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3.4 | 특집 [기획특집]
문화예술시장, 협동조합으로 답찾기
황재근 기자(2013-04-05 11:57:52)

필요와 기대사이, 문화예술협동조합의 줄타기
협동조합 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3월말 현재 전국적으로 약 500여개의 협동조합이 새로 설립됐고, 전북 지역에서는 44개의 협동조합 신고가 수리됐다.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2012년 12월부터 시행된 협동조합 기본법에서 찾을 수 있다. 5명 이상의 발기인만 있으면 금융과 신용사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에서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구성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광역단체장에게 신고만 하면 설립이 가능하다. 향후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협동조합 바람을 키우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지난 2008년전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줬던 국제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기존 자본주의의 취약점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모델이 제시됐고, 그 중 유럽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자생적으로 뿌리내려 온 협동조합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UN이 지난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한 것도 같은이유에서다.그렇다면 문화예술분야에서는 어떨까. 문화예술분야는 국제금융위기 이전부터 시장실패 상황에 처해있었다.완전한 경쟁 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문화예술인, 문화예술컨텐츠는 극히 일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일부의 경우조차 다양성과 창의성이 보장된 기반이 없고서는 탄생하기 어렵다. 때문에 각국에서는 문화예술에 대해서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종의 보호시장을 만드는 셈이다. 문제는 그 보호시장 역시 취약하다는 점이다. 대개 지원의 규모는 수요에 비해 부족하기 마련이고,그나마 정치·경제적 이유로 축소되거나 사라질지 알수 없다. 이로 인한 문화예술인들의 자립 욕구는 오래된역사를 지니고 있다. 협동조합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민주적 운영방식·정부지원 기대 높아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trend) 분석 및 전망’ 연구보고서를 통해 ‘예술인 복지와 협동조합의 본격화’를 10대 트렌드의 하나로 선정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관심과 기대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현재 전북에는 전북연극인협동조합, 전북음악인협동조합, 전북연예인협동조합이 최초의 문화예술협동조합으로 신고를 마친 상태다. 전북도 민생경제과 담당자는“농축산분야 다음으로 문화예술분야의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공연예술과 다문화 쪽 문의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높아진 기대에 비해 협동조합을 통해 문화예술계가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협동조합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문화예술협동조합의 비중이 낮은데다 사회적 경제의 기반자체가 달라 대입해볼만한 사례가 많지 않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문화예술 분야 협동조합도입을 위한 기초 연구」의 사례조사에 따르면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의 주요한 이유로 ‘협동조합의 공공적 이미지를 통한 공공시장 진출’, ‘민주적 운영방식을 통한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유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정립 계기’ ‘정부지원에 대한 기대’ 등이 꼽히고 있다. 허가제인 비영리 법인에 비해 요건만 충족하면 신고를 통해 설립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수익구조 확보에 대한 뚜렷한 전망이 없다는 점이다. 조인석 예원대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는 “기존 생협의 경우 조합원들의 회비만으로도 급여를 충당할 수 있는 구조다. 협동조합 설립만으로 금전적 이득이 생기지는 않는다”며 “결국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제도적 이점과 지원책들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협동조합을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는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로 실현된다. 원자재 공동구매와 공동생산을 통해 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식을 문화예술분야에 그대로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동영 전주시정발전연구소 연구원은 “문화예술협동조합의 핵심적인 한계는 기술집약적 산업이 아니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것”이라며 “공예분야를 제외하고는 생산자가 뭉친다고 단가가 더 낮아지기 어렵다. 단순히 뭉치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신 “유통망 확보를 통해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지난 2월 신고를 마친 서울의 미술인협동조합 ‘룰루랄라’가 대표적인 경우다. 10여명의 미술인이 출자해 설립한‘룰루랄라’는 화랑을 대신해 작품을 직접 유통하고 그 수익을 작가에게 분배하는 구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통한 협상력과 영향력 강화도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예를 들면 지역축제에 출연하는 개별 공연예술자의 경우 공연료 등에 대해 협상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기획력과 출연진을 확보한다면 정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조인석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각 장르의 생산자협동조합이 연합체를 구성해 영향력을 갖고 일종의 기획사 형태로 공동견적, 공동납품을 하거나, 축제 기획자체를 위탁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뭉치면 끝? 새로운 시장 확보해야
그러나 유통망 확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기존 시장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었다. 최근 문화예술계의 화두가 수요자의 자기문화활동을 통한 향유능력을 계발로 초점이 맞춰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양한 협동조합이 활성화된다면 협동조합 간 거래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조인석 교수는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볼로냐의 핵심은 협동조합의 생산품을 우선 소비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물론 사회적경제 전반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적용 불가능한 모델이다.김동영 연구원은 문화예술협동조합 초기 단계에 대한대안으로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를 제시했다. 문화예술체험이나 교육, 공연에 관심 있는 자들이 먼저 협동조합을 결성해 필요에 따라 문화예술컨텐츠를 공동구매하는 것이다. 해당분야의 생산자협동조합이 있다면 이를 통해 협동조합 거래가 활성화될 수도 있고, 생산자협동조합의 설립을 촉발할 수도 있다. 김 연구원은 “문화예술소비자협동조합을 통해 소비자의 수요를 중심에 놓고 생산자들에게 컨텐츠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며“이를 통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잡는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생협과의 연계를 통해 수요를 확보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문화예술분야의 공공재적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형태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비영리법인격을 갖게 되며 조합원에 대한 배당이 금지되는 대신 잉여금의 30% 이상을 법정적립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조합원 구성도 생산자, 노동자, 후원자, 이용자 등이 복합적으로 참여하는 다중이해관계로만 가능하다. 대신 공공위탁사업이나 공익증진사업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인증절차를 밟고 있는 ‘자바르떼’가 대표적 사례다. 2004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자바르떼는 2008년 사회적기업인증을 받고, 공연과 기획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왔다. 지난 2011년 사회적기업 일자리 지원 종료 이후 자구책을 고민하다 선택한 조직형태가 바로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노동자협동조합 6명, 생산자협동조합 11명, 후원자조합원과 자원봉사자 조합원 29명이 창립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이동근 자바르떼 대표는 “지역에 밀착해 문화공동체를 구성하려 했던 그간의 활동 특성과 사회적협동조합 형태가 가장 잘 맞는다고 의견이 모아졌다”며 “공공시장 진출을 중요한 비즈니스모델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분야 특화된 제도·교육 필요
법안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협동조합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하부법령과 제도정비에 대한 요구도 나오고 있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24일 ‘전라북도협동조합 촉진에 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에 관련된 교육과 자문, 특례보증과 브랜드 개발 및 홍보마케팅 지원이 실시될 예정이다. 조인석 교수는 “신생협동조합들의 안정화를 위해 지자체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며 “협동조합 우선구매를 요구하거나, 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라면 후원자조합원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현재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차원의 직접지원은 소상공인협업화지원사업이 유일하다. 총 3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동종 또는 이종간 협동조합의 공동브랜드, 공동마케팅, 공동시설 등에 대해 최대 1억원씩 지원하는 사업이다. 아직은 시범사업이지만 협동조합의 설립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기조 상, 향후 지원의 형태와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지원금에 의존하게 되면 사회적기업의 경우와 같이 자립에 실패하는 사례들이 늘어날 것이란 점도 우려를 사고 있다. 문화예술협동조합에 특화된 교육과 자문도 필요하다.기존 교육을 맡고 있는 협동조합전문가들의 경우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심화된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이다. 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의 이해도를 높이지 못한다면 1인1표라는 운영구조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선행 협동조합들의 경험공유와 협동조합·문화예술 양쪽에 전문성을 가춘 인력양성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 전문가와 경험자들은 공통적으로 막연한 기대보다 필요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협동조합은 답을 낼 수 있는 공식 중 하나일뿐이지, 답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공식에 대한 문화예술계 전반의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목록