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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 | 칼럼·시평 [문화칼럼]
낙토(樂土), 그리고 현대 도시공원의 향유(享有)
신상섭(2019-09-17 10:59:27)

미집행된 도시공원 실효(일몰제) 문제를 두고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으로 촉발된 미집행 공원용지의 해제 'D 데이'는 이제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에 근거하면 20년간 원래 목적대로 개발되지 않은 공원용지 등의 도시계획시설은 2020년 7월을 기해 해제해야 한다. 2018년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공원 용지의 효력상실 '실효 대상' 면적은 전국적으로 340㎢(공원시설의 40%)에 달한다. 실효 대싱 면적에서 우선관리지역 130㎢와 국공유지 90㎢ 등 최대 220㎢에 대한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지원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나 상당수 공원 용지의 효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무분별한 난개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자연경관의 보호와 시민의 건강·휴양 및 정서생활 향상을 위해 국가 법률규정에 의해 조성된 도시공원은 쾌적한 도시환경을 형성하여 건전하고 문화적인 생활, 그리고 공공복리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기능 및 주제에 따라 생활권공원<① 소공원(소규모 공원에서의 휴식 및 정서함양), ② 어린이공원(어린이의 보건 및 정서생활 향상), ③ 근린공원(근린주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생활 향상)>, 그리고 주제공원<① 역사공원(역사적 장소, 유적·유물 등을 활용한 휴식·교육), ② 문화공원(문화적 특징을 활용한 휴식·교육), ③ 수변공원(하천·호수 등 수변공간을 활용한 여가·휴식), ④ 묘지공원(묘지와 공원시설 이용자들의 휴식 등), ⑤ 체육공원(체육활동을 통한 건전한 신체와 정신 배양), ⑥ 도시농업공원(도시농업을 통한 정서순화 및 공동체의식 함양)> 등으로 구분된다.


공원(公園, park)의 개념은 중세 유럽 왕족들이 자신의 넓은 영지 울타리 안에 사냥감을 가두어 유락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사냥터(hunting ground)에서 유래한다. 산업혁명기 이후 도시권역이 확대, 팽창되면서 녹색 숲이 펼쳐진 사냥터 주변이 시가지로 개발되었고, 같은 시기 도시역량 및 시민권이 향상되면서 이들 사냥터가 개방되어 공공공간(public space)으로 활용되었는데, 이것이 현대 도시공원의 단초를 마련하는 근거가 된다. 


역사적으로 도시공원의 등장은 18세기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産業革命)과 밀접한 연관성을 포착할 수 있는데, 도시인구의 폭발적 증가 및 정치, 사회, 경제, 과학기술 등의 변화와 연계된다. 많은 도시들이 공업지역 확대에 따른 스모그현상이 심화되었고, 환경적으로 비위생적이며 악취와 불결한 도시로 전락하였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했고, 소비와 휴식도 제한 받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공원에 대한 욕구는 시민들의 선거권이나 사유재산권만큼 중요한 이슈였고, 일상적으로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며 자연을 향유하는 거점이 요청되었다. 특히, 노동자이자 시민의 자유주의적 성장이 배경이 된 영국에서는 왕실정원(런던 빅토리아파크)을 세계 최초로 일반에 개방하였고, 시민의 역량으로 시민을 위한 시민공원 버큰헤드파크(1843년)가 등장하게 된다. 버큰헤드파크는 조선소 건설을 계기로 노동자 복리후생과 열악해진 환경 개선 및 공공 휴양 차원에서 조성되었는데, 50% 이상의 면적을 레크리에이션 공간으로 활용했고, 2개의 호수 등 거대한 녹색 숲이 어우러진 낭만풍의 풍경식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19세기 중반 뉴욕 맨해튼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파리의 불로뉴숲이나 런던의 하이드파크처럼 대규모 시민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850년 조경가 옴스테드는 벤치마킹을 겸한 유럽여행 중 영국의 버큰헤드파크를 방문하여 넓은 초지, 완만한 곡선의 마차길, 호수, 조용한 산책로 등 자연풍경식 공원디자인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옴스테드에 의해 설계된 뉴욕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 1876년 개장)는 버큰헤드파크로 부터의 디자인 모티브에 기반하여 세금과 같은 공공기금으로 시민 다수를 위해 조성되었다. 남북 4.1㎞, 동서 0.83㎞ 규모의 센트럴파크는 뉴요커들의 자부심이자 건강과 휴양을 위한 공익적 가치를 대변해주는데, 넓은 호수와 잔디밭(Sheep meadow), 운동경기장, 그리고 50만 그루 이상의 거대한 녹색 숲이 펼쳐진 '뉴욕의 허파'이자 현대 도시공원의 금자탑으로 인식되고 있다.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 조성과 관련하여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 이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건강한 레크레이션을 위한 최적의 공원을 도시민 모든 계층에게 제공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공익적 비전으로 조화로운 장소, 일상생활의 탈출구, 정서순화를 위한 핵심지 등을 제시했는데, 도시생활의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책은 전원풍의 공원을 즐겁게 산책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수많은 회색도시에 공원을 도입하고자 헌신했다. 그는 도시공원을 "속박과 통제된 도시생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해방구이며,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희열이며 자유의 확장이다."라고 설파했다. 도시공원을 통해 사회적 병리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도시의 심장부에 공원과 같은 레크레이션 또는 문화적 성취를 위한 비전을 끊임없이 역설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한 문명의 성장 척도는 사람들이 가진 에너지와 관심을 물질적 측면에서 정신적, 심미적, 문화적, 예술적 측면으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문명의 성장도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해야 가능하며, 성장은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 및 기술적 발전만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정신적 승화라고 보았다. 같은 맥락에서 도시계획을 물리적 개혁보다 사회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보존적 수술(conservative surgery)'이 필요함을 역설한 현대공간이론의 선구자 패트릭 게데스(1854-1932)는 이상도시에 대해 상호관계를 통한 '진화'라는 생태주의적인 사고를 제시했다. 도시와 농촌을 분리하지 않고 지역이라는 통합적인 유기체로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전통과의 연결, 그리고 공원과 오픈스페이스 같은 자연강화 매커니즘을 역설한 것이다. 


조선의 실학자 청담 이중환은 택리지(1751)에서 "가까운 곳에 마음 내키는 대로 감상할만한 산수(山水)가 없으면 정서를 화창하게 하지 못한다." 했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는 "자연과 가까울수록 병은 멀어지고, 자연과 멀어질수록 병은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즉, 공원과 같은 도심 속 자연과 가까울수록 좋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200여년전부터 유럽과 미국사회로부터 촉발된 현대적 의미의 도시공원은 이 시점에서도 동일하게 공동체 사회문화 환경의 진이고 선이며 미(眞善美)이다. 도시공원은 도시사회의 지속성과 환경 쾌적성 지표로 장소번영을 위한 민주적 경관임을 인식해야 한다. 도로, 철도, 교량 등 Gray Infra 우선주의로부터 공원녹지 같은 Green Infra(전략적으로 계획된 높은 가치의 자연적인 혹은 자연에 가까운 공간의 네트워크) 우선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쾌적성과 수용력을 상실한 도심 내부로 공원녹지를 깊숙이 관입시켜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생활녹지체계(북유럽 도시의 Green finger system) 같은 도시재생 전략이 요구된다. 


건강하고 쾌적한 삶이 가능한 어메니티(amenity)도시, 다양한 생물이 공생하는 생명력 있는 생태도시, 역사경관과 교육가치가 실현되는 문화도시, 미기후조절과 미세먼지가 저감되는 친환경도시 등의 전략적 공간 마스터플랜을 기반으로 도시공원 같은 플랫폼이 그물망처럼 펼쳐져야 한국적 가치의 낙토(樂土)가 실현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온갖 병리현상이 난무하는 현대도시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빌딩 속에 펼쳐진 녹색의 여유를 찾아 최단시간에 자연으로 탈출할 수 있는 공원도시의 가치를 성숙한 공동체문화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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