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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 | 특집 [전북문화개혁사발통문]
함께하는 곳에 함께하는 삶이 피어나는 것
삶과 터를 되살릴 공동체문화
(2014-04-01 11:47:50)





사람이 늘어나고, 빌딩숲은 높아졌지만 우리의 삶은 각박해졌다


가족은 흩어지고, 얼굴 아는 이웃은 줄어들고, 일자리는 위태로워지면서 사회적 관계망은 차츰 무너져 갔다. 멀리 시골에서의 삶도 말할 것도 없다. 온기가 걷힌 빈집이 늘어가고, 고향을 떠나는 젊음은 이제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어떤 삶터에서도 누군가와 무엇을 도모하고, 가꾸는 일은 요원해진지 오래이다.


그런데, 그런 도시와 농촌 곳곳에서 소통의 기회를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삶과 새로운 인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사는 마을에서, 내가 일하는 도시에서공동체 일구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마을 공동체, 도시 공동체 주목하기 시작했다. 예부터 삶터와 일터, 공간의 변화는공동체라는 둘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안적 삶의 기반이 되어 농촌과 도시를 되살려내기 시작했다. 육아, 교육, 생활현장을 공유하고, 공동화돼가는 주거지를 재생시키고, 마을 일꾼을 키우며 공유의 경제에 발짝 다가섰다.


이제는 이상 낯설지 않고, 어디를 가도 있는 도시와 농촌에서의 마을공동체. 도시에서, 농촌에서, 마을에서, 아파트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삶이 자리하고 있다. 공동체는 결국 우리가 사는 작은 공간부터 지역사회와 도시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따뜻한 관심과 돌봄을 나누고 연대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형성된 공동체는 도시와 농촌의 재생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때마침 마당의 백제기행에서 예술로 되살아난 삶터가 놓인부산 도심재생 지역을 찾았다. 부산 시청이 떠난 자리, 상가는 비어가고 찾는 이의 발길이 줄던 원도심. ‘또따또가에는 문화예술인들이 터를 잡은 거리에서는 공연이 펼쳐지고, 카페에는 그림이 걸렸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 한국전쟁 이후 하나둘씩 생겨난 헌책 노점들, 책방들은 종이책의 쇠퇴와 인터넷 서점의 공세를 뚫고 문화골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피난민들이 힘겨운 삶을 꾸렸던감천마을에는 산동네에 벽화가 그려지고 조형물이 들어섰다. 빈집은 작품들이 채우고,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와 아트샵이 생겨나며 부산의산토리니 되었다. 문화예술이 사람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다양한 빛깔로 보여주었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아니어도 말이다


연중기획 번째 순서에서는 새로운 삶을 위한 다양한 공동체 이야기에 기울였다. 이들의 자취와 이야기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사람 중심이 되는 쉬는 연대라는 답이 있었다. 다시 찾은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공동체 문화 가져다 참된 삶이 멀리 있지 않다




자산과 공동체가 사라진 구도심의 미래 <강명지 청년몰 차가운 새벽bar 대표>


글과 생각의 발단은이상한 모자님의 트윗이었다.

얼마 전에 식당은 사람들이 5명만 줄을 서도 접객시스템이 무너질 정도였는데 50명씩 줄을 서도 음식이 시간에 나오려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야 할지. 그래서 나는 전주엔 의외로 맛있는 없는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이 맞다. 의외로 전주에대단한곳은 없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맛집은 있다고 수도 있으나, 고민한 음식은 별로 없다.(전주시민으로서 굳이 변명하자면, 그래도 지역의 평균적 음식보다는 전주의 음식이 낫다. 이것은 자영업자 비율이 월등히 많은 지역 경제의 특성과, 고래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어 왔던 역사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생존에 들어가는 노력이 조금 요구되므로.) 고민한 음식이 없는 것이 가게의 잘못만은 아니다. 가게는 지대에 크나큰 영향을 받고, 소비자의 소비형태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장사가 되면 건물주에게 쫓겨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에서 사람만을 생각하며 장사를 하면, 당연히 음식에 소홀해질 밖에 없다. 전주가 아직 서울보다 나은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건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라 그럴 있다는 생각이다.

전주에서 대표적인 곳인 한옥마을 일대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시장으로 출근하며 살던 거주구역이었다. 아직 구석구석 오래된 흔적은 남아 있으나 그뿐이다. 있지도 않던 업종의 가게들이 전통이라는 글자를 떡하니 달고 어느 순간 한옥 지붕을 올리고, 이제는 빌딩까지 올리며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관광자원을 만들자 시작한 교동의 상업화는 우선 로컬 거주자들을 밀어내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쌀집과 수퍼가 문을 닫고, 부동산이 돈을 벌고, 건물주도 돈을 번다. 작은 집들과 가게들이 팔려나간 자리에 상가 빌딩이 들어온다. 미칠 듯한 속도의 퇴화는 아마 로드샵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 완성될 것이다

어쨌든 지금 한옥마을은 아직 장사가 되는 곳이다. 관광객들이 만큼은 만족스러운 것을 제공할 있다는 이야기이긴 하나, 단물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급속한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실시간으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지며, 관광객들은 그야말로 메뚜기떼를 방불케 하는 속도로 유명하다는 지역을 후다닥 후다닥 소비한다. 하지만 소비는 대부분남들이 다녀온 한한다


일을 하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장소의 탐험을 재미로 하는 취미 활동이다. 그러나 이렇게 변질되고 나니, 어떤 낯선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여행이 되지 않는다. 미리 조사해 맛집체크포인트 찍기가 된다그런 쫓기는 듯한 여행에서한옥마을만의 여유 찾을 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방식의 여행 소비는 남는 없다. 장소에 남기는 것도 없다. 장소를 소비하기만 하고 끝이다. 같이 그러고 어디 다른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되니, 마을의 풍경이 바뀐다. 유산자들은 귀신같이 기존 거주자들에게서 건물들을 사들여 상가로 재건축하고 임대료를 받는다. 임대료는 높다. 도심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이전의 방식대로 장사하는 가게들은 살아남지 못하고 느린 영업방식을 버리거나 쫓겨나게 되고, 거주민은 그냥 쫓겨난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결국 빠르게 회전을 시켜서 하나 팔고 돈을 버는 편을 택한다. 길게 줄을 있는 , 오고 손님에게 상에 성의를 바칠 사람은 적다. 소비하는 속도에 발맞추어 비싼 가게세를 멋모르는 뜨내기 손님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가게들이 늘어난다. 이건 정말이지 메뚜기와 자본이 만든 풍경이다. 전주한옥마을을 비롯한 공동체와 지역자산이 빠진 구도심의 내일이 과연 어떨까. 관광객이 늘어났다는 소식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 나의 지나친 기우이길 바래볼 뿐이다.




함께하는 교육이 되찾아줄 본래의 모습 <구혜경 전주원도심교육공동체 위원>


 ‘원도심이라는 말은 최근 익숙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단어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활성화이다. 도시가 형성되는 시기에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기능이 집중되었던 도심부가 개발로 인한 도시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주요 기능은 새로운 중심부로 이전하였다. 그래서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기능과 역할이 침체되어 도심공동화현상이 나타난다. 활성화에 대한 관심은 시점에서 나타난다

도심에서 사람이 점점 빠져나가 정주민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어 지자체와 민간단체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좀처럼 회복되지는 않았다. 전주는 침체된 원도심을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한 한옥마을이 도심형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이 몰려오고 이들을 응대하기 위해 상가와 문화시설이 많이 들어왔다. 정주민이 빠져나간 자리에 일부 주민과 외지인, 관광객이 채웠지만부분적 도심공동화 여전히 나타난다. 이는 정주민의 숫자가 여전히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교육공동체 이러는 배경에서 원도심활성화에 진정한 활력을 있는 대안이 되고 있다. 원도심에 있는 학교는 도심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개교하여 역사가 깊다. 중앙초, 완산초, 풍남초, 전주초, 성심학교 여전히 자리에 있다. 중앙초의 경우 50년대에 경기전 뒤쪽( 어진박물관 일대) 자리 잡은 이후 70여명으로 반이 학년에 13반까지 있을 정도로 많은 학생이 다녔다. 지금은 경기전 옆으로 옮겨졌지만 학교 주변의 아이들이 대부분 다녔다는 것은 그만큼 정주민의 숫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교육공동체를 원도심 활성화의 중요한 키워드로 보아야하는 점은 정주민의 숫자가 많을수록 도심공동화 현상은 일부 해소될 있다는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교육공동체는 정주민의 숫자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교육공동체를 가꿔나가는 있어 공동체라는 단어에서 의미하듯이 지역 내의 공통과제로 생각하는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주민, 활동가, 전문가 지역의 인적자원이 함께 결합하여같이 한다 인식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일방적인 주도나 주입식 전달은 일시적인 효과는 나타날 있지만 지속적인 공동체 형성을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일방적인 개입이 아닌 협업과 멀리 보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 내의 다른 영역인 학교와 지역사회는 긴밀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 공교육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교육 내용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지원, 수동적인 관계는 일시적일 있다.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필요성과 지역의 적극적인 지원은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고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민, 활동가, 예술가, 전문가, 학교가 유기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속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면 교육공동체를 통해 원도심 활성화의 가능성을 있을 것이다




너와 나의 벽을 허문 주식회사 평화2 <김수돈 평화마을신문 편집인>


평화2동주민자치위원회와 마을만들기 협의회 10여개의 지역 자생단체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주식회사평화2 마을기업으로 시작해서 사회적기업으로 자리잡은 공익형 주식회사이다.

주식회사평화2 지역의 고용을 창출하고, 창출된 고용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지역의 취약계층 돌봄에 일정정도 사용하는 착한기업을 표방하며안전한 먹거리 테마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평화동 주민 8명이 함께 일을 하며, 평화동 굿모닝마트에 입점해 제과점과 반찬가게를, 농협하나로마트 신성점에 반찬가게를 각각 운영하는 한편, 따로 김부각을 만들어 마트 등에 납품하고 있다. 지금은 베이커리와 반찬에 국한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도농복합지역의 특성을 살려 농산물 로컬푸드 매장을 운영하고, 매주 요리강좌, 건강식습관 강좌를 여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심이 평화동마을신문의 경우 주민들의 힘으로 4년째 발행해오고 있는 오롯이 평화동 주민들의 신문이다. 지난 2009 평화동의 학산종합사회복지관 활동가들이 준비하기 시작해서 2010 8 창간, 매달 8 짜리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내고 있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친 기자학교를 통해 40 명의 주민기자를 배출했으며 12명이 마을신문 편집위원으로서 기자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신문의 실무는 학산복지관 소속 활동가가 맡고 있지만, 현직 주민자치위원장을 비롯한 발행위원들이 후원과 광고, 독자 모집 재정운영의 상당부분을 이끌고, 주민기자들이 매주 차례씩 야간 편집회의를 하면서 취재를 하고 신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화동마을신문은 평화동의 여러 가지 마을만들기 활동을 주선하고 자극하는 계기를 제공하며 동네 벽화그리기, 동네방송, 정기적인 걷기모임 직접적인 문화활동 아니라 공청회, 조사활동 주민들의 요구를 담아내는 활동과 더불어 나눔맛집 소개, 칭찬릴레이 같은 지면을 통해 주민들의 마을만들기 활동을 확산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주민들의 소통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평화마을장터는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들의 공간으로 문화예술적 재능을 서로 나누는 재능나눔활동과 소규모상품 판매로 경제적 가치까지 이뤄내고 있다. 동네방송, 공연 문화예술과 나눔장터가 결합됨으로써 다른 지역공동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주식회사평화2 크고 작은 노력들은 평화 2동에 존재해 빈부, 노소, 장애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평화2동은 이웃 사이 단절과 외면, 도시 아파트 생활이 갖는 비정함에 갈증을 느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소통과 왕래, 나아가 서로 돕고 어울리는 동네로 조금씩 변화해 왔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펴온 주민들은, 빠르진 않지만 함께, 천천히 변화하는 지역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

지역공동체를 일구는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관계의 말길을 트는 일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도시지역의 마을들은 마을이라 없을 만큼 계층별로 가구별로 개인별로 분산되어 있어서 여러 종류의 벽이 주민들을 단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지역의 주민들은 이렇듯 다양한 계층과 이해관계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아니라 지적, 정서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크고 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서둘러 어떤 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관계를 천천히 회복해가는, 느리게 섞이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육아두레로 찾아야할 공동체의 가치 <김영희 부안백산초등학교 행정실장>


나이도 그렇거니와 아이워킹 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공동체에 대한 실체 없는 고민이 시작된 것은 역시 아이들 때문이었다. 대도시도 아니고, 광역도시도 아니고, 전주도 아닌 이상 농촌의 향기가 폴폴 풍기는 김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단순히 생각하는 공동체의 문제가 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저간의 사정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대가 넘는 아파트촌에 살며 이웃집 사람의 얼굴 한번 보기 힘든 나로서는 공동체는 경험하지 못한 그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녹녹치 않은워킹 생활을 조금 윤택하게 가꿔보겠다고 여러 시도들이 결국은 공동체를 향한 것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고 있는 시점이랄까.

일을 하며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삶의 과정 중에서 가장 터덕이는 일이 아닐 없다. 팔목이며 삭신이 쑤신다 친정엄마의 노동력에 기대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 있었고, 도시보다 선택의 폭이 적은 육아시설들도 성에 차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생각해낸 것이 나와 사정이 비슷한 지인들과육아두레 해보자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겨우 가정이 의기투합한 일이었지만, 나름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며 없이 시작된 시도였다. 매일 같은 칼퇴근이 어려운 직장인의 사정상 집의 부모들은 대략의 일주일 스케쥴을 꺼내놓고육아두레 시간을 정해 나갔다. 다행히 시내권이 모두 가까워 아이들의 이동은 문제가 되지 않아 한동안 아이들을주거니 받거니 진행되었다. 아이들 또한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놀이시간을 가지니 거부감이 없었다. 나름 성공적이라며 위안을 삼으며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홀가분한 마음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의육아 두레 중단되고 말았다. 오롯이 친분과 각자의 사정을 서로 배려하는 차원에서 시작해서 일까? 하나 생겨나는 핑계와 피치 못할 사정으로육아 두레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용만 다를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가끔 매스컴에 소개되는 도심 마을공동체처럼 우리는 될까하고 자책을 일도 아니었다.

감히 말하건대, 대부분의 젊은 세대, 나를 비롯한 우리는공동체 대한 개념도 인식도 제대로 학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필요성에 의해서 의기투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나름의 실패 원인이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일

하지만 여전히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동체적 삶에 대한 고민, 함께하는 가치를 찾아내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다만 시간을 때우기 위한도구적 공동체 아닌 가치를 함께 찾아 단순히 육아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선다면 그것이 작든 크든 번째육아 두레 성공할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공공미술의 공동체 속에 답이 있다 <박진희 숨조형연구소 대표>


공공미술로 우리는 공동체를 회복할 있을까? 혹은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공공미술을 만날 있을 것인가? 공공미술의 사전적 정의는공공의 장소에 놓이는 미술’, 1967 영국 미술행정가 월렛의 <도시 속의 미술(Art in City)>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초기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소수에 의해 감상ㆍ유통되던 미술을 누구나 감상하고 일상생활에서 접할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 문화예술진흥법에서 건축물 미술장식제도가 의무화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같은 조형물에서부터 청계천에 설치된 올덴버그의 <스프링(Spring)> 도심의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예술적 조형물 등이 유형이다

구체적으로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 미국 정부에서 시작한 가지 제도, 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프로그램과 국립예술기금의공공장소의 미술(Art in Public Place)’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 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 프로그램은 공공건물을 신축할 건설 예산액의 일정 지분(대개 1%) 예치해 미술품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도의 미술진흥정책과 발맞추어 미술의 본질에 대한 의식변화가 1960년대 말에 일어났다. 많은 미술가들이 작업실 규모보다 건축적 규모를 요구하는 대지미술과 밖의 다른 환경미술 형태를 창조하기 시작하며 공동작업을 하게 되었다.


공공미술의 개념은 무수한 질문을 거듭해오면서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에서부터 공공장소의 환경미화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공동체 회복 혹은 강화를 위한 예술운동으로 진화해왔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공공과 예술이 만나는 과정, 삶과 예술이 만나는 과정을 공공미술의 가치라고 바라볼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사업은 그대로사업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에서 이뤄지는 공공미술 사업들은 8개월짜리 환경미화차원에서의 사업부터 참여정부 이후 복지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문화복지에 기여하는 지자체간 경쟁적 문화전략, 도시디자인이(아트폴리스과가 생겨난 이유?) 되었다. 물론 무수한 한계에 부딪히고 살벌한 도마에 오르면서도 공공미술작업이 지역 안에서 문화ㆍ예술 향유권을 넓혀준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없지만 공공미술은 사업이고 문화향유를 위한 보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경우 주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것이다. 공공성은 일방적으로 누군가 만들어 있는 가치가 아닌 서로 다른 주체들이 소통할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가능하며 공공미술의 본질을 잃지 않고 지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공공미술의 문제는 바로공동체 된다. 공공미술은 커뮤니티의 장으로 이해와 공유를 기본으로 쌍방향 소통을 위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작업이다. 정서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협업을 가능하며 이러한 협업은 행정기관, 민간, 또는 예술인들의 협업과정을 통해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해가는 작업으로 나아갈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적극 참여할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일은 굳이 유형의 (성과)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공미술이 공동체를 향해 가기 위해서 혹은 공동체가 공공미술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행정에 휘둘리는 8개월짜리 사업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이 시간을 정해 놓을 없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주민 스스로 솟아난 협동의 결과 <양희경 사람과마을 운영위원장>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필요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제안하고   ‘필요 공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필요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협동 힘이다

성미산마을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유지하는 가장 원동력도 바로 이것에 있다

  ‘필요 공감할 있는 이유는 개인의 요구에서 출발하는 제안이 아니라이런 것이 있음 공동체 생활에 좋겠어!’라는 공동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또한 동의와 협력을 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배타성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성미산마을의다양성 존중문화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성미산마을은 일정한 범주와 규약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닌 일상의 여러 가지 사안들-교육, 문화, 환경, 주거- 공동 관심사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다양한 커뮤니티들의 공존 네트워크라고 있다.

성미산마을은 1994 공동육아의 역사에서 출발하여 시기별로 필요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일구어진 마을이다. 성미산마을이 계속해서 노력해나가야 지점이 있다면 과정에서 자발적 참여와 출자로 만들어진 마을의 여러 장소들이 있는데 공간들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자립의 구조를 다지는 사회경제적 과제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도시 공동체에서의 피로의 핵심은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에 있으며, 공동체 내부에서 감당하기에는 개별 부담의 상한선이 높아 위태롭게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공모사업 방식이 아닌 지역과 마을의 실정에 근간한 지원의 형태로 연구되어 실행되어지면 좋겠다는 것이 성미산마을의 바람이다.

성미산마을 공동체의 다양한 성과와 지속성으로 인해 지역에서 도시마을공동체를 꾸릴 최우선해야할 가치와 고민에 대한 질문을 매우 많이 받게 되는데, 질문에대한 답은 가지이다. 바로주민이다. 주민들 스스로의 필요에 집중하여야 한다는 외에는 명쾌한 답이 없다.필요가 이끈 개인의 자발적 의지와 참여가 쌓이면마을이라는 의식이 생기고, 이러한 경험이 공동체를 연결해주며 새로운 단계의 일과 문화로 확대되어마을공동체라는 결실로 정체성을 보여주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공동체사회적 경제로 되살아나다 <임경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상임이사>


마을공동체에 주목하는 이유는 마을공동체가 없어졌거나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대규모 아파트의 건설로 마을에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고 농촌은 반대로 너무 적어졌다. 이러한 인구밀도의 변화, 편리한 도로와 자동차의 보급, 대형마트 중심의 소비구조는 마을에 존재하던 주민들의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마을은 원래 생산, 분배, 소비, 교육, 문화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살았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함께 살기 위한 것이었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소비는 다른 사람의 소득이 되었고 소득은 다시 다른 사람의 소득과 연결되어 순환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마을공동체의 것으로 축적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필요한 것을 마을 바깥의 대형마트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얼마든지 구매할 있어 편리해졌지만 마을 내에서 순환하고 축적되는 것이 점차 엷어지면서 마을은 황폐해져갔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단순해졌고 주민들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그러자 마을 울타리 안의 사회적 관계에 기대서 생활을 하던 사람들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웬만한 자본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지 못한 보통 사람들도 점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공동체를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공동체를 만들 있을까. 이질적인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살고 있는 도시의 마을이나 고령화된 주민들만 남은 농촌마을에서 예전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이미 파편화된 개인이 시장 자본주의의 매트릭스와 발가벗은 접속하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경쟁력으로 덮어씌워 개인적 문제로 전락시키고 있는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개인들을 적정 규모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완주는 지역 전체를 하나의 마을로 보고 있다. , 지역 내에서 필요한 것들을 지역에서 생산하여 공급하고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 간의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번째 사업은 로컬푸드이다. 농촌이지만 지역에 필요한 농산물은 외부에 의존하고 있었다. 로컬푸드 시스템은 동안 농업정책에 소외되어있던 소농, 가족농, 노후농 천여 가구에게 연간 400 이상의 안정된 소득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유통, 판매, 가공과 관련한 5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로컬푸드에 이어 완주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로컬에너지이다. 전기와 화석연료와 같이 우리가 주로 쓰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외부로부터 공급받는다. 하지만 태양열과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의 대안에너지를 생산해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일부를 충당하고자 한다. 나아가 지역에서 필요한 문화, 교육, 복지 서비스를 지역주민에 의해 공급할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내 학교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지역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러한 일들이 많아지면 지역 소비와 수요는 지역주민의 소득과 연결되고 그렇게 돈이 다시 지역에 쓰이는 지역경제의 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세계경제위기가 다시 닥치더라도 든든히 버틸 있는 풀뿌리 지역경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완주의 이러한 노력 속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주민조직의 대부분이 영농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공동체사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동체사업조직이 만드는 협동과 배려의 경제시스템을 사회적경제라 부른다. 마을공동체를 해체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지역공동체운동이 자본주의와 다른 가치와 방법을 가진 사회적경제와 만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 완주는 사회적경제를 향해 진화중이다.




지역자산의 재발견도시재생의 걸음 <최호연 LH도시재생사업단 선임연구원>


LH도시재생사업단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올해 4월까지 7 4개월간 국가R&D사업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오고 있다. 크게 가지 형태로 도시재생을 추진, ‘근린재생복합개발형도시재생이 그것이다

근린재생은 생활권 중심의 생활환경 개선, 기초생활인프라 확충, 공동체 활성화, 골목결제 살리기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복합개발형은 역세권이나 비교적 규모의 도시·군계획시설과 연계한 도시재생을 말한다

전주의 경우 근린재생 현장실험 대상지로 선정되어 사업이 추진되었다. ‘전주 근린재생 테스트배드사업이며, 전주와 함께 창원이 진행되고 있다. 복합개발형으로는 부산과 천안이 공모에 선정되었다.

전주 근린재생 테스트베드는 노송동에 위치한 전주도시재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3년간(2011.3~2014.4) 추진, 테스트베드 지역은 노송동·인후1,2동과 중앙동·진북동을 포함하는 1,739,000 ( 52만평)이며, 주거지구와 상가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전주 근린재생 테스트베드의 대표적인 사업은 주민학교, 도시재생거전센터 건립 등이다. 주거지구는 물왕멀길 가로정비사업, 커뮤니티키친사업(노송밥나무 마을기업) 상가지구는 상가신탁창업지원사업과 만원행복거리사업 등을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있다


이번 사업으로 해당 지역의 실제 공간들의 변화가 나타났지만, 이번 사업의 가장 성과는 도시재생의 개념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라고 말할 있다.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는지역공동체 활성화라는 소중한 과정과 성과를 만들었고, 이것이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재개발·재건축과는 다르다. 공간의 개발과 건축으로 시작해 끝이 나는 것이 아닌 지역공동체-전문가-지자체가 협력하여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고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번 사업의 낳은 가장 성과이며, 이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주민학교, 소식지 등을 통해 더욱 확산되면서 이해를 높여갔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시간 동안 전주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전주 뿐만 아니라 도시재생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역시지역 자산의 재발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의 자산은 지역이 가진 역사·문화, 공동체, 전문가, 이미지 다양하기 때문에 지역 자산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을 우선으로 지역의 특성에 맞게 활용방법과 우선순위 등을 검토해서 도시재생사업에 접목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있는 지침이 것이다. 자발적으로 지역이나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대사회에서 현실이 요원한 만큼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설치가 확대되는 것이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주민과 지자체의 중간역할을 수행하며 주민들의 도시재생 역량을 배양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지역의 요구와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역할을 있기 때문이다. 전주의 경우도 4월이면 사업이 종료됨과 함께 센터도 문을 닫게 되는데, 전주시가 센터와 센터의 전문가를 지속시키는 방안을 마련해 녹녹치 않게 진행된 이번 성과를 유지하고 한계를 극복해내는 창구를 마련함으로써 도시재생의 명맥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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