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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 | 칼럼·시평 [칼럼 ]
[문화칼럼] 인문학, 지역을 품다
관리자(2011-01-06 14:31:30)

인문학, 지역을 품다 - 차재근 부산문화예술교육협의회 회장 


여러 해를 지나며 우리 삶 주변에‘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친근하게 다가 와 있다. 때로는범람할 듯 남용되기도 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일련의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은 도시민에게 있어 하나의 스팩처럼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문적 혹은 지식의 향연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인문학적 욕구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체제와 과학 물질 문명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자아에 대한 성찰과 정신적 수양에 대한 내면적 가치를 지향한다. 이런 욕구는 가진 자만이경험할 수 있는 인문학의 자본종속이라는 새로운 현상, 비정상적인 자본의 학문독점으로나타나기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새 우리 곁에 와있는 인문학의 바람은 그 자체로 문화의 한편을 주도해가고 있다.

부산은 가장 활발하게 인문학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유행병처럼 번지는 호사스런 인문학 바람 속에서도 철저한 실천적 경험으로 인문학운동을긍정적 가치로 축적해가는 부산의 인문학운동.새해 초입, 우리는 지역문화의 진정한 가치가 실천적 경험의 현장에서 꽃피워지는 것임을다시 깨닫게 된다. 

 부산 지역의 다양한 인문학 운동 부산 지역의 인문학 운동은 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닮아 있다. 개항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부산은 다민족 디아스포라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든 문화적 특색인‘다양성’그리고 새로운 문물과 조류에 대한 흡인력이 풍부한 -때로는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개방성’과‘대중성’이라는도시의 정체성으로 나타났다. 

이 정체성의 특징은 역동적이라는 공통된 성향과 연결되어 있는데, 부산의 인문학 운동에있어서도 지역 문화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경향이 농후하다. 청소년 인문학의 요람 <인디고서원>은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청소년 인문학 커뮤니티이다. 

설립 6년을 맞은 인디고의 출발은 소박한 일상이었다. 대학입시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입시가 포함하고 있는 논술시험 준비에 인문학적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것에서 시작 되었는데, 이 작은 시도의 진행과정 속에서학습된 접근적 방향성과 학문적 태도는 깊은 사색을 갖춘 길잡이 훈장들의 조언을 들러리 하여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단계까지 성장하였다.

 INDIGO YOUTH들의 변화와 결실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었으며, 학부모들은 또 하나의 인디고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INDIGO SENIOR 그룹으로 자리 잡아 인문학의 세대 간 공유와 커뮤니티의 다양성을 가진 든든한 울타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적 토대는 인디고가 지역과 국가를넘어 인류와 소통하며 공동의 관심사와 목표에 대한 성취동기를 가지게 하여 아름다운 꿈을 가진 젊은이들의 요람으로자리 잡는데 원천이 되어 주었고 지역사회 기업의 흔쾌한 후원은 꿈을 향해 비상하는 날개가 되어 주었다. 

인디고유스북페어, 인디고잉 국제인문학잡지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성장했고 정세청세, 푸른식탁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있다.우리나라 근대와 한국전쟁의 시기에 르네상스의 중심지.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곳을 사람들은 원도심이라고 부른다. 

휑한 원도심 그것도 인쇄 골목 한켠 15평 남짓한작은공간에 들어선 인문학 북 카페가 <백년어서원>이다. 버려진 폐목을 깎아 만든 100마리의 물고기가 저마다 한자로한음절의 의미를 담아 황량한 도시의 골목강을 거슬러 올라백년, 천년을 이어갈 작은 인문학 연못 백년어에 다다랐다.2009년 문을 연 백년어서원은 인문학서적을 판매하고 관련서적을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공간이다. 

그동안 120여회가 넘는 인문학 관련 강좌와 프로그램이 열렸다.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에 까지 알려져 있고인문학의 실천적 영역으로의 확대를 위해 커뮤니티와 지역문화활동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지원을 하고 있다.참으로 무모해 보였던 한 시인의 모험적 노력과 희생이 시민들로 하여금 원도심과 인문학을 주목하게 하였고 실천적 지식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 짧지만 값진 성과의 사례이다.

부산지역에 소재한 대학교들은 이러한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천적 영역의 인문학 운동의 성과에 자극받아서인지 어느 지역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인문학 프로그램을시행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부산가톨릭대학교의‘빈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로 환경미화원, 장애인,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이며, 동아대학교 음악문화학과가 진행한‘음악으로 듣는인문학’은 캠퍼스를 떠나 부산박물관이라는 문화공간에서진행된 매우 독특한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그 구성이 매우 뛰어났을 뿐 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한 인문학 운동의 전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부산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부경대학교 등 거의 모든 4년제 대학이 한 두 개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카톨릭센터와사상구자활센터 등이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열고 있으며, 방송국에서도 경쟁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프로그램화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철학가 김영민이 주도한 인문학카페‘헤세이티’, ‘수이재’등 민간차원의 수많은 인문학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부산 지역의 인문학 운동은 인근 지역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거제, 울산, 마산, 창원, 양산은 물론 밀양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어 밀양 부산대학교 점필제연구소의 인문학 프로그램, 김해문화의 전당의시민인문학강좌 등 구체적 사례의 싹을 틔웠는데 이는 매우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지역이 하나의 공통된 관심사와 인문학적 관점을 가지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하나의 거버넌스로 묶어 공유의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함으로서 작지만 진정 소중한 인문학적 소산을 함께 일구어나가는 문화다양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노력이 수반돼야 우리나라 인문학 운동에 있어 그 본질과의 괴리는 인문학이 아직도 하나의 지식이며, 현실적으로 가진 자의 전유물이나 일상적 호사로, 후하게 바라보면 생각 있는 휴식정도로인식되고 있는 위험성이다. 이 점에 있어 부산에서 시작된민간주도의 인문학 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난한 여류시인이 쇠락한 원도심에서 시작한 것이나, 논술을 가르치던선생이 입시의 틈바구니에서 바로 그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부산의 인문학은 다분히 실천적 영역을 지향하고 있다. 부산인문학의 사례는 매우 긍정적이고 주목할 만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을 포함한 우리나라 인문학운동은 더욱 더 실천적 영역으로 낮아 지기위한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존경받는 지식인들이 스스로 참여해야하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의 실천 모습을보여 주어야 한다. 입으로, 붓으로, 사상으로, 학문으로 보여지는 현학적 인문학은 몇 권의 책으로, 인터넷 자료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주목한 인문학적 가치가 실천으로옮겨질 때 인문학 운동의 생명력은 길다. 인문학의 영역은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맹자, 학교 한번 가지 않은촌부에게도 인류의 유산으로 기억되고 되풀이 되어야 할 인문학이 있다.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가진 인문학적 가치는 실천적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이들의 경험이 과학적,사회적 가치가 아닌 사람의 가치이기 때문에 인문학 운동에있어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필자는 부산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간주도의 인문학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인문학 현황의 보편적 흐름을 들여다보았다. 

지역은 물론 타 지역에서도 유사한 논문이나 발제문등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지역사례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탐색적 시선이 유익했고 흥미 있었다. 다만, 특색 없는 따라하기 식의 인문학 운동은 생명력이 길지 않을 것이며, 실천적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인문학 운동 또한 매우 위험한일방적 지식의 전달임에 다름없다는 생각에는 이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인문학 운동에 대한 이러한 진단적 노력이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간에 성과와가치 발견에 매우 유익하게 작용할 것이며 다양한 인문학 운동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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