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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칼럼·시평 [문화시평]
푸쉬킨의 『눈보라』, 음악적 감동으로 다가서다전주시향 해설음악회
유영수 원광대 교수·음악학과(2003-07-03 11:05:25)

지난해 11월 22일 전북대삼성문화회관에서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의 101회 정기연주회가 해설음악회로 올려졌다.

가사가 없는 관현악곡이기에 음악을 감상하기전 작곡자를 비롯한 동기와 배경, 에피소드, 곡에 대한 구조를 살핀 다음 여러 지휘자의 음악을 섭렵하여 곡에 대한 예비지식을 익히고 연주회에 임하는 것이 순수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연주회는 보편적인 레파토리를 벗어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러시아 현대 작곡가 스비리도프의 푸쉬킨 소설 『눈보라』의 내용이 담긴 작품이기에 해설 없이는 이해를 끌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음악이 어느 예술분야보다 감동이 깊은 이유는 인간의 사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의 단어가 3만여가지라면 음악의 어법은 백배가 넘는 3백62만8천가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더욱 섬세하고 힘있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순수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태영 상임 지휘자는 다양한 레파토리의 소유자이기에 한국 초연의 러시아 음악을 전주 무대에서 선보임으로써 신선한 맛을 볼러일으킨 감동적인 음악회를 만들어 냈다.

선진국 음악애호가들이 그 고장 오케스트라와 삶을 함께하는 내면적인 이유는 격조높은 감동으로 삶에 대한 생동감과 자유민주시민으로서의 교양을 높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용(中庸)의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 位焉 萬物育焉." 풀이하면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 그것을 중이라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 그것을 화라하니,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된 도이다.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정하여지며 만물이 여기에서 자랄 것이다."

이는 근본과 조화를 이르는 말로 이 조화의 상징과 실체인 오케스트라는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건반악기의 수십종류 이상의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 크고 작은 악기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상대의 선율을 존중하고 자기를 억제함으로써 조화를 이뤄내는데에서 삶의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날 해설자로 나선 윤전경님은 대학에서 작곡 및 이론 강의와 MBC FM방송 진행자로서 곧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충동을 일으킬 만큼 흥미있게 설명해 나갔다. 1부순서로 베토벤의 3중협주곡이 소개되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기교를 고루 배치하여 관현악의 반주로 펼쳐지는 작곡자 특유의 대작이다. 군산대 양희정 교수(바이올린), 서울시향 이정근수석(첼로), 전주대 송미희 교수(피아노)는 앙상블 시간을 자주 갖는 우수한 연주자들로 각자 맡은 부분들을 개성있게 서로를 의식하며 지휘자의 섬세함으로 정리된 관현악의 사운드에 의해서 베토벤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날 트리오를 성공시킨 송미희교수는 내적 감정을 객관적으로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은 아마도 그의 깔끔한 성품의 발로였을 것이다.

2부순서로 스비리도프의 관현악곡 '눈보라'가 연주되었다. 해설자는 성의있는 사전 준비로 원고 없이 푸쉬킨의 문학작품을 흥미롭게 설명했다. 아마 이 생소한 작품을 해설없이는 이해하고 감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미모의 가브릴로브나를 사랑한 가난한 육군 소위보 블라지미르는 여자측 부모의 반대로 결혼이 불가능해지자 가출하여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시골 교회에서(1812년 어느날 저녁) 결혼을 약속하고 가브릴로브나의 일행을 보낸뒤 그는 늦은 시각, 혼자서 마부도 없는 썰매를 이끌고 밤새도록 눈속을 헤매다가 결혼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결혼식은 이뤄지지 못했고 군에 복귀하여 끝내 전사했다. 가브릴로브나는 그로부터 많은 고통을 겪은 후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 부르민 대령과 인연이 되어 새로운 사랑에 눈뜬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에 집착한 두 사람이 고민 끝에 사랑의 고백을 하는 순간, 이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1812년 눈보라 치던 어느날 밤 교회에서 길을 지나던 브르민을 신랑으로 착각하여 결혼식을 강요당하고 가브릴로브나가 키스를 하려고 의식을 찾았을 때 그녀는, "아! 그이가 아니에요" 하고 쓰러졌다. 그때의 가짜 신랑이 바로 지금 26세의 부르민 대령이 아닌가? 너무 감격한 그는 얼굴이 창백해져 그녀의 발밑에 몸을 내던졌다.

이런 내용으로 1. 트로이카 2. 왈츠 3. 봄과 가을 4. 로망스 5. 전원곡 6. 군대행진곡 7. 결혼식 8. 왈츠의 메아리 9. 겨울길을 음악으로 설명하는데 스비리도프는 성공하였다. 이날 연주를 감상하는 태도는 모두 진지하였다. 장시간 스코어를 다 외워서 암보로 자신감넘치게 음악을 이끌어가는 지휘자는 단원을 고무시키며 개개인의 기량과 호흡이 일치를 이뤄 피아니씨모에서 프로티씨모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내면세계를 형상화시키므로 마치 유럽의 어느 정상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분위기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을 기대할만한 콘서트가 자주 열리기를 바란다. 필자는 나폴리의 '싼 카를로' 오페라극장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오페라를 본 적이 있다. 청중은 막이 오르기 전과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열심히 해설을 탐독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사전준비없이 음악회장을 찾은 청중일지라도 프로그램의 곡목해설을 읽고 감상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유능한 지휘자를 맞은 전주시향이 전국 수준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오케스트라로 발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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