문제와 폐허가 된 땅, 그리고 또 살아 있는 땅이긴 하되 분단현실로 인해 요새화되어 군사 시설로 뒤덮인 땅의 풍경이 그려지게 된다. 구조상으로는 도입부가 있고 클라이막스가 있어서 마지막에 대미를 장식하는 소설적 구성이 아닌 양 끝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가운데로 그 구심점이 모아지는 형식이다.
그는 스스로 "민중미술 작가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어져야 하고 관념적인 것들이 아니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절실히 요구했던 것들"이 독자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그림으로 되기를 그는 바라는 것이리라.

3. 우리 공간에서 나누는 우리 이야기
이번 〈우리 시대의 풍경〉전에서 한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들이 우려 지역공간에서 이야기되어 진다는 것이다. 하긴 앞서 〈아프리카 현대사〉를 같은 장소에서 보여준 바도 있긴 있다. 하지만 이번전시회에 큰 의미를 주고 싶은 것은 전자는 서울전의 성과 뒤에 독자들로부터의 앙코르전 성격이었고 이번의 경우는 오리지날이라는 점이다. 물론 전시 장소가 작품의 내용을 좌우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이티의 그것들이 파리에서 제작되었다면 어떨까도 생각할 만 하지 않을까? 그때와는 또 여건들이 많이도 달라진 현실을 생각하고 보면 현장감을 생생하게 살려야 한다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라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섬진강가에서 토끼풀은 쌀밥으로 보이고 자운영은 또 이글거리는 숯불로 보이나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그것은 시계꽃이 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정치 경제의 중앙집권이 뿌리 깊다보니 요즘은 의식주 어느 것 하나 중앙집권화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골목 안에서 파는 만두빵 닭튀김까지도 다 서울 빵, 서울 닭이어야 된다. 며칠 뒤면 먹는 물도 도봉산 약수를 먹을 것이고 콩나물도 청계천 콩나물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섬짓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우리 시대의 풍경〉에 작가는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추측하는 것은 〈아프리카 현대사〉가 미술계에서 여타한 호을을 얻은 뒤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구상한지 9년만의 전시회라는 점 그것 아니고도 이 지역의 문제, 이 고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마련하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오순도순 고개를 끄덕여가며 탁주잔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거의 나무한그루까지라도 정확하게 사실에 바탕해서"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그에게는 그 다음에 올 비밀스런 메아리를 기대함도 있을 법 하지 않은가. 그 자신 언젠가 "어떤 것도 이제 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확신 뒤에는 보다 더 큰 아픔으로 환희로 만나야 할 울림소리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음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연장 그릇을 들고 물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딱히 쉬고 싶은 것도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여하튼 무엇인가 잊은 것 같은,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임옥상 그림 연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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