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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 | 칼럼·시평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영화 <대단한 유혹>
관리자(2012-04-04 17:54:16)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특별한 유혹 송경원 영화 평론가 이브의 유혹. 몇 해 전 모 케이블방송사에서 제작한 성인물 시리즈의 제목이다. 유혹이란 단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개 성인물이나 공포물, 스릴러물의 제목에 등장하곤 한다. 재밌는 것은 유혹을 뜻하는 영어단어 temptation과 시험(test), 시련(trial)의 단어들이“페이라스모스”라는 헬라어 한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유혹이 시험이기도 하고 시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로서 혹은 잘 견뎌낸 결과로서 삶에 더 큰 좋은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고대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유혹이라는 단어에 담긴 반전의 교훈을 그린 영화, <대단한 유혹>을 소개한다. 유혹이라 부를 수 없는 유혹의 시작 ‘유혹’이란 말은 어딘가 위험해 보인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봐도 단어사이 묻어있는 특유의 끈적거리고 어두운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그것은아마도 먼지처럼 두툼하게 쌓인 수많은이야기들이 남기고 간 감정들 때문일 것이다. 그 옛날 에덴동산, 이브를 유혹했던 뱀의 혓바닥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기나긴 유혹의 역사는 언제나 음모와 대가, 욕심을 동반한 위험한 거래였다. 그러나 영화 <대단한 유혹>을 보고나면당신의 생각은 바뀔지도 모른다.캐나다에서 날아온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영화는 가슴 두근거릴 에로틱한 사연 대신 마음의 온도를 1도쯤 올려줄 따뜻한 이야기로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부당한 오해였는지 알려준다. 대개‘유혹’은 아름답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말처럼‘아름다움을 선량함이라 여기는 것은 정말 이상한 환상’이다. 아름다움이 착한것이 아니라 착한 것들이 아름답다. 달리 말하자면 유혹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불순한 마음이 유혹을위험하게 만든다. 만약 더할 나위 없는선의와 소박함으로 무장한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여전히 그 유혹에 넘어갈 수 있을까. <대단한유혹>을 보고나면 서슴없이‘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캐나다 퀘벡 주의 외딴 섬‘생 마리아’. 한때 그곳 사람들은 매일매일 작은일에 감사하며 살았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일한 만큼 휴식을 즐기고, 맛있는 생선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으면 족하던시절, 그들의 삶은 모든 순간 진실 되고충만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을에일거리가 없어지자 사람들은 일자리를찾아 하나둘 마을을 떠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연금에 의지해 무료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마을사람들이 연금보다 월급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꼭 먹고 사는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처럼 아침에 눈을 뜰 의미, 머물 곳을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겐‘일’이 필요하다. 여기서부터 상황은 재미있어진다. 마을의 숙원 사업이자 모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줄 플라스틱 공장 유치를 허가 받기 위해서 의사가 꼭 필요하지만 시골벽지‘생 마리아’마을에 의사들이 살고 싶어 할 리 없다. 의사 없이 지낸 지 벌써 15년째, 어느 날 마을에 의사가 한명이 뚝 떨어진다. 몬트리올의 성형외과 루이스가 음주운전 때문에 봉사차원에서 한 달간 마을에 머물게 된 것. 공장유치를 위해서는 적어도 5년 간 마을에 머물 의사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마을사람들은 그 때부터 루이스를 유혹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온 마을사람들의 연극.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모두가 단결해서 한 사람을 속인다는 점에서 얼핏 <트루먼 쇼>가 떠오르기도 하고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단한 유혹>이 특별한 까닭은 마을사람들의 순박함과 허술함 덕분이다. 자신들스스로도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마을에서 그야말로 신기한 대상인 도시의 의사선생을 재밌게 해줄 일이 무엇이 있을까. 매일 작은 행복한 기대감을 주기 위해 그가 다니는 골목길에 1달러를 놓아두자는 의견은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차라리 귀여울 지경이다. 첫인상을 위한환경미화는 물론이거니와 낚시를 할라치면 몰래 물밑으로 들어가 낚시 바늘에커다란 물고기를 달아주는 나름 야심차고 똘똘한 프로젝트까지 준비 완료다.하지만 이들 계획의 최대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어설픔이 아니라 착하고 따뜻한 심성이다. 그렇지 않아도루이스가 도시에 남겨둔 애인 브리짓을그리워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던 마을사람들은 브리짓이 루이스를 속이고바람을 펴서 헤어진 사실을 알게 되자 갈등에 빠진다. ‘루이스가 그 동안의 마을생활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그리고 급기야는 자신들이 그 동안 루이스를 속였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 채그와의 계약을 포기한다. 마을사람들의 유혹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자신들의 마을이 없어질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먼저 걱정하고, 연민하며, 아낀다. 이타심.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 한때는 우리 모두가 가졌을 본능. 어쩌다보니 이제는 가난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버린 이 같은 마음의 연대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을 충만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유혹>은 한 편의 코미디를 넘어 오늘날 척박해져가는 우리 삶에 본질적인 물음을 제시한다.처음엔 그들의 어설픔이 마냥 우습다.하지만 크로켓을 좋아하는 루이스를 위해 생소한 크로켓 경기 규칙을 외우려안간힘을 쓰고, 그의 취향을 알기 위해어설픈 도청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들처럼 진지해진다. 조악하고 유치한 유혹대작전 일지언정 그들의 절박함만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기때문이다. 순수함이란 대개 그 자체로하나의 힘이자 아름다움이다. 법 없이도살 후미진 섬마을 사람들이 꾸미는 어설프고 순박한 거짓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진심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연민은그 어떤 감언이설보다‘대단한’유혹이되어 관객마저 이에 동참시킨다.<대단한 유혹>은 그저 환상이자 따뜻한 동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에둘러 짚어내는 지점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뼈아픈 곳을 긁어준다.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신자유주의의 물결에내몰려 생존경쟁에 허덕이는 이 땅의 서글픈 영혼들은 오늘도 불안하다. 불안과생존의 공포만이 평등한 부조리한 세상.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은 상황과 조건의 문제이지 좋고 나쁨의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이 우리의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담담히 받아들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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