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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3 | 칼럼·시평 [문화시평]
관객 무서운 줄 아는 명창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을 보고 -
글·김두경 서예가(2004-02-12 14:48:39)

또랑명창이 어떻게 판을 쥐었다. 놓았다. 흔들었다 해야하는 판소리를 한단 말인가?
오히려 관객이 아무런 감동도 없지만 추임새를 해주며 흥을 돋우어주면서 혹시 좋은 소리 한마디 나올랑가 하는 심정으로 노력해 보지만 끝까지 가슴 시원한 대목하나 못보는 소리판에서 “잘해볼려고 혔는디 감기 때문에” 라는 말씀은 너무나 뻔한 가식이지 않은가. 이런 말은 아무나 쓰는 말이 아니다.


“전문가는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 줄 안다. 이 말이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전문가이기를 꿈꾸고 그것으로 인하여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는 모두 다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전문가는 그냥 그것이 직업일 뿐이다. 그 단계를 완전히 넘어서 자유자재가 되었을 대, 또 그것을 통하여 세상이나 인생을 보는 지혜가 열렸을 때 그를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사람만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전문가는 그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건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이며 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에도 최소한의 안목을 갖출 수 있다.
나는 음악에 관계되는 일을 하는 전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음악에 대해서는 감각이 형편없이 뒤지는 사람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이 글을 쓰는가?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에 소리판을 멋모르고 쫓아다니는 보편적이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번 소리판에 나온 전문가들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곱게 말해서 아쉬움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과 함께 부화가 치밀어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나 개인의 생각일 수도 있고, 소리꾼의 세계를 모르는 말, 또는 소리꾼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우리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고전을 기준하여 볼 때 이번에 출연한 몇몇 소리꾼은 ‘명창’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서예인들이 자주 쓰는 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단순히 서예에 한해서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고전을 근거해서 새롭게 창조해낸다는 이 말은 모든 예술의 기본이며 모든 삶의 기본이다. 만약 고전에 너무 집착하면 고루해지고 창신(創新)에 치중하면 가벼워지는 흠을 피할 수 없다. 판소리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고전을 익히되 고전에 머물러 버리면 그것은 살아있는 예술이 되지 못하고 고전을 무시하고 새로이 작창에만 힘쓰면 깊은 맛이 없어지기가 쉽다. 고전을 기본으로 익히고 새로이 작창은 쉽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기본은 완전히 갖추고 재구성이나 새로운 각색은 자유자재여야 비로소 명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고전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기본조차 의심케하는 또랑소리를 우리는 명창이라고 할 수 없다. 또랑명창이 어떻게 판을 쥐었다. 놓았다. 흔들었다 해야하는 판소리를 한단 말인가?
오히려 관객이 아무런 감동도 없지만 추임새를 해주며 흥을 돋우어주면서 혹시 좋은 소리 한마디 나올랑가 하는 심정으로 노력해 보지만 끝까지 가슴 시원한 대목하나 못보는 소리판에서 “잘해볼려고 혔는디 감기 때문에” 라는 말씀은 너무나 뻔한 가식이지 않은가. 이런 말은 아무나 쓰는 말이 아니다 정말 명창이 소리판을 완전히 휘어잡고 들었다 놓았다 했을 때 살짝 말해서 자신의 재주의 예리함을 감추는 말이다. 한시간 반을 약속했으면 한시간 반짜리 소리를 꽉 차게 짜가지고 나와야지 대충 나와서 나오는대로 하다가 시간되면 뚝 그치는 똥사고 밑 안닦는 것 같은 면면이나, 마디마디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재담 한마디도 없는 팍팍한 소리판에 감기 어쩌고 하면서 지난 경력이나 들추며 낯세우는 일은 제 밑 들어 남 보이는 격이 아닐까? 마음으로사 금방 할 것 같지만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마음과 현실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노력이요, 공력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이라도 갖추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적공이 있어야 하거나, 폼생폼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명실상부한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함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궂은 목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송 명창과 노구에 이러한 공연을 하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장한 박명창은 언외로 하고 최소한 안숙선씨 정도의 소리라야 명창이라고 이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안숙선 명창이 소리를 마쳤을 때 나는 “못가지요 못가. 이대로는 못가지요, 갈까보다도 없이 어찌가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못외친 것은 단지 내 어눌함이나 수줍음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안숙선 명창은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이다. 이땅의 사람들은 물론 판소리를 모르는 그 누구도 저절로 흥에 겨워서 “못가지요 못가-”를 외칠 수 있도록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에의 정진을 소망한다.

김두경 / 서예가. 전 문화저널 편집위원. ‘서예’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어딘지 멋있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공부하는 서예가. 여섯살때부터 붓을 잡았고 강암의 제자인 하석 박원규 선생의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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