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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 특집 [여행은 일상이다]
여행은, 인위적 일상을 떠나 자연을 찾아가는 것
최성민(2016-06-16 14:15:20)




여행의 속성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다. 원래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은 'travail(고통, 고난)'이다. 즉, 과거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행군이었다. 여행이 더 이상 고통이나 고난이 아닌 즐겁고 쾌락을 주는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의 여행에는 어떤 모습이 담겨있을까? 여행이라는 것은 기존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할지언정 여행은 앞으로의 삶에 또 다른 에너지가 되어준다.


요즘 흔히 일상탈출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일상을 왜 탈출하는가. 탈출해야할 만큼 우리의 일상이 그만큼 따분하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도시화율이 8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전 국민의 80퍼센트가 도시에 모여 산다는 것이다. 좁디좁은 땅에서 5,000만명이 흩어져 살아도 버글버글일 텐데 도시에 밀집하여 살다니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사람과 사람끼리 부대끼는 일상인가 알 수 있다. 사람끼리 부대낀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인위의 늪에 갇혀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곧 일상탈출은 곧 도시탈출이고 그것은 인위적인 것으로부터의 탈출, 즉 자연을 갈구해 찾아간다는 뜻이다. 여행을 일상탈출이라고 한다. 여기서 여행은 분명히 관광과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관광이라고 할 때는 일상이 그리 따분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일상도 즐겁지만 일상으로부터 약간의 변화를 추구해 일상 밖의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나서는 것이 관광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여행은 애초에 일단 떠난다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자연주의 여행을 떠나는 방법
나는 위에서 말했듯이 현대인의 여행은 인위의 일상을 떠나 자연을 찾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넓이에 비해 인구밀도가 턱없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따라서 여행은 인위적인, 또는 문명적인 요소가 적은, 자연의 자연성이 두텁게 남아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그런 여행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구경하는 데 중점을 두는 관광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요즘 무슨 문화재나 별난 구경거리는 웬만하면 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훨씬 상세히 만날 수 있다.
자연으로 가는 여행을 나는 '자연주의 여행'이라 부른다. 자연주의 여행에서 자연은 하나의 주체다. 여행객은 객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여행객은 자연 속에서 주인의 집에 들어선 손님처럼 겸허해야 한다. 주객을 혼동해서 여행객이 주인처럼 자연을 헤집고 다녀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갯벌체험이니 물고기잡기 체험이니 해서 자연을 만지거나 학대를 가하는 것을 자연여행이라 한다면 그것은 오직 '폭력 학습여행'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자연주의 여행객은 자신이 자연 속에서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연의 일원으로서 자연의 존재원리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자연주의 여행은 자연으로 가서 자연을 해석하고 자연과 교감해 봄으로써 자연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나의 정체성을 알 수 있고 도시의 일상이 따분한 원인을 진단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도시의 일상에 지친 심신을 조금이나마 재충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살아있는 자연 속에 흠뻑 담궈졌던 심신은 어느 정도 자연의 기를 전이 받아 왔다고 볼 수 있다. 일상이 따분할 때 참선하는 기분으로 눈을 감고 여행지에서 강하게 와 닿았던 자연의 인상을 한 대목 간절히 그려보라. 그러면 어느 정도 그 장면에 가까이 가 있는 듯한 '교감의 잔영'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심신은 더욱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지면서 세포들이 자연의 활력을 향해 문을 열 것이다.


'모세의 기적'이 시궁창의 길이 되버린 이유
여행수지 흑자국들을 보라. 프랑스나 이집트 등 고대 문화재를 상품으로 삼는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 요즘 잘 나가는 자연체험 여행을 내세우는 여행선진국들은 모두 천혜의 자연 그 자체가 외국 관광객들을 부르는 자원이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자연을 귀중한 자산으로 가꾸고 보존해 왔다. 그들이 우리처럼 오도된 자연체험을 내세워 몰려드는 외래객들에게 갯벌에 들어가서 온갖 게와 낙지를 잡게 하는 등의 자연 부수기를 여행상품으로 팔아먹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강원도 양양군은 해마다 11월 남대천 연어축제를 연다. 알을 낳으려고 먼 바다를 건너 고향에 돌아오는 연어들을 그물로 미리 잡아 일주일 정도 가둬두어 힘을 뺀 뒤 참가자들에게 '빨리 잡기'와 '맨손으로 잡기' 시합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 산모연어들을 맨손으로 잡아 돌로 머리를 쳐서 불에 그을려 먹고…. 이런 것을 어디 관광이라 할 수 있을까. 전남 진도 회동리 앞바다의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 초기에 외국인들의 관심까지 끌다가 시들해진 이유도 그렇다. 2,3일 물이 갈라지는 동안 하루 10여 만 명의 관광객들이 호미를 들고 갈라진 대목을 지나가면서 낙지와 조개 등 온갖 갯것을 이 잡듯이 뒤져 잡아낸다. 그 길은 곧 시궁창이 되어버린다.


결국,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의 고향이자 따뜻한 어머니 품과도 같은 곳이다. 도시의 인위에 상처 입은 심신을 치료하는 일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루소의 말처럼 영원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살아생전엔 우선 여행만이라도 자연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책이나 매스컴은 아직도 관광거리, 볼거리, 먹을거리(별미)등만을 소개하는 몰지각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여행문화 변화를 위해서는 자연의 진면목과 우리 삶과의 관계를 잘 알려주는, 자연의 순리를 인간에게 잘 해석해주는 여행과 여행책들을 보는 것이 좋다.
예컨대 가을철 단풍이나 억새꽃 명소만으로 몰려갈 필요는 없다. 그런 벌떼 여행으로 '모세의 기적'이 거덜났고 정동진이 모텔촌이 되고 말았다. 빨갛고 노랗고 앙증맞고 새큼한 산야의 토종열매 하나를 찾아서라도 흐뭇한 여정을 잡아보는 지혜가 우리의 일상을 살찌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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