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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 칼럼·시평 [문화시평]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언어
전북도립미술관 '아시아여성미술가들'
고보연(2017-12-11 13:21:38)



여성에게는 사람의 언어 이상의 언어가 풍겨 나오는 것 같다. 여성의 몸 자체가 언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이번 전시를 참여하며 여성이 말하고 표현하는 언어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거룩하고 신기하기 까지 한 지 알게 되었다. 전시에 참여한 각국 작가들 작품의 신선함과 미술의 다양한 언어를 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다양한 작품만큼이나 바지런한 여성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감동을 받기도 하였는데, 나이가 어림에도 불과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기록하고 창작하고 교류하는 젊은 작가들의 당당함과 신선함, 여성임을 정확히 관통하며 바라보는 중년 작가들의 세련됨과 중후함, 인생의 여유로움과 노련미를 볼 수 있는 노장의 작가들까지 그 표현 언어는 참으로 새롭고 다채롭다. 그 만큼 여성을 해석하는 것도 다양하고 바라보는 시선도 색다르다.
물론 이번 전시는 여성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시아 여성미술가들의 다양함과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하지만 이 번 전시는 여성이기에 여성으로서 여성임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여성들의 언어는 산이요 바다와 같았다.
여성들의 언어는 풍부하고 한없는 그릇과 같았다.


그래서 이 번 전시에 여성들이 만들어 내는 미술언어는 참으로 좋았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이지만 컨퍼런스에 작품을 소개한 작가 위주로 몇 분을 소개해본다.
대학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여성작가이며 존경했던 윤석남작가를 만나 뵙는 것은 참 감사하고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진솔하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경위와 당시 함께 작업하였던 초창기 한국 여성작가들과 전시회를 소개해 주셨다. 그녀의 다소 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았으며 그녀의 초기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 번 전시작품 'White Room'은 매우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바리데기신화'를 종이오리기라는 무속신앙에서 자주 보이는 기법을 이용하여 내세를 자연스럽게 담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크기와 양에서 후배작가로서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귀엽고 발랄한 필리핀에서 온 제이즐 크리스틴(Jazel Kristin)을 소개해본다. 그녀는 언뜻 보기에도 가장 막내작가로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촬영한 위트 발랄한 사진들 위주로 선보였으며 그 사진작업들은 그녀의 가위질과 편집으로 다양한 이미지로 재탄생되기도 하였다. '소비'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던 그녀의 작품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 걸맞은 소비문화를 시각적으로 다룬 작품들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궈전(Xi Bai)작가는 매우 따뜻한 분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삶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나 저항과 같은 것들을 폭력을 상징하는 샌드백 위에 색색의 가슴을 부착하는 형태로 작품을 선보였다. 거대한 샌드백이 다소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따뜻한 미소로 내게는 오히려 애뜻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밝혔던 터키에서 온 레만 세브다 다리지오을루는 당당하고 멋진 청년작가였는데 터키에서의 성문화운동을 상세히 소개해주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해보는 계기였다. 한국인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쌀의 중요성을 퍼포먼스와 회화, 설치미술로 선보인 이하윤작가는 쌀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전 세계 쌀과 연관된 기록과 활동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함께 참여한 전북여성미술가들 차유림, 강현덕, 강성은, 이록현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사유해보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본인의 작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번 작품 '켜켜한 여성의 시간'은 여성의 삶을 담았다.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70~80년 전의 평범한 여성의 삶, 친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위안부를 피해 17세에 3살 어린 할아버지에게 시집왔다. 대부분이 그렇듯 상대방의 얼굴도 모른 채 종갓집에 맏며느리로 시집 와 어마어마한 집안일과 대적해야 했다. 임신과 출산은 고스란히 본인의 몫이었고, 여성의 지위는 마치 머슴과 같았다. 게다가 대를 이을 장손, 즉 아들을 낳아야했지만 쉽게 되지는 못해 딸이 태어나면 윗목에 그냥 놓아두었다고 한다. 자식이 죽든 살아나든 본인의 운명을 원망스러워하며 죄인처럼 지내야했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할머니의 개인사를 많이 들으며 성장하였고 자연스럽게  삶과 작품세계 형성에도 영향을 받았다.


여성이기에 참아야 했고, 여성이기에 강요당해야 했던, 그 여성의 몸, 신체 그리고 정신!
남성에게는 없는 임신과 출산, 육아! 숭고하지만 참으로 힘든 숙명을 받아들여야하는 여성을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여성은 이러한 시간들을 수없이 머리카락에 저장해놓는 것 같았다.머리카락의 길이만큼 한을 머금고 말이다.

그래서 이 번 전시에서는 머리카락을 한 없이 길게 늘어 뜨려 놓았다.

2006년 아이를 출산하고 자연스럽게 기저귀천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의 일상이자, 작가로서 새로운 매체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사용하고 버려지는 하얀 기저귀천이 아이의 형상으로, 엄마의 이미지로 그 시간을 담은 오브제로 작품화 되었다.
또한 기저귀천에 천연염색을 하여 여성으로서의 삶을 표현했으며 친환경적인 재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버려지는 옷을 작품재료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이며,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간이 무수히 담고 있음을 알았다. 이 번 작품 또한 버려지는 티셔츠, 와이셔츠, 바지 등이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되기도 하였다.

누군가 입고 버리는 것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힘이 있어 보였다. 한때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 주었고 감싸주었던 그 옷들이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이 바라보고 접하는 재료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본인 또한 아시아에서 작업하는 여성미술가로 이 번 전시에 참여하게 됨이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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