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1.3 | 칼럼·시평
故박완서 선생을 추모하며
관리자(2011-03-04 18:27:30)

故박완서 선생을 추모하며 


또 다른, 살아 있는 날의 시작 - 류보선 군산대학교 교수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불현듯 내게 온 말이 있었다. 

“사랑했지만, 내가 김광석을 죽였다.”15년전쯤「불멸의이순신」,「 방각본살인사건」의 작가 김탁환이 불세출의 가객 김광석의 죽음을 두고 탄식하듯 읊조린 말이었다. 한데, 그 구절이 문득 다가와 떠나질 않았다. 그 구절이 떠나질 않아 우울했다. 아니 우울해서 그 구절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렇다. 사랑했지만, 나는 박완서 선생을 더 지켜드리질 못했다.지난 연말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 들었을 때 무조건 선생곁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또 몸이 조금 좋아지셔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을 놓는 대신에 달려가서 몸이 완전히 쾌차하시거든 읽으시라고 했어야 했다. 아니면, 박완서 선생의 소설이 지닌 소설적 특이성과 위상을 그 위업에 걸맞게 거듭거듭 읽고 맥락화하여 보다더 많은 사람들이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경배하게 했어야 했고, 그렇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받아 선생이 선생의 몸을 더 돌보시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뒤로 밀어놓은 나의 안일함이 박완서 선생을 지켜내지 못했다. 사랑했지만, 내가 박완서 선생을 너무 일찍 저쪽으로 가시게 했다. 모든 경험을‘기억’해야만 했던 작가 박완서 선생이 누군가.「 나목」,「 카메라와 워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도둑맞은 가난」, 「살아있는 날의 시작」,「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그많던싱아는누가다먹었을까」,「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미망」,「 너무도 쓸쓸한 당신」,「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친절한 복희씨」등‘천의무봉’의 명편을 잇달아 쏟아낸 20세기 한국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여기까진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이다.하지만 박완서 선생이 한 일은 이것보다 더 많고 하나하나가 다 위대하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은 단순히 감동적인 작품이 아니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안에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진실이 내장되어 있다.박완서 선생은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기억’했던 작가이다. 아니,‘ 기억’해야만하는운명을지녔다고해야정확할지 모르겠다. 박완서 선생은 파란만장한 시대에서 나서 파란만장한 시대에서 성장하고 파란만장한 시대의 한 복판에서돌아가셨다. 박완서 선생은 살아 생전 내내 조지 오웰의「1984」속의 세상 모양 통치자들의 결심에 따라 이전 역사모두가 한 순간에 뒤바뀌는 그런 시대를 사셨다. 한국 민중의 염원과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제국의 이익을강제적으로 관철시키던 식민지 시기에 태어났고, 또 우리도강해져야 하므로 낡은 것 모두를 백지화시키고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를 하루빨리 이식해 와야 한다는 시대적조류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러한 양 이념이 격렬하게 부딪친한국전쟁기에 청춘기를 보내야 했다. 


그 격랑의 시대에 박완서 선생은 연속되는 불행을 감내해야 했다. 어려서 병으로아버지를 잃었고 한국전쟁기에는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으로인해 오빠마저 잃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남편과 아들까지잃는 불행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처럼 무고한 사람들의행복을 짓밟은 세상은 아무런 반성도 뉘우침도 사과도 없이흘러갔다. 흘러갔을 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오히려 죄인으로, 무능력한 사람으로. 또 쓸모없는 실존으로 격하시키며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를 유지해갔다. 말하자면 박완서 선생은 너무 대단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각 개인들의 작은역사나 개별성은 용인되지 않는 시대를 관통해야 했고, 그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포함 각 개인들의 존재 전체를 말소하려는 난폭한 이데올로기들과 목숨을 건 쟁투를 거듭해야 했다. 왜곡의 유혹에 지지 않은 기록 각 개인들의 개별성을 다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도려내려는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 박완서 선생이 지속적으로행했던 작업은 기억이었고 또한 기록이었다. 박완서 선생은기억하려 하되 그 기억에 위선이나 자기합리화가 섞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사실’의 왜곡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병적일 정도로 증오했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작가활동 내내구체적인 사실에 기초하면서 기억의 사후적 재구성의 유혹에 지지 않는 기억과 기록을 이어갔다. 이것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인가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것은 위선적인 주장, 혹은‘사실’과 거리를 둔 이념에 의해서 추동된대문자 역사 전체에 저항하는 일이기도 하고, 너무 충격적이고 무시무시해서 자신도 모르게 덮고픈 자기보존의 무의식적 충동마저도 부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박완서 선생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은 바로 이러한 대문자 역사에의 저항과 자기보존을 위한 무의식적 충동의 부정이라는 극한의 정신적 싸움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강렬할 수밖에 없고, 또한 감동적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그러니까 박완서 선생의 소설은 대문자 역사에 의해 쓸모없는 실존 혹은 쓰레기들로 격하된 하위주체들을 다시 불러내고 귀환시키되, 그 주체들을 무조건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그들 내부에 존재하는 비겁과 자기기만과 방어기제들을 낱낱이 파헤쳐서 호명하고 귀환시키고 있는 셈이다. 해서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는 항시 대타자의 욕망이 아닌 주체의 욕망을 욕망하는 진정한 의미의 윤리적 주체들이 살아 꿈틀거리며, 그런 까닭에 박완서 선생의 소설은 매번 소설이라는 장르만이 제시할 수 있는 소설적 진실을 생생하게 재현해주곤했다.


한데, 그 박완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박완서 선생은 가고 우리는 남았다. 우울할 수밖에. 더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하!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박완서 선생은 가셨지만 우리곁에 남은 것도 있다. 바로 박완서 선생의 생애 모두가 각인되어 있는 선생의 소설이다. 박완서 선생은 가셨지만 박완서선생의 소설은 우리와 함께 있다. 박완서 선생의 혼과 정신,대문자 역사에 대한 저항의식와 자기비판 의지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이 있으니, 예전에도 그러했듯 앞으로도 박완서 선생을 사랑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우울해 하는 일이 아니라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다시 읽고, 느끼고, 감탄하고, 박완서 소설의 유일무이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맥락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이 박완서 선생에 대한 제일 큰 추모일것이다.너무 일찍 헤어져 내내 그리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으니 이제 좀 팽팽한 긴장 늦추시고 마냥 행복하게 지내시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