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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 | 칼럼·시평 [문화시평]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용기있는 도전
소라극 '레디메이드 인생'
홍현종(2018-02-07 17:20:35)



‘판소리 다섯바탕의 멋’을 통해 판소리 원형을 지켜내는 사업을 이어온 우진문화재단이 새로운 판소리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창작 소리극’ 사업. 그리고 이를 통해 탄생하게 된 작품, ‘레디메이드 인생’.

작품의 내용은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과 판소리 ‘흥부전’을 새롭게 각색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굳이 기존 작품과 연관 지을 필요는 없다.
“돈” 때문에 꿈을 잃어버리는 주인공 ‘고봉탁’과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그의 누나 ‘순덕’간의 갈등이 주된 이야기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사학위만 얻게 되면, 인생이 바뀌고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꿈꾸는 ‘봉탁’이 맞이하는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반면 영악하기 그지없는 사채업자 ‘순덕’의 승승장구는 현대를 살아가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다.
소리극 ‘레디메이드 인생’의 서사구조는 이렇듯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말부의 극적인 반전은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일반 관객들에게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판소리를 시대에 맞게 변모시키겠다는 시도는 현대를 넘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은 이 작품이 지난해 선정 작 ‘춘향’과 구분되는 점이다.

작품의 형식에 있어서 ‘레디메이드 인생’은 ‘창극’과 ‘뮤지컬’의 요소를 적절히 반영하였다. 딱히 판소리나 창극의 형식만을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전통 가락과 소리를 저버리지도 않았다. 무대 위 악사들의 라이브 연주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으로 전달됐으며,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로 함께하였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시도는 지금의 국악이 지금의 젊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특정 행사를 위한 단발성 공연에 그치는 작품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무대에서 다시금 관객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 또한 이 작품 ‘레디메이드 인생’의 커다란 장점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1시간가량의 스토리, 단 3명의 배우가 역할을 바꿔가면서 하는 연기, 4명의 악사를 통한 현장 연주, 놓치지 않고 있는 국악적 요소,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주제. 이는 한정된 제작 환경에서 짜임새 있게 조화되었으며, 시기와 장소를 달리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게 지속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 또한 보인다.
단조롭고 변하지 않는 무대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와 악사가 무대를 함께 사용하기 위해 2층으로 구분된 무대는 제작진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일 것이나, 무대가 주는 단조로움은 관객들을 식상하게 만든다. 2층 무대 아래에 비좁은 듯 앉아있는 악사들의 모습 또한 객석에서 바라보기에 편하지 못했다.
매끄럽지 못한 연결 부분들, 다소 늘어지는 구성, 단조로운 소품과 조명 등은 부족한 제작 인력, 충분하지 못한 시간과 제작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본과 연출을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에서 오는 한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별도의 연출가가 작가의 생각을 독려하고, 조언할 수 있었다면 작가 혼자 연출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금의 상황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소리극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희망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김소라 작가와 3명의 배우들은 이번 작품에서 스스로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모습에 도전하는 예술인들의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김소라 작가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하고 있다. 소리꾼을 넘어 배우로서 한 걸음 성장한 이용선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끊임없는 시도로 지역 국악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정민영의 용기와 다양한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차영석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우리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이 창작되고,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예술인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역량 또한 향상될 수 있을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용기에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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