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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3 | 칼럼·시평 [문화시평]
<시평>무모했던 신과의 한 판 승부
-초신의 밤을 보고-
박병도·연극연출가(2003-12-18 11:41:50)


 하나의 예술작품이 일상의 범주 안에서 승화의 목적지를 이루지 못하는 요인중의 하나가 요컨데 예술의 절제원칙(節制原則)이 지켜지지 않는데 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놓고 많은 이미지를 억지 부여하는 번거로운 가치설정을 인정하지 않아 왔으며, 또 별개의 의미들을 강요 받을 땐 당시 스스로 시각을 돌려 인식의 불필요함을 내세우는 지혜를 갖추고 있다. 예술의 제행이 생활의 주변에서 풍요로운 그 무엇을 전달하는 형태로 존재해야 할 것이라면, 작업 그 자체는 전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심미안적 연구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14일과 15일 양일간에 걸쳐 전국 순회 공연의 한 기착지인 전주에서의 「초신의 밤」(나상만/작·연출) 공연은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드라마 투루기가 어떤 시각의 눈돌림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또 관객과의 인식의 공유지대를 어느 만큼 나눌 수 있었을 것인가 되묻게 해준 좋은 예였다.


 우선 프로그램에 수록된 서광재(조연출)의 작품해설 및 줄거리를 살펴 보면, 작가는 무대 위에 두 명의 인물을 크로즈업 시켜놓고 있다. - '비내리는 밤, 서울에서 가까운 산장의 여관방에 수녀와 대학생이 투숙한다.'-이팩트의 축축한 빗소리를 동반하여 한적한 여관방에 챨스쇼의 「병사와 수녀」를 연상케 하는 한 수녀와 젊은 대학생을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기에는 충분한 가설을 대입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인물의 설정은 소재의 자유분방함에 아무런 제재가 없음을 인정하면서, 결국 대학생이 수녀의 방을 침범하여 신(神)의 존재를 놓고 충돌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한 작가적 상상력이 성급한 치장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니이체의 '죽은 신'을 인용하여 변증법적 대입을 주제의 흐름에 억지 편승시키는 듯한 미숙함을, 대중적 선호로 무장된 TV 탈렌트를 등장시킴으로 도움 받고자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작가의 체험적 피해의식이 가학적인 산적물로 침강되지 않은 이상은, - 사촌누나 친구인 연상의 여인과의 혼인약속, 또 그 약혼자의 비도덕적 정사사건등이 가져다 준 삶의 비관적 영속성 - 등을 설정한 자체에 큰 설득력이 있을 수 없었다. 또 그런 비극적 삶이 삶을 속이고 배신과 강간의 오해의 질곡을 넘어선 재결합으로 일어선 작가적 휴머니즘에 삶은 그들을 질투하듯 사랑하는 이를 앗아가는 죽음을 던졌다 하드래도, 거기에서 '신을 감옥에 가두는' 서툰 연금이유에는 아무래도 비약의 원숙도가 절대 결여된 느낌이다. 그 일로 신이 남자오 K여자의 생리구조를 잘못 창조하여 그 죄파로 감옥에 들어 갔다는 논거는 예술적 승화를 회구하는 일상의 관념에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판결이며, 작가의 판결봉은 그런 결정을 무대를 빌어 관객의 공감대에 쑤셔 넣을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기조차 하다.


 아무래도 예술 창조자의 감각이나 지성의 절대치는 그가 소유하고 포용하고 있는 만큼의 크기로서 표출되기 마련인데, 극작에 있어서 습작의 차원에서 흔히 빚어내고 있는 원대한 구조물로서의 가치 실효성을 짐짓 기대한 소치인 듯 싶어 작가적 의식의 성숙도가 아직은 신의 절대 존재를 끄집어 낼 단계는 아닌 듯 싶다. 성서에 관한 논의개제와 일개인물이 갖는 갈등의 심도가 전혀 개연성이 결여되고 있음도 곧잘 튀어나오는 이유없는(?) 반향등에서 표출되고 있으며, 대학생의 신의 연금론에 쉽게 공감하고 파계의 속옷을 벗어 던지는 수녀의 심리 설정은 치졸한 극적 전개가 아닐 수 없다. 그 수녀가 친동생인 고등학생에게 치욕적인 능욕을 당한 사실로 수녀가 된 동기설정도 어쩌면 심한 작가의 피해의식이 극의 잔인성을 심화시켜 구성에 있어서 도덕적 휴머니티가 부재된 것이기도 하다.


 해설에는 신의 존재를 인간의 성 심리학과 성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양심에 메스를 가해보자 했지만, 그렇다고 교휸적이다거나 계몽적인 차원의 주제로서 모셔지는 신의 존재도 아닌 이상, 작가나 극속의 인물들은 지극히 허구의 모습으로 말장난을 거듭한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작가가 의도한, 결국 섹스가 아니라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작가의식이나 신의 감격의 눈물을 기대한 드라마 투루기에 엄청난 아쉬움을 표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희곡평에 게재된 차범석 교수의 평 처럼 '쉽고 솔직하게 쓴 점'이 평가됐다면, 경험의 총체에서 발전되는 상상력의 기조에 작가의 메저키즘이 소재로 와 닿을수도 있다는 것이며 그런 소중한 것이나마 고급스런 이미지에 포장되지 않는 한 절대적 공감대는 상실되고 말 것이다.

 예술,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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