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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 | 칼럼·시평 [문화시평]
새만금, 9년의 기록, 놓지 말아야할 기억을 소환하다
장근범 사진전'- '33 새만금-갯벌의 기억, 땅의 환상'
황경신(2018-03-15 10:54:23)



우연한 기회에 장근범 작가의 전시 소식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전시의 주제나 내용에 대해 묻지 않았었다. 짐작만 했을 뿐이다. 그는 해마다 일들이 마무리될 때면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났고, 주로 SNS를 통해 그 기록들을 하나 둘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선보이곤 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전시 역시 타국의 삶을 엿보러 떠나는 그와 마주한 먼 나라 누군가의 애틋한 삶 또는 표정을 만나게 될 것이라 예감했다.
하지만 장근범 작가가 오랜 만에 우리 앞에 내놓은 것은 '새만금'.
'33 새만금-갯벌의 기억, 땅의 환상'이라는 주제의 전시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그의 시선에 나는 걱정과 기대가 같이 실렸다.

이번 전시는 9년 동안 작가가 틈틈이 오가며 기록한 새만금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희생된 자연이라는 이제는 고루해지기까지 한 명제를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지난 2월 22일 전주 한옥마을 복합문화공간 플랜C에서 문을 연 장근범 작가의 전시는 기존의 '실물' 사진 전시가 아니다. 그는 액자 대신 벽을 선택했다. 디지털로 기록된 크고 작은 이미지를 빔 프로젝터를 사용해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종이 없는 인화', 크기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훨씬 더 값어치를 얻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더군다나 전시가 끝나는 3월 8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작품은 바뀐다.
2월 22일~24일 #갯벌의 기억, 2월 25일~27일 #새만금 도큐멘트, 2월 28일~3월 2일 #서해바다, 3월 3일~3월 5일 #빈집, 3월 6일~3월 8일 #땅의 환상. 새만금을 둘러싼 그의 기록들이 다섯 개로 그룹핑 되어 선보여지는 형식이다.
그가 그룹핑한 소제들, 갯벌의 기억-새만금 도큐멘트-서해바다-빈집-땅의 환상 만으로도 우리는 작업의 의미와 흐름을 짐작할 수 있겠다. 과거의 기억만 간직한 갯벌, 바다의 생물이 떠나고 사람도 떠나가 버린 자리, 정치적 경제적으로만 도구화된 서해의 운명, 그리고 아직도 그 곳에서 피어나는 환상, 지금의 새만금이다.
배수갑문을 배경으로 진행된 TV 예능 프로그램 녹화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또 한 번의 약속 , 생명을 잃은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흰 비둘기 떼 등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토건 사업의 환상, 정치와 자본가 일부를 위해 짓밟혀버린 삶의 터전"에 대한 놓치 말아야 할 기억을 꺼내든다.
장근범의 이미지를 만나는 관객들은 분노가 아닌 이제는 회한마저 힘든 새만금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더해 그곳에서 세계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나눈다는 잼버리대회 개최는 작가와 함께 마음껏 조소할 일이기도 하다.
실험적 요소들을 집어넣은 이번 전시는 관람시간도 오후 5시부터 9시 까지로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배려와 이미지의 선명함을 위한 조도를 고려해 진행되고 있다. 친절한 전시 설명 따위 없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와 의견을 나누며 이미지의 먼 곳까지를 함께 유추해 볼 수 있다.


기록의 역사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사진이 가지는 가장 좋은 재료인 시간을 통해, 여전히 뜨거워야 하는 '새만금'을 마주한다. 장근범 작가의 9년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배수갑문 좁은 통로로 굉음을 내며 흘러가는 물길 소리까지 담아낸 작가의 작업에서 우리는 바다의 장엄함을 볼 수 없다. 생명의 몸부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너와 나의 그 생각이 지금이라도 옳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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