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5 | 칼럼·시평 [문화칼럼]
다른 것들이 만나 소통하는 진정한 '통일'의 가치
정도상(2018-05-15 09:57:01)



그들은다른문화에서온타자(他者)들이었다. 같은조상을두었고같은말을사용하지만적어도 70년이상서로적대적인체제에서살아왔으니, 타자라고할수밖에없다. 타자와타자의만남에서통일(統一)을추구하고'동일성'을강조하는것은참으로어리석은일이다. 타자들끼리의만남에서가장중요한것은언제나통이(通異)였다. 통일은통이와통삼(通三) 등을거쳐야비로소가능해진다고나는생각해왔다.    
나는북의작가들을 30%의동일성과 60%의비동일성을가진타자로인식했다. 비록개성자남산여관의회의장에마주보고앉아있지만서로'다른'존재라는것을인식하고자, 나는애를썼다. 서로다른것들끼리의소통즉, 통이야말로북쪽문화인들과통전부와보위부요원들과만나는나만의방식이었다.
나는남북사회문화교류의최전선에서있었다. 2003년 7월에평양에서최초로논의를시작한후 2005년 2월에금강산에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를구성하여세종대왕이한글을창제한이후분단되지않은첫통일국어사전을편찬하기위한사업을시작하였고, 2004년에는동평양대극장에서가극<금강>을공연했으며, 제1회남북작가대회를평양과백두산•묘향산등지에서치러냈고, 남북한단일문학조직인'6.15민족문학인협회'를창립하는데주도적인역할을해냈다. 동시에'6.15남측위원회'백낙청상임대표의비서실장으로온갖실무접촉에참여한것은물론이고대규모민족공동행사를정책실차원에서치러냈다. 그리고정부가바뀌자간첩혐의로수사를받는것으로시작하여온갖종류의블랙리스트로고통받아야만했었다.

돌아보면남북사회문화교류에서민간진영이담당해왔던역할은크게세가지였다. 첫째는소개였으며둘째는충돌이었고셋째는소통이었다.
첫째, 소개는자기의것을일방적으로'보여주기'였다. 조용필의평양공연, 가극<금강>의평양공연등으로대표되는공연과북한미술및고구려유물전시회가 2000년 6.15공동선언이후한동안이어졌다가중단되었다. 그리고지난봄삼지연관현악단의남측지역에서의공연과남측예술단의평양공연이대표적인소개의행사이다.
소개의한계는아주뚜렷했다. 일방적으로보여주기만했을뿐, 내면의소통은전혀이루어지지않았다. 고비용저효율도문제였다. 게다가평양공연이든서울공연이든합의된내용이언제든지바뀌거나취소될수있다는불안정성이더큰문제이다. 하지만소개를멈춰서는안된다. 우선은'내것을먼저보여주기'위해노력해야하는것이다.
둘째, 충돌을통해'서로다르다'라는인식을갖게되었다. 나는이과정을통이의과정혹은경이로운충돌이라고불렀다. 사실통이는남북교류를떠나'모든교류'의첫번째과정이며그자체로생명력을가진문화적정치행위라고할수있다.
<남과북의작가들이통일문학의붓대를함께틀어쥐고나아간다면그위력은무궁무진할것이며"그어떤외세와반통일세력들의책동도단호히짓부셔버릴수있는강력한힘으로될것입니다.">
나는북측과의문건협상에서따옴표안의문장을받아들일수없었다. 반통일세력이란존재하지않는다고주장했다. 평화통일론과민족공조를주장하는세력만을두고통일세력이라고부르는것에반대하고흡수통일론을주장하는세력도통일세력이라고주장했다. 만일그들을통일세력이라하지않는다면남측국민의 40% 정도는짓부셔야하는대상이라는뜻인데결코받아들일수없다고완강히버텼다.
이렇듯너무나다른두체제의충돌이실무협상의책상위에서헤아릴수없이반복되었다. 언뜻보면사소한차이에불과한대도 2박3일의실무접촉내내그거리를좁히지못하고다투기만했던적도있었다. 때로는분노에차서문을박차고나가기도했으며, 때로는허탈해져서모든것을포기하고돌아서고싶기도했었다. 고함을지르며책상을치기도했었고끝내는서로의입장만내세우다가붉어진얼굴로냉랭하게돌아섰던적도있었다.
아주사소한단어하나를두고무려 8시간이나다툰적도있었다. 그때문에끝내평론가김재용과나는'악질'과'반동'이라는말까지들어야만했었다. 북측성원이농담삼아건넨말에'빨갱이와대화하기정말힘들구만.'이라며받아쳤다. 모두들웃음을터트렸다. 빨갱이와악질반동이만나대화하면서통이의과정을문화적으로나인간적으로겪어내는순간이었다.
그랬다. 충돌없이통이없었고, 통이없이소통은존재하지않았다. 충돌의전면에있었던실무자로서나는충돌에는한계보다는성과가더뚜렷했다고생각한다. 남북교류에있어서충돌은정치로부터인격이자유롭게성숙되는것이며문화란근본적으로비체제의생산물이라는것을서로에게인식시켰다. 북대표단에는언제나보장성원이대동하는데, 이들은진실한소통을감시하는존재들이었다. 그러나작가들의충돌은보장성원들에게도고스란히전달되었고, 진실성에기반한우리의언어에대해나중에는감동했다는고백도들을수있었다. 충돌은소심한인습과가면을벗기는내면의행위였던것이다. 나는 2000년 6.15공동선언이후에서지금까지통이의과정을육체로겪어냈다. 
셋째, 소통의과정에들어서서야비로소지속적인교류가시작되었다. 교류의과정에서나와'다르다'는이유로상대방을과도하게비판하거나궁지로몰게되면, 통이와소통은즉각중단되기마련이었다. 소통에는쓰디쓴인내가필요했다. 합의파기에대한분노, 같은언어로대화하면서도서로다른해석에따른손실, 남쪽에서누구인가만들어낸악의적인평가들, 밑도끝도없이떠도는괴소문, 남측정부의소아병적인대응등을견뎌내야만했다. 이러한단련의과정을겪은후에야비로소소통이가능해졌다.
소통의성과는지속적인교류를낳았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은남북문화교류의상징적인사업이되었다. 남북작가들의단일조직인 6.15민족문학인협회기관지인<통일문학>도 3호까지발간되었다. 2018년 4월초에남측예술단장으로평양에다녀온도종환장관은'겨레말큰사전편찬'과'개성만월대발굴'등의사업을즉시재개해야한다고북측문화상에제안했다고했다.


이제정상회담의성과위에서남북간의사회문화교류가봇물처럼터질것이다. 그것을감당해야할'남북사회문화교류센터'와같은민관협력기구가그어느때보다도필요하다. 그기구를통하여남과북의민간들이지속적으로교류하기위한법적제도적장치를마련해야할것이다. 또한다음의세가지조건은반드시충족되어야한다. 
첫째, 민간교류를재개하기위한물적행정적토대를새롭게구성해야한다. 남북교류는민간의영역을넘어서는예산이들어갈때가많다. 남북민간교류를위해북에가서행사를했는데, 남측시민사회는빚을잔뜩지게되는경우가참많았다. 이와같은문제를해결하기위해공적기금을활용할수있도록정부가지원해야한다.
둘째, 지원하되간섭하지말아야한다. 남측시민사회는건강하다. 북측의선전선동에넘어가지않는단체가 99% 이상이다. 그걸믿어야한다. 그것을믿지않고남북교류를하기만하면종북좌파로낙인찍는게지난정부의일이었다. 이제는시민사회의건강함을믿고지원하되간섭하지말아야한다.
셋째, 통일보다도통이, 통삼이더중요하다. '다르다'라는가치에최우선을두고, 다른것들을하나로만들기보다는다른것들이서로만나소통하는통이, 통삼을중요하게여기고그가치와방향으로나가야한다. 이상의세가지조건이충족된다면남북의민간교류는역사적대전환을맞이할것으로본다.
4.27 남북정상회담은통이와소통의시작일뿐이다. 민족의운명을결정하는지도자들의회담이일회성에그치지않을것으로본다. 회담한번으로한반도비핵화와평화체제로의이행그리고남북연합으로이어지는역사적전환이한꺼번에이루어지진않을것이다. 신뢰를갖고서로충돌하며지속적인소통을이어나간다면통일이라는미래의풍경을충분히그려낼수있을것으로본다. 아울러남북정상회담을성공이북미정상회담의성공으로이어지길기원한다. 수고하신두분지도자에게박수를보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